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코로나19와 교양사회 FM

  • 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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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3-16   |  발행일 2020-03-16 제25면   |  수정 2020-03-16

성군경

이른 냉이 다듬으면 봄 향기 폴폴 나는데, 코로나가 전 국민의 일상을 흐린 날로 만들고 있다.

지구촌은 신종 플루·사스·메르스에 이어 최근 코로나19까지 거의 매년 유해한 바이러스의 공격을 받고 있다. 예로부터 국가적으로 전염병이 발생하면 국민들은 극도의 불안감과 공포심이 생겨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했다. 일상 생업과 사회활동이 극도로 위축되고 제약을 받아 경제는 피폐해지고 사회 분위기도 차가워졌다. 심지어 전염병에 대한 거짓소문이 나돌고 희생대상을 찾아 응징하는 마녀사냥까지 벌어졌다.

지금 대구는 특별관리지역으로 선포되었지만, 중국 우한처럼 봉쇄된 것은 아니다. 거리는 무척 한산하고 이따금 보이는 사람들은 겁에 질리거나 분노하는 모습보다는 무표정하지만 차분한 걸음걸이다. 간간이 마스크를 사려는 지루한 행렬이 보이는 곳도 질서정연하게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접촉자들은 자가격리를 모두 조용하게 견뎌내고 있다.

대구사람들은 전염병과 싸우면서 '밤을 걷는 선비'처럼 멋진 시민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시민의 생각을 둘로 가르는 사소한 개인의 말이나 언론보도는 인용하지도 않고 아예 무시한다. 대구 사람들은 집 밖으로 못 나가서 억울하고 분노가 치미는 것이 아니라 안 나가서 코로나19 확산을 막고 이웃을 지키니 당당하고 그나마 안도한다. 이처럼 대구는 모든 역량을 하나로 뭉쳐서 전염병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누군가 대구를 고담시티로 지칭하며 손절의 도시라 했다. 그런 대구는 지금, 나대지 않고 설치지 않고 지껄이지 않고 오히려 침묵을 선택하고 있다. 그렇다고 대구가 아주 침잠하기만 하는 도시는 아니다.

현재 대구 사람들은 권리나 이익보다 더 지고지순한 인간의 도리를 먼저 생각하며, 조용히 침묵하는 가운데 무엇이 바른 길인지를 가르쳐 줄 수 있는 이정표를 세우고 있다. 지금 대구는 강물 위에 떠서 소용돌이에 말려 가라앉지도 않고, 속으로 썩어버리지 않는 통나무의 지혜를 발휘하고 있다.

중국 우한에서는 도시 탈출과 무질서 등 난장판이 연출됐다. 이탈리아 중심지에서는 코로나19 사태로 교도소 폭동이 일어나고 슈퍼마켓 물품이 동이 나는 등 생존의 욕망이 밑창까지 드러냈다. 이런 것과 달리 미국 언론은 대구를 "이상하게 도시 탈출도 폭동도 사재기도 약탈도 없다. 그리고 미국과는 다르게 분노도 폭발시키지 않는다"라고 보도했다.

대구는 코로나19로 인해 새로운 일상을 맞았다. 인간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는 고난을 다루기 위한 정신적 능력을 이용하기 시작할 때 나타난다. 고통은 본성을 깨닫게 하고 지혜의 분별력을 지니게 한다. 코로나19는 우리 대구를 더 현명하게 만들어줄 삶의 교훈을 가져다주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서서 '교양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교양사회의 핵심은 '민도의 고양'에 있다. 세계는 대구를 통해 전염병 방역의 새로운 가능성을 본다고 했다. 차분한 절제와 질서가 돋보이는 대구를 세계인은 경이의 눈길로 지켜보고 있다. 지금 지구촌이, 대한민국 대구 사람들이 연출하는 '교양사회의 FM'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요즘 대구스타디움으로 나가보면 제3 주차장과 인근에 전국 각지에서 온 구급차로 즐비하다. 대구경북 이웃지자체들의 따뜻한 손길이 느껴진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한명의 환자를 더 살리기 위해 잠 못 자고 고생하는 전국 각지에서 오신 모든 의료진의 헌신과 봉사에 감사드린다.

성군경 (한국시민문학협회 회장 사랑니·치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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