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혜의 클래식 오딧세이] 바흐의 모테트 BWV 227 '예수, 나의 기쁨'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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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3-27   |  발행일 2020-03-27 제35면   |  수정 2020-03-27
종교전쟁 이후 안정기, 삶과 죽음에 대한 바흐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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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의 모테트 BWV 227 '예수, 나의 기쁨' 가사는 요한 프랑크의 시와 성경의 로마서 8장을 바탕으로 쓰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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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 바흐는 왕실과 교회가 고용한 직업 음악가였다. 하지만 직업적 의무에만 충실했던 음악가는 아니었다. 바흐의 소유였던 칼로프 성경(미국 콩코디아 신학대학 소장)에서 찾은 20여 개의 친필 주석과 수백 개의 밑줄 친 부분들을 통해 바흐의 일관된 삶의 태도, 즉 직업 이상의 신앙적 가치관이 그의 음악에 녹아있음을 짐작하게 된다.

1735년 50세의 바흐는 자신의 가문의 역사를 보여주는 바흐 가계도(家系圖)를 작성하면서 가문의 시조라 할 수 있는 바이트 바흐(Viet Bach)가 종교적 탄압을 피해 헝가리에서 독일로 이주한 것을 기록했다. 약 300년간 바흐 가문은 수많은 음악가를 배출했고 이 가문의 뿌리가 되는 바이트 바흐가 신앙을 지키기 위해 삶의 터전을 옮겼다는 사실은 바흐의 음악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단초가 된다.

바이트 바흐가 헝가리를 떠난 이유는 서양 음악과 문화에 엄청난 변혁을 가져온 종교 개혁과 관련이 있다. 16세기 초 교황이었던 율리우스 2세는 로마에 성 베드로 성당 신축 계획을 세우고 재정 조달을 위해 면죄부를 발행했다.

면죄부 판매가 몇 년간 지속되자 1517년 마틴 루터(1483~1546)가 '95개의 반박문'을 교회 앞에 붙였는데 이 사건이 종교 개혁이다.

독일 비텐베르크대학의 성경 신학 교수였던 루터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로마서 1장 17절)라는 구절을 통해 '구원은 인간의 행위가 아닌 믿음을 통한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 여기에 기초한 95개의 근거로 면죄부 판매와 교회의 부패를 비판한 것이다. 종교 개혁과 그 영향을 짧은 지면에 모두 소개할 수는 없지만 몇 가지 중요한 부분을 짚어보자. 당시의 성경은 라틴어로 되어 있었고 루터의 반박문 역시 라틴어로 쓰였다. 따라서 라틴어를 몰랐던 대중들은 교회의 가르침에 따를 수밖에 없었고, 면죄부 판매에 대한 문제 의식을 제대로 공감하지 못했고, 루터는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고 독일어 찬송을 만드는 것에 전념했다.

성직자와 귀족의 전유물인 라틴어 성경에서 독일어 성경으로의 변화는 '고귀한 신분'과 '미천한 신분'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일으켜 개인이 자신의 현실에 비춰 성경을 해석하게 되고, 교회 밖에서 찬송이 불리면서 대중의 사회 문화적 활동이 활성화되었다. 이런 변화와 '인쇄술'이라는 기술이 만나 출판업이 성행하고 이후의 음악 발전, 특히 유럽의 문화교류 확산과 음악 시장의 성장 등 많은 혁신의 원동력이 된 것이다.

J.S. 바흐는 종교 개혁이 시작되고 약 170년이 흐른 1685년에 태어났다.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간의 극렬한 종교 및 정치적 대립이었던 30년전쟁(1618∼1648)이 끝난 후 서로의 세력을 인정하며 안정이 유지된 시기로 바흐가 신앙의 자유를 누리며 다른 유럽의 다양한 음악도 자유롭게 접할 수 있었던 환경을 의미한다.

바흐는 1692년 아이제나흐 라틴어 학교를 거쳐 뤼네부르크에 있는 학교에서 1702년까지 라틴어, 신학, 인문학, 작곡, 오르간 연주 등을 배웠다. 말년의 바흐는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학교의 칸토르로 임명(1723년)되었는데, 칸토르는 최고의 권위를 가진 음악감독으로 음악적 수준만 아니라 신학적으로도 해박한 지식이 요구되는 직책이다.

따라서 이 시기의 바흐 작품들은 그의 음악적, 인문학적, 그리고 신학적 지식과 경험이 총체적으로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모테트 BWV 227 '예수, 나의 기쁨'은 1723년에서 1727년 사이 라이프치히에서 작곡된 6개의 모테트 중 한 곡이다. 이 곡은 5성부 합창곡으로 존 크뤼거의 독일 찬송가 멜로디에 기초해 리듬·박자·빠르기·성부 배치 등을 다양하게 변화시킨 11개 곡으로 구성되었고, 가사는 요한 프랑크의 시와 성경의 로마서 8장을 바탕으로 쓰였다. 1·3·7·9·11곡은 요한 프랑크의 시를, 그리고 2·4·5·6·8·10곡은 로마서 8장의 성경 구절을 배치해 인간의 고백과 하나님의 말씀이 서로 주고받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인간의 죄의식과 두려움, 구원을 통한 자유함, 죽음과 생명, 육신과 성령 등과 같은 내용이 서술돼 있고 '예수, 나의 기쁨'이라는 제목 역시 연약한 인간이 구원을 통해 생명을 얻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부활로 인한 신의 은총이며 구원이 주는 자유함으로 기쁨을 누린다는 기독교의 구원관을 담고 있다.

이 곡은 가사와 음악의 조화가 매우 뛰어나 음악 수사학 발전에 크게 기여한 곡으로 현재까지 연구되고 있으며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바흐 연구가로도 알려진 슈바이처 박사가 "이 곡은 삶과 죽음에 대한 바흐의 설교라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참고로 BWV는 바흐의 작품 목록이란 뜻의 독일어 'Bach Werke Verzeichnis'의 약자이고, 1950년 볼프강 슈미더가 정리했다.

바이올리니스트·다원예술그룹 ONENESS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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