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혜의 클래식 오딧세이] 최초의 오페라 '다프네'와 '에우리디체'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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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2-28   |  발행일 2020-02-28 제36면   |  수정 2020-02-28
고대와 르네상스를 연결한 오페라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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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의 카메라타. (출처: https://twitter.com/xoxobaroque/stat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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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부터 유럽은 신대륙의 발견, 화폐 경제의 변화, 기술과 상공업의 발전, 중산층의 급격한 성장과 정치·사회적 권력의 이동 등 많은 변화를 겪었고, 이 변화의 최고 수혜지는 피렌체와 베네치아였다.

정치적 독립과 경제적 풍요를 비교적 많이 누렸던 이탈리아인들은 자신들의 도시에서 고대 로마와 아테네를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고대보다 오히려 중세의 문화를 낡은 것, 오래된 것으로 치부하며 고대의 유물들을 발굴하고 엄청난 양의 문헌을 수집하면서 수천 년 전의 과거를 현재로 불러들이고 있었다.

그들은 이것을 '재생', '부활'이라는 의미의 '리나시멘토(Rinascimento)'라고 불렀고, 이것이 '르네상스'의 기원이다.

피렌체의 학자 중 한 사람인 지롤라모 메이(1519~1594)는 고대 그리스 음악, 그중에서도 '연극에서의 음악의 역할'에 대해 연구했다. 그는 그리스의 비극 공연에서 모든 대사가 노래로 불렸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자신의 생각을 예술 후원가인 바르디 공작, 음악 학자이자 작곡가였던 빈센초 갈릴레이(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아버지), 작곡가 카치니 등과 공유했다. 훗날 '카메라타'라고 불렸던 이 모임에는 전원극 '다프네'를 쓴 시인 오타비오 리누치니와 작곡가 자코포 페리도 참여해 이들은 최초의 오페라 '다프네'를 완성하고 1598년 무대에 올렸다. 이 작품은 안타깝게도 음악의 일부만 남아 있다.

이후 리누치니의 전원극 '에우리디체'에 페리와 카치니, 두 작곡가가 각자 오페라를 작곡하여 1600년에 공연했고 이것은 최초의 현존하는 완성본 오페라이다. 이 작품의 중요한 의미는 바로 대사와 멜로디를 일치시킨 독창에 있다. 당시의 음악은 여러 성부가 동시에 노래하면서 서로 모방하는 형태의 '다성 음악'이 주류였는데, '에우리디체'에서는 가수 한 명의 독창 선율과 그것에 반주를 붙이는 방식을 시도했다. 이들은 '카메라타'에서 지속적으로 논의했던 것을 음악으로 실현했고 이런 새로운 양식을 통해 가수는 내레이션, 대화, 독백을 노래로 표현하게 되었다.

이런 새로운 음악을 '누오베 뮤지케(Nuove musiche)'라고 불렀고, 르네상스의 정신과 새로운 음악적 실험을 바탕으로 탄생한 오페라는 곧 바로크 음악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오페라를 이해하는데 있어 '전원극'은 중요하다. 음악과 노래가 섞여 있는 연극을 말하는데 그 전통은 고대 그리스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스의 비극(Tragoedia)은 원래 디오니소스의 화신인 염소의 사체를 위한 애가(哀歌)였다. 이후 그리스인들은 디오니소스를 '포도주의 신'으로 인식하게 되는데 디오니소스가 풍요를 주는 신이므로 그 축복으로 포도주를 마신다고 생각했다. 염소 고기와 포도주를 즐긴 후 한 명씩 디오니소스를 찬양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합창을 하는 방식의 이 전통은 이후 '디오니소스를 찬양하는 자'와 그에 '응답하는 자'인 두 사람의 대화와 군중의 합창으로 이어졌다.

수백 년이 흐른 뒤 그리스에는 위대한 3대 비극 작가가 나타났고 그중 한 명이 아이스킬로스이다. 이 작가는 기존의 연극에 응답자를 한 명 더 추가하고 비극의 소재나 내용도 더욱 다양하게 만들었다. 이 무대에는 무용수들도 참여했을 것이다. 염소에 대한 노래로 시작했던 연극이라면 염소의 춤이 함께 있었을 것이고, 그 춤도 시의 내용과 함께 다양하게 변화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로써 고대의 연극이 복합적인 매체들로 구성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음악을 말하는 그리스어 '뮤지케'와 연결된다. 그리스인들의 '뮤지케'는 현대인들이 사용하는 '뮤직'과는 개념이 다르다. 뮤지케는 아홉 뮤즈 신(제우스와 기억의 신 므네모시네 사이에서 태어난 아홉 딸들)의 모든 예술을 가리키는데 과학, 수학, 시, 무용, 노래 등 전체를 포함하는 의미이다.

앞에서 소개한 '카메라타'의 멤버들은 이 '뮤지케'의 개념에 주목했다. 그들은 언어로서의 음악, 시와 그 속에 담긴 메시지가 명확히 전달되는 음악을 추구했다. 기존의 다성 음악은 여러 개의 선율과 리듬이 동시에 드러나고 또 반해서 서로를 모방하는 형태이며 서로 너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언어는 묻혀 버린다. '카메라타'의 사람들은 이런 방식 때문에 음악이 추상적이고 모호해진 것을 지적했다. 그들은 당시의 극 음악이 지나치게 세속적인 것과 기존 음악의 문제점을 비판하며 누오베 뮤지케를 주창하였고 빈센초 갈릴레이는 자신의 저서 '고대 음악과 현대 음악 사이의 대화'(1581)를 통해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였다. 이들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호메로스의 비극 '오디세이아'에서 그려진 이상적인 그리스인의 모습에 매료된 것 같은 장면을 새로운 음악을 통해 재현하고자 했을지도 모른다. 이후의 오페라는 몬테베르디(1567~1643)에 의해 더욱 발전하였는데 이런 발전은 1637년 베네치아에 최초의 공공 오페라 극장인 '산 카시아노 극장'이 문을 열면서 더욱 빨라졌다. 엄청난 대중의 인기를 얻게 된 오페라는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영국과 오스트리아로 확산되며 새로운 음악 시장을 형성했다. 이제, 오페라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바이올리니스트, 다원예술그룹 ONENESS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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