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이 강산 落花流水(낙화유수)

  • 원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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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3-30   |  발행일 2020-03-30 제27면   |  수정 2020-03-30

코로나 사태는 금수강산(錦繡江山)을 적막강산(寂寞江山)으로 만들었다. 사회적·물리적·방역적 거리두기라는 여러 명칭으로, 두 달 가까이 지속된 전대미문(前代未聞)의 거리두기와 강요된 칩거는 우리 심신을 지치게 하기에 충분했다. '가난이야 한낱 남루(襤褸)에 지나지 않는다'라던 어느 시 문구처럼 좋은 계절이 눈앞에 왔다. 하지만 이전의 그 아름답던 강산이 아니다. 아픈 강산이다. 따분했던 일상이 오히려 이상적인 삶이었다는 뒤늦은 깨우침이 허망하다.

방앗간에 참새들이 없는 건 당연하다. 난국(難局)에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이 인간의 생존 본능이다. 하지만 애주가들은 어쩔 것인가. '무주불면(無酒不眠)·무주상심(無酒傷心)'인데 잠 안오고, 맘 상하는 날들이 많아지니 견디기 어렵다. 일찍 퇴근하던 어느 날 이게 뭔 일? 집 거실에 그럴듯한 술상이 차려져 있었다. 특정 회사의 고급 막걸리에 계란말이, 돼지 두루치기 안주까지 익숙하지 않은 풍경이었지만 썩 괜찮았다. 이후 아파트 3층 거실에서 초저녁부터 문 열어놓고 한 잔 마시기 행사가 이어졌다. 백조 살롱에 신 마담이라…, 코로나가 부른 신풍속도(新風俗圖)였다.

서울 등 먼 곳에 사는 친구들이 전화로 안부를 물어왔다. 다들 "좋아하는 술 못 먹게 됐는데 어떻게 견디느냐"고 걱정해 주면 이렇게 답해 주곤 했다. "못 먹기는-. 백조 룸 살롱에서 매일 신 마담하고 마시고 있다"고 자랑 아닌 푸념으로 소식을 알렸다. "그런데 매일 똑같은 장소에 똑같은 얼굴이어서 갈수록 신선미가 떨어진다"고 너스레를 떨었더니 모두 뒤집어졌다.

이 미증유(未曾有)의 코로나 감염 사태는 한편으로는 '만물의 영장(靈長)'이라는 인간의 품격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했다. 인간들이 과연 영장의 자격이 있는지 의문을 품게 했다. 영묘한 능력을 지녀 만물 중에서 으뜸이라는 칭호를 받은 인간이 아니던가. 그 인간들이 민망한 맨살을 너무나 많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영장에서 하찮은 존재로 인간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사건들 탓이다. 통제·격리·결핍 사태에 대처하는 인간군상의 태생적 다양성을 말해준다고 하지만 위로가 되진 않는다.

인간의 품격을 추락시킨 주범은 우선 불법·편법까지 동원해 사익을 추구한 이들이다. 웨스턴 영화 제목처럼 '나쁜 놈'이다. 이웃의 고통은 외면하고 마스크나 각종 위생용품 사재기나 빼돌리기로 엄청난 돈을 번 족속들이 의외로 많다. '이상한 놈'도 있다. 코로나 사태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려 하는 부류다. 의학적 권고보다 정치적인 고려를 우선시하는 행태가 있었고 비난을 샀다. 있을 수 없고,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당연히 '좋은 놈'도 있어야 균형이 맞는다. 각종 성금이나 지원품을 보내고 기꺼이 자원봉사에 나선 이들이다. 수산업자들의 어려움 해소를 위해 생선회 드라이브 스루 판매 행사를 연 포항시의 앞선 사례는 모범이 되고 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무엇보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가 보여주는 의연함이다. 생난리통에도 미국·일본과 같은 사재기 법석도 없었다. 오히려 마스크 나누기나 성금·물품 기부 등을 통해 고통 분담에 동참하고 있다. 고통과 불편에도 묵묵히 인고(忍苦)의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전 세계가 선망의 눈길을 보낼 만하다. 꽃들이 만개한 이 강산, 꽃잎이 물에 떠내려가고 있다. 다시는 오지 않을 소중한 시간이 무심히 흐르고 있다. 강물 위 꽃잎들처럼.
원도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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