[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청도 성수월 마을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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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2-21   |  발행일 2020-02-21 제36면   |  수정 2020-02-21
인공섬 만들어 지킨 500년 당산나무, 수위 낮으면 열리는 나무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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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월 마을의 당산나무. 댐이 만들어지면서 나무도 마을과 함께 수장될 운명이었지만 사람들은 물 한가운데에 인공 섬을 만들어 나무를 보존했다.

헐티재 아래 청도는 희고 두꺼운 구름에 덮여 있었다. 비 오는 날의 운무가 장관이라는 소문은 들었지만 직접 마주하기는 처음이다. 구름을 뚫고 솟은 봉우리들은 섬 같았다. 봄비겠지. 이 비를 맞고 이제 섬들은 간질간질 새싹 틔울 준비를 하겠지. 그러니 이제는 정말 눈을 기다리지 말아야겠지. 젖은 도로는 차륵차륵 맞장구를 치며 저만치 앞서 내달아 구름 속으로 들어갔다. 구름 속은 환했고 조용했다. 자꾸만 차창을 흐리는 빗물과 일정한 간격에 맞춰 팔을 치켜드는 와이퍼의 호들갑에도 길은 멈춘 시간 속을 달리는 듯했다. 그리고 그때, 와이퍼가 한번 쓱 지나간 자리에 섬이 떠올랐다. 그 섬에는 한 그루 나무가 살고 있다.

댐 조성하면서 물에 잠기게 된 마을
60가구 떠나고 20가구 45명만 남아
유물·유구도 출토…유적공원 조성
옛 무덤가 1년뒤 소식 전하는 우체통
저수지 곁에 새로 만든 성수월 마을
국내 첫 코미디 공연장 철가방 극장
흔적 남겨두고 추억 만드는 몰래길


◆성곡지의 당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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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곡리 유적공원의 우산우체통. '슬픈 사연은 적지 마시고, 기쁜 사연만 적고 가세요.'

섬은 저수지의 수면 위에 낮고 평평하게 놓여 있다. 진주 같은 돌들이 섬의 가장자리를 두르고 있는 것을 보니 부러 만든 섬이겠다. 저수지 아래에는 청도 풍각면 성곡리 본동과 배암골이 수몰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저수지의 이름은 성곡지다. 성곡은 평화롭고 성스러운 골짜기가 되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저수지는 1999년에 착공해 2009년에 완공되었다. 마을이 물에 잠기게 되면서 당시 81가구 240여 명 중 60여 가구가 마을을 떠났다. 그리고 20여 가구 45명만 남았다. 차마 떠날 수 없었던 그들은 저수지 근처에 새로운 마을을 만들어 정착했다. 나무는 마을의 수호신, 당산나무다. 나무가 마을과 함께한 시간은 무려 500여 년. 나무도 마을과 함께 수장될 운명이었지만 사람들은 물 한가운데에 인공 섬을 만들어 나무를 보존했다. 수위가 낮으면 나무로 가는 길이 열린다. 그러나 오늘처럼 물이 차오르면 나무에게로 가지 못한다. 그러나 비와 바람이 되어 갈 수는 있다.

당산나무 섬이 바라다 보이는 야트막한 언덕에 '성곡리 유적공원'이 있다. 저수지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삼국·통일신라시대의 석곽묘, 건물지 등의 유구가 발견되었고 3천6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그 중 중요 유구 10기를 이곳에 이전, 복원해 놓았다. 옛 무덤가에 빨간 우산을 쓴 빨간 우체통이 서 있다. 편지를 써서 부치면 1년 뒤에 소식을 전해준다고 한다. 소중한 사연이 비에 젖지 않고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우체통에 우산을 씌워 놓았단다. 우리동네 슈퍼마켓 앞에 있던 빨간 우체통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으려나. '슬픈 사연은 적지 마시고, 기쁜 사연만 적고 가세요.' 느린 우체통은 이제 관광지 이곳저곳에서 쉬이 볼 수 있지만 언제나 아련한 뭉클함을 준다. 슈퍼마켓도 이제 없고 넣었던 편지를 회수하려 우체통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던 계집애도 이제 없어서.

◆성수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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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월 마을의 그린투어센터. 마을 사업의 사령탑으로 숙박과 행사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복합 문화 공간이다.

