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희의〈오늘을 읽다>] 당신의 아이는 안전한가요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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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3-19 07:49  |  수정 2020-03-19 07:54  |  발행일 2020-03-19 제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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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2주간이다. 애들이 코로나로 인해 학교를 못 간다. 직장을 다니는 엄마들의 멘탈은 무너졌다. 결코 안전하지 않은 사회에서 내 아이만 집에 덩그러니 두는 현실은 영화 '나 홀로 집에'의 공포버전쯤이랄까. 의료복지 최선진국을 확인한 이번 사태에서 아이돌봄 시스템은 어디에도 없었다.

처음에는 감염 공포에 휴교를 반겼다. 하지만 휴일이 끝난 월요일, 당장 아이들만 집에 두고 직장을 나와야 하는 엄마들은 '이것이야말로 코로나보다 무서운 공포'라는 걸 실감해야 했다. 사무실에선 전화기를 붙들고 난리가 났다. "어머니, 몇 시까지 오세요." "집에 와선 꼭 옷을 갈아 입어야 해요. 버스에서 바이러스가 묻을 수 있어요."

우리가 언제 이런 현실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부모님이 있어도 이럴진대 객지 생활이거나 친인척이 가까이 없는 경우, 아이를 맡길 데라고는 어린이집 하나에 의지해 직장생활을 해온 엄마들에게 바이러스 대란은 '인생에 없던 시나리오' 그 자체였다. 사실 일하는 엄마들 사이에도 계급이 있다. 재택근무가 가능한 엄마, 휴가가 가능한 엄마, 목발 짚어도 나가야 하는 엄마, 안 나가면 잘리는 엄마 등으로 계급사회의 민낯이 그대로 숨어있다. 이 순서에 따라 공포의 정도는 반비례한다.

비정규직 최저임금의 엄마일수록 그 공포는 더할 것이다. 특히 한부모 가정, 미혼모의 경우엔 생각만 해도 참담하기 그지없다. 이런 현실을 보다 못한 어떤 중년여성은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떡 하니 알림글을 붙였다. '애 봐드립니다. 저는 코로나 없어요. 직장 다니는 엄마들을 위해 봉사할게요.'

하지만 누구도 신뢰하지 못하는 감염공포 속에서 낯 모르는 이에게 아이를 맡길 사람은 없었다. 괜한 푼수 짓을 했다며 종이를 뗐다는 그 중년여성은 "나도 일할 때엔 애 맡길 데가 없어 발을 동동 굴렀는데, 이번에 그 생각이 제일 먼저 나더라"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코로나19로 재난지역 선정, 공적 마스크 배부 등 여러 사회시스템이 대두됐지만 육아를 대신할 시스템은 없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났다. 긴급돌봄이라 해서 당번 교사가 배치되는 제도가 시행되더라도 현실 충족과는 거리가 멀었다. 일하는 여성을 위한 육아 안전제도는 거의 절망적인 상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덴마크 국교회를 비판했던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이 절망인 줄 모를 때 죽음에 이르는 병이 된다'고 했다. 아프다는 것을 알아차리면 치료의 길로 들어서지만 고통을 인지하지 못하면 행복을 추구하는 길로 들어설 수 없다. '아이는 각자 알아서 키운다'는 단절적이고 고립적인 인식 혹은 가부장 사회가 여성에게 던졌던 무책임한 메시지로부터 딛고 일어서야 한다.

바이러스 공격이 연도별 간격을 좀 더 좁혀 닥쳐올 것이라는 예상이다. 아직도 정치인이나 권력자들은 마스크 속 아이 엄마들의 얼굴을 모른다. 일해서 세금을 내는 만큼 정치권과 사회제도에 목소리를 내어주시라. 다음에 올 바이러스 시즌2에 또다시 아이를 집에 혼자 둘 순 없다. 일하는 엄마들이 혹사하지 않도록, 아이가 외롭게 집에 혼자 있지 않도록, 무서움에 떨지 않도록, 행복으로 가는 길을 발견할 수 있도록, 그 답이 뭐가 될진 모르겠지만 질문을 던져야 우리는 발전한다. 이상을 추구하는 건 현실의 문제를 발견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남의 아이를 내 아이처럼 생각한다는 건 가식이겠지만, 그래서 더욱 공적시스템이 필요하다. 이럴 때 쓰려고 세금 내며 '공동체'라는 말을 달고 산다. '놀면 뭐하니'라는 프로그램은 뭐든 현장에서 구현하던데, 나라든 회사든 자치단체든 우리 애 좀 현실적으로 지켜주면 안 되겠니.〈크레텍 커뮤니케이션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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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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