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석의 電影雜感 2.0] 바이러스 재난 영화

  • 임성수
  • |
  • 입력 2020-02-28   |  발행일 2020-02-28 제39면   |  수정 2020-04-09
영화가 아닌 현실이 된 공포…더 자주, 더 많은 바이러스와 만날 것이다
컨테이젼(스티븐.소더버그.연출)_포스터
'컨테이젼'(스티븐 소더버그 연출) 포스터.
감기(김성수.연출)_포스터
'감기'(김성수 연출) 포스터.
2020040901010003513.jpeg
'어둠의 눈'(딘 쿤츠) 원서 표지.
지난 18일 저녁 나는 두 달에 한 번 나오는 격월간지 '녹색평론' 대구 독자모임에 참석하고 있었다. 마침 모임장소인 동네 서점 가까이에 신종코로나 감염증(코로나19) 31번 확진자가 교통사고로 입원했다던 한방병원이 있었다. 모임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방역복을 입은 이들이 한방병원과 대구도시철도 2호선 지하철역 인근 1차로를 통제하고 사이렌을 울리며 급히 떠나는 구급차의 모습을 차 안에서 보았다. 을씨년스러운 풍경이었다. 그날 이후 확진자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일대 상가와 건물들은 하나둘 문을 닫거나 휴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대구는 감염병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되었다. 거리에 인적은 끊기고 도로를 달리는 차량들도 눈에 띄게 줄었다.

최근 SNS에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예언한 소설이 화제에 오르고 있다고 한다. 서스펜스 스릴러계의 거장으로 잘 알려진 소설가 딘 쿤츠가 1981년에 발표한 소설 '어둠의 눈(The Eyes of Darkness)'이다. "2020년경 폐와 기관지를 공격하며 이제껏 알려진 모든 치료법에 저항하는, 심각한 폐렴과 같은 질병이 전 세계에 퍼질 것이다." "중국 우한 외곽 소재 RDNA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그것을 그들은 '우한-400(Wuhan-400)'이라고 불렀다." 이 같은 문장들을 무려 40년 전에 적고 있었다는 게 좀 놀랍긴 하다. 실제로 지난 25일 영국 매체 데일리메일이 우한 실험실에서 바이러스가 유출됐을 거라는 음모론을 제기한 바 있다.


03.jpg
40년전 '우한 바이러스' 예언한 소설 SNS 화제
감염 상황 속, 서로에게 적이 되는 '컨테이젼'
한국 영화 첫 호흡기 감염 위험성 다룬 '감기'
폐쇄·살처분·매립…최소한의 존엄조차 상실
국가별 방역 플랜 미비…국경 없는 공포 확대
사태 되풀이 되지 않도록 근본적 원인 찾아야



그러면서 함께 회자되는 영화도 있다. 2011년 9월 개봉한 '컨테이젼'으로 '오션스' 시리즈로 잘 알려진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이 연출한 작품이다. 개봉 당시 국내 흥행에는 실패했는데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극장가로 향하던 관객들이 온라인 플랫폼으로 몰리면서 인기가 수직 상승하고 있다. 자신이 누구에게 감염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모두 서로에게 적이 되는 모습을 침착하고 차갑게 묘사한 이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던 배우 기네스 팰트로는 26일 자신의 SNS에 "파리 가는 길"이라며 "편집증? 신중함? 극심한 공포? 차분함? 전염병? 프로파간다? 비행기에서 이렇게 하고 잘 것이다. 난 이미 영화에서 겪은 일. 안전하게 지내라. 악수하지 말고 손을 자주 씻어라"는 글과 함께 마스크를 쓴 셀카 사진을 올렸다.

김성수 감독의 영화도 비슷한 이유로 화제다. 김 감독은 세종대 영문과를 다니던 시절 유하(시인 겸 영화감독)와 안판석(PD 겸 영화감독) 등과 어울려 연극을 하다가 1986년 서울 신촌 우리마당에서 열린 8㎜영화 워크숍에서 단편영화를 만들면서 영화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동국대대학원 연극영화과를 마치고 박광수 감독의 작품에서 조감독을 맡으며 충무로에 들어와 단편영화 '비명도시'(1993)로 호평을 받은 후 배우 이병헌 주연의 '런어웨이'(1995)로 장편영화 데뷔를 하게 되지만, 흥행에는 참패한다. 이후 정우성 주연의 '비트'(1997)로 기사회생한 후 '태양은 없다'(1998), '무사'(2001)를 잇따라 내놓으며 탁월한 테크니션이라는 평가를 이끌어낸다. 그러나 '엽기적인 그녀' 같은 캐릭터 코미디를 표방한 '영어완전정복'(2003)이라는 다소 의외의 작품을 내놓고 10년 만에 복귀한 작품이 바로 '감기'(2013)였다. 이 영화는 개봉 당시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해 흥행에 실패했으나 2년 뒤인 2015년 메르스가 발생하면서 다시 회자되었던 전례가 있다.

'감기'는 한국영화 사상 처음으로 감기(The Flu) 바이러스 감염 공포를 다룬 재난영화였다. 이제껏 위험성을 의식하지 못한 채 일상 속에서 받아들이던 감기가 사실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엄청난 바이러스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개봉 당시 관객들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걸까. 그러나 감기와 같은 바이러스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줄 치료약은 사실상 없다. 우리가 흔히 감기약이라고 믿고 있는 약들은 대부분 증상을 치료하는 게 아니라 완화시켜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치료 불가능의 바이러스들은 변종과 진화를 거듭하며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영화는 치사율 100%에 달하는 감기 바이러스가 창궐한 도시에서 눈으로 볼 수 없고 체감할 수도 없는 공포 때문에 서로를 불신하고 광기에 사로잡혀가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감염자와 비감염자 사이에 벽을 세우고 벽 안의 감염자들에겐 더 이상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존엄조차 허용하지 않는 도시의 모습은 코로나19가 창궐한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더 이상 영화가 아닌 현실로 다가온다. 백신 개발보다 경기도 분당 폐쇄와 감염자 살처분을 결정하는 모습은 어떤 재난영화보다 더욱 공포스러웠다.

실제로 김성수 감독은 구제역 파동 때 대규모 돼지 살처분 영상을 보고 받은 충격으로 '감기'를 시작했다고 하면서 "(당시) 영화를 준비하며 이름을 밝히기 곤란한 전문가 한 분이 계시는데, 그 분에게 '과연 우리나라에서 동물이 아닌 인간에게 그런 일이 생겨도 그렇게 대처할까요?' 하고 물었다. '당연히 그렇죠'라고 답하더라. 그런 일이 발생하면 지역 고립과 폐쇄, 살처분과 매립이 분명 있을 거라고 했다. 게다가 국가의 방역 플랜도 미비하니까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도 당연하고,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이야기가 굉장한 확장성을 갖게 되더라. 궁극적으로는 국경 없는 공포라고나 할까"라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노무현정부 때에 사스가, 이명박정부 때 신종플루가, 박근혜정부 때에 메르스가 있었다. 이제 이런 사태는 우리의 일상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앞으로 더 자주, 더 많은 바이러스들을 만나게 될지 모른다.

존경하는 은사이기도 한 김태일 2·18안전문화재단 이사장은 자신의 SNS에 "위험사회가 일상이고, 안전사회가 예외다. 안전사회란 없다. 그러니 두려워말자"라고 썼다. 이런 사태가 닥쳤을 때 어떻게 대응하는가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이런 사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근본적인 원인을 찾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후위기의 시대에 그것이 가능할 것인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

독립영화감독, 물레책방 대표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