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커버 스토리] 건강식품의 '불편한 진실'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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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3-13   |  발행일 2020-03-13 제33면   |  수정 2020-03-13
예전부터 통념으로 신봉한 '밥이 곧 보약'
몸에 좋은 꿈의 식품은 마케팅이 만든 환상
환자·건강염려증 걸린 사람 '봉'으로 겨냥
적당히, 알맞게, 골고루 먹는 식생활이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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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우리 국민들은 '밥이 곧 약'이란 식약동원(食藥同原) 통념을 과도하게 신봉했다. '음식으로 치유하지 못하는 병은 약으로도 못 고친다'는 생각 때문에 만병통치약 문화를 넘어 기적의 건강식품 특수를 불러일으켜 악덕상혼을 양산시켰다. 하지만 몸에 필요한 음식은 몰라도 '몸에 좋은 특정 식품이 존재한다'는 것은 마케팅이 만든 거짓 신화이며 식품 의학자는 그런 꿈의 식품은 하나의 환상일 뿐이라며 알맞게·적당하게·골고루 그리고 정상적인 식생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모르긴 해도 '몸에 좋은 식품' 신드롬의 첫 단추는 '죽염'이었던 것 같다. 이를 개발한 민족의학자인 김모씨의 가치관과는 상관없이 많은 소비자들은 '죽염교'의 맹신자로 돌변했다. 어느 날부터 죽염이 '만병통치약'으로 등극한다. 사실 기자도 죽염을 애용했던 사람 중 한 명이다. 어느 날 나는 소금 관련 기사를 취재하는 과정에 '과연 소금에 좋고 나쁨이 있을까'라는 궁금증을 풀기 위해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에 정식으로 질의를 한 적이 있다. 식약처 측은 '소금은 그냥 염화나트륨 (NaCl)일 뿐이다. 몸에 좋은 소금이란 표현은 반(反)식품의학적 표현이다. 소금 성분은 각종 시약을 통해 분석할 수 있어도 소금이 몸에 좋은가를 측정하는 기계는 아직 지구상에 없다. 식품을 약품처럼 과장해서 판매를 하면 식품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게 된다'고 했다.

현재 죽염은 약품이 아니라 식품이다. 제조사도 '태움 및 용융에 의한 가공염'으로 명기해 놓았다. 하지만 유통 상인은 약품처럼 과장하고 싶은 유혹을 떨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모든 음식의 출발이랄 수 있는 소금. 소금이 바닥나면 맨 먼저 심장이 나트륨(Na) 부족으로 심정지가 된다. 그래서 인지 옛 어른들은 임종 직전 곡기를 끊었는지도 모른다.

'짜게 먹으면 몸에 나쁘다!'며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싱겁게 먹는 국민이 돼 버렸다. 문제는 현재 소금에 대한 의학적 기준조차 오락가락한다는 사실. 2013년 5월 미국의학학술원이 참으로 당혹스러운 발표를 한다. '소금을 너무 적게 섭취하면 건강에 문제가 생기고, 종전에 권장했던 1일 소금 섭취 권장량 5.8g 이하가 건강에 좋다고 했던 것이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모든 사람의 염도적응력을 누가 알 수 있을까. 현재 그 어떤 의학자도 1일 권장량을 확실하게 제시할 수가 없는 처지다.

우리나라에는 다른 나라에 없는 유별스러운 식문화가 있다. '식품으로 못 낫는 병은 약으로도 치유 못한다'는 '식품이 곧 보약(食藥同原)'이란 통념이다. 보약(補藥). 다른 문화권에는 없는 단어다.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빛을 발한다.

그 시절 가부장은 식치(食治) 전문가였다. 병원과 약국에 접근할 수 없던 시절이라 다들 집에서 허준의 동의보감 스타일의 대증요법으로 치병을 했다. 그 보약론은 곧바로 '만병통치약' 신화로 이어졌다.

만병통치약의 역사는 유구하다.

유럽에서 흑사병이 창궐할 때 브랜디를 마시면 흑사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통용됐다. 한 때 수은도 중세 귀족층한테 명약으로 각광 받았고 신대륙 발견 이전부터 아메리칸 원주민들은 석유를 류머티즘 치료제로서 사용했다. 방사능이란 개념조차 없던 시절에 발견된 라듐은 그 반짝거리는 성질 때문에 차세대 신약으로 남용되기도 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장터를 떠돌던 약장수들이 만병통치약 전파자들이다. 두꺼비·호랑이 기름이 만능 피부약으로 팔려 나갔다. 이후 효도관광 가이드의 건강보조식품 판촉 멘트도 그 못지않았다.

일상을 파고든 사이비 교주, 무속인, 도인, 초능력자, 자연치유 전문가 등은 지금도 단골을 확보하기 위해 자기만의 비약(秘藥), 부적 등을 은밀하게 유통시키고 있다. 지리산, 계룡산 등 민족의 영산 약초꾼들도 '특정 약초 특정 효과론'을 설교식으로 전파한다. 과신의 부작용을 의학자들이 아무리 주의해도 무용지물이다. 일반인의 잡학스러운 의학상식은 희한하게 이 나라에선 의학을 압도해버렸다.

부모들도 한몫했다. '툭하면 이건 몸에 좋은 보약'이라며 시도 때도 없이 들이댔다. 몬도가네 유전자를 가진 정력지상주의 중년 사내들은 웅담, 뱀탕, 지네, 용봉탕 등을 싹쓸이했다. 현모양처로 가정을 지켰던 아내들은 가장인 남편을 위해 1년에 꼭 한번 수십만 원대의 보약을 단골 한의원을 통해 구매를 했다. 한의사들은 침보다 보약 때문에 돈을 벌 수 있었다.

이런 왜곡된 정서 때문에 2017년 세간을 놀라게 한 '기적수 파동'이 가능했다. 지하수에 천년초즙 섞은 물을 각종 질병에 탁월한 '기적수'라고 속여 생수보다 10배 이상 비싸게 판매한 일당은 각처 센터를 통해 기적수의 효능과 효과를 강연하고 청중에게 이 혼합 음료를 판매했다. 지금도 제2, 제3의 기적의 식품이 건강염려증에 걸린 사람들을 '봉'으로 겨냥하고 있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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