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대관람차' (백재호·이희섭 감독·2018)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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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3-13   |  발행일 2020-03-13 제38면   |  수정 2020-03-13
위로가 필요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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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멈춘 것 같았다. 코로나19로 대구 전체가 숨죽인 시간, 영화를 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나날이 늘어가는 확진자 수에 우리는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다. 외출 기피로 집에 틀어박힌 채 하루에 영화를 4편이나 봤다는 지인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도무지 영화를 보고 있을 수 없었다. 지역을 걱정하고, 나라를 걱정하고, 틈틈이 집안일을 하고, 장을 봐서 어느 때보다 열심히 식구들에게 밥을 해 먹였다. 미세하게나마 늘어가던 확진자 수가 줄고, 마스크 사려는 줄도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그제서야 '시간이 참 많아졌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미뤄두었던 영화 관람을 시작했다. 한국 영화의 아카데미상 수상을 계기로 우리 영화를 좀 더 챙겨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찜해두었던 영화가 바로 '대관람차'다.

선박회사 대리 '우주'는 일본 오사카에 출장을 갔다가 자취를 감춘 선배를 찾아 나선다. 선배를 닮은 사람을 뒤쫓다가 그는 우연히 pier(피어)34라는 작은 바에 도착한다. 음악과 술에 취해 귀국 비행기를 놓친 우주는 다분히 충동적으로 사표를 낸다. 그리고 pier34에 머물게 된다. 거기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스노우와, 그에게 기타를 배우는 하루나가 있다. 하루나의 아버지는 가수였지만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부인을 잃은 뒤 세상과 담을 쌓은 채 지낸다. 하루나는 노래와 웃음을 잃은 아버지를 위해 미니콘서트를 준비한다. 우주는 하루나와 함께 연습을 하며 하루하루 달라져 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영화를 너무 오랜만에 봐서일까. 이 영화의 잔잔한 분위기 속 서정적인 화면과 음악이 너무 좋았다. 일본 특유의 정갈한 분위기가 듬뿍 담겨있다. 한일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달으면서 어쩐지 일본영화를 멀리하게 된 감이 있다. 오사카 올 로케이션이라는 걸 알았다면 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주인공 외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일본인인 이 영화에는 사람 냄새가 가득했다.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마음 따뜻한 사람들이 있었다. 가수 출신 배우 강두의 자연스러운 연기가 좋고, 루시드폴의 음악이 서정적인 배경과 멋지게 어울린다.

영화 내내 대관람차가 나오는 화면을 보면서 얼마 전 바닷가 근처에서 패러글라이딩하는 것을 본 생각이 났다. 감염병으로 모두가 숨죽이고 있는 가운데 유유히 하늘에 떠 있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마치 딴 세상 사람들 같았다. 인간사와 관계없이 한결같은 바다를 보고,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고 나니 어쩐지 가슴 한구석이 뻥 뚫리는 듯했다. 대관람차에서 내려다보는 풍경도 그렇지 않을까? 패러글라이딩을 하며 내려다보듯, 대관람차에서 풍경을 내려다보듯 그렇게 조금은 높은 곳에서 이 땅의 상황을 살펴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싶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힘든 시기를 통해 돌아볼 것은 없는지…. 우리 모두 뭔가에 쫓기듯 살아온 것은 아닐까?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청년들은 청년들대로, 어른들은 또 어른들대로 그렇게 말이다.

21세기라는 초문명 사회에서 감염병 때문에 두려워 떠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 앞에서 우리가 달라져야 할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영화 '대관람차'가 조금은 힌트가 될 수도 있겠다. 그렇게 지치도록 마냥 달려가지 않아도 된다고. 조금 쉬어가도 된다고. 노래와 웃음을 잃어버린 아버지 앞에서 힘차게 노래하는 하루나와 우주의 모습이 지금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 같다. 시인·심리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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