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진단] 대구시민 250만의 눈물나게 평범한 하루

  • 이은경
  • |
  • 입력 2020-02-25   |  발행일 2020-02-25 제26면   |  수정 2020-02-25
눈뜨기가 무섭게 뉴스 검색
출근해도 정보 확인에 분주
예상밖의 확진자 수에 불안
퇴근길 거리는 더없이 적막
나를 믿고 이 위기 견디리라

2020022401001001400042551

아침이다. 눈을 뜨기 무섭게 휴대폰을 들고 밤사이 들어온 뉴스를 검색한다. 대구시의 공식 발표가 있기 전이지만 이미 휴대폰에는 지난 밤 새 새롭게 생긴 코로나19 확진자와 관련된 갖가지 설들로 넘쳐난다. 몇 명이 새로 확진 판정을 받았다, 어디가 폐쇄됐다, 어떻게 감염이 됐다더라,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는 정보들로 머리가 어지럽다. 미열이 있는 듯도 하고 목도 간질간질해 괜히 헛기침을 해본다. 아픈 것 같기도 하고 멀쩡한 것 같기도 한 그 사이 어디쯤의 찜찜한 컨디션으로 '절대 아프지 말자' 속으로 다짐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출근길.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이웃 주민이 나를 보더니 흠칫 놀란다. 서로를 피해 황급히 각자 다른 엘리베이터를 잡아타고 지하 주차장으로 향한다. 도로는 한산하다. 거리의 가게들은 문을 닫았는지 영업을 하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적막하다. 언제 이 광경을 보았던가. 민방위 훈련? 단 며칠 만에 도시는 생기를 잃고 초췌하게 변했다.

회사에 출근했다. 밤 새 안부를 물으며 각자 전해 들은 정보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느라 바쁘다. 오전 10시. 권영진 시장의 정례 브리핑이 시작된다. 믿을 수 없는 현실이 숫자로 증명된다. 환자는 하룻밤 새 1, 2명도 아니고 100, 200명씩 늘고 있다. 그 숫자에 잠시 무감각해진다. '신천지'와 '대남병원'이라는 연결고리도 점차 약해지고 있다. 불안감도 커진다. 환자는 늘어나고 의료진과 시설은 부족하다.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확진자 수는 우리의 준비와 예상을 뛰어넘을 것이다.

혹시라도 모를 신문사 폐쇄를 위한 대비책도 마련됐다. 취재 기자들의 동선을 분리하고 위기 상황 시 제작 시스템을 구축하느라 어수선하다. 코로나19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음을 실감한다.

퇴근길. 적막한 도시의 밤은 낮보다 더욱 불안하다. 학원을 마치는 자녀들을 픽업하는 차량, 퇴근 후 회식에서 한잔 거나하게 걸친 취객들, 꺄르르 웃으며 편의점으로 몰려가는 학생들로 북적이던 동네는 가로등 불빛만 선명할 뿐 사람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더욱 빨라진다.

잠자리 누워 하루를 복기해 본다. 오늘은 어디를 다녔고 누구를 만났나. "코로나 걸리는 것은 괜찮은데 신상이 탈탈 털리는 것은 참을 수 없다"던 후배가 떠올랐다. 바쁘게 돌아다니고 많은 사람을 만나는 나의 생활이 의도치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며 그로 인해 원치 않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을 테니. 새롭게 생긴 이상한 습관이다.

일상은 무너졌고 불안은 영혼을 잠식하고 있다. 하지만 민폐 끼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이 위기를 극복하려 애쓰고 있다. 열심히 마스크 쓰고 손 씻고 불필요한 만남을 자제하며 자발적으로 '셀프 격리'에 들어갔다. 스스로를 믿고 국가를 믿고 견디고 이겨보려 한다. 원망과 혐오로 쉽게 위안 삼지 않으려 노력하는 중이다.

또한 기억하려 한다. 대구로 오는 항공편을 중단하고 '대구 코로나'라 호명한 이들, 텅 빈 마트 진열대 사진을 내세워 불안을 파는 이들을. 정부는 무엇을 했으며 국가는 어디에 있었는가를. 힘들고 어려울 때 정치는 무엇을 했는가를. 누가 우리의 손을 잡아주고 눈물을 닦아 주었던가를.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는 그러므로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며 또 달라져야 한다. 이 곳 대구에 살고 있는 250만의 눈물 나게 평범한 하루다.

이은경 문화부장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