마을이 수몰된 뒤 차마 떠나지 못했던 이들이 저수지 바로 곁에 새로 만든 마을이 '성수월 마을'이다. 소원이 수월하게 술술 풀린다는 마을, '성수월 마을'은 성곡리와 수월리, 현리리, 봉기리 등 4개 법정리(里)와 6개 행정리를 하나로 묶어 '성곡 권역 농촌 마을 종합 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마을 브랜드다. 개발의 목표는 '경관 개선, 생활환경 정비, 주민 역량 강화 및 소득 기반 확충'이었다. 도로를 닦고 주차장과 쉼터를 만드는 등 생활 기반을 조성하는 한편 지역의 소득 증대를 위해 미나리 단지를 조성하고 농산물 가공시설과 저온 저장고 등을 세워 소득원으로 활용하도록 했다. 성곡댐 입구에는 수변 생태 공원을 만들어 미꾸라지 체험장, 습지 생태 공원, 뗏목 체험장 등을 조성했다. 또한 미나리 채취, 사과 따기 등 계절별 체험과 자전거투어, 자연미술, 음악, 푸드 학교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개발했다.

성곡리 유적공원 맞은편에 '그린투어센터'가 있다. 2009년에 세운 마을 사업의 사령탑으로 숙박과 행사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복합 문화 공간이다. 센터 안에는 식당과 매점, 농산물 판매장, 북 카페 등이 들어서 있고 야외에는 족구장과 공연장이 있다. 센터에서 멀찍이 내려다보이는 저수지 가에는 유명했던 '철가방 극장'이 있다. 당시 청도에 살던 개그맨 전유성을 설득해 주소지를 성수월 마을로 옮기도록 하고 2011년에 전국 최초로 세운 공개 코미디 공연장이었다. 정식 명칭은 '웃음건강센터'로 농림축산식품부와 청도군이 예산 12억원을 들여 만들었다. 지금 극장은 텅 빈 채 방치되어 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몰래 소원을 비는 '몰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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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가방 극장. 정식 명칭은 '웃음건강센터'로, 공개 코미디 공연장이었으나 현재는 텅 빈 채 방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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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티재에서 내려다 본 청도. 비 오는 날의 운무가 장관이라는 소문은 사실이었다.

수변 공간을 활용한 계획으로는 성곡지 둘레길이 조성되었다. 2012년 당시 행정안전부 우리 마을 녹색길 공모 사업에 선정돼 방송인 전유성씨와 패션디자이너 최복호씨가 주도해 만든 길이라 한다. 길의 이름은 '몰래길'. 곳곳에 자신의 흔적을 몰래 남겨 두고, 그 길 위에 자신만의 추억을 만든다는 구상이었다. 몰래길에는 사람들이 소원을 빌면서 돌을 하나씩 얹어놓은 소원바위가 있다. 그래서 '소원은 혼자 몰래 빌어야 한다'고도 하고, 옛날 이서국의 나무꾼이 이 길에서 몰래 소원을 빌었더니 소원이 이루어지더라는 내용을 담고 있기도 하다.

몰래길에는 철가방 극장에서 출발해 각북면의 최복호 패션문화연구소까지 이어지는 6.3㎞의 코스도 있고, 비슬산 등산로도 함께 조성되어 있다. 성곡지 '몰래길'은 전체 6.6㎞ 정도로 그린투어센터에서 출발해 당산나무를 거쳐 원점회귀한다. 저수지의 남서쪽은 도로를 따라 도보길이 조성되어 있고 북동쪽으로는 차량이 통행하지 않는 임도가 자연스러운 산의 곡선을 따라 이어져 있다. 최대한 자연환경을 그대로 두고 보행 약자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일부 구간에만 평평한 천연 목재 및 단단한 흙길을 조성한 것이 특징이다. '구라 치기 없기, 큰소리 안내기, 각종 소원 환영, 분실물 환영, 보는 사람이 임자'가 몰래길의 수칙이다. 성수월, 당산나무, 우체통, 몰래길. 모두가 소원을 이야기한다. 몰래 소원을 빌면 술술 소원이 이루어질까. 너무 많은 소원도, 구라 치기 없기.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정보

대구 수성구 파동 지나 달성군 가창에서 헐티재를 넘어 청도 각북으로 간다. 각북면소재지 직전에 우회전 해 낙산길~낙산1길~장기길로 계속 직진하면 성곡지가 있는 성수월 마을이 나타난다. 가창에서 팔조령터널을 지나 청도로 들어올 경우, 30번 지방도를 타고 가다 각남교차로 우회전, 20번 국도를 타고 성수월 마을로 가면 된다. 성곡지 몰래길은 6.5㎞ 정도로 2시간~2시간30분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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