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냥의 시간, 국내 영화계 파문 예고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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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3-29   |  발행일 2020-03-30 제20면   |  수정 2020-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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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냥의 시간' 포스터


"이중계약이다." "법적 문제 없다."
영화 '사냥의 시간'의 넷플릭스 독점 공개(4월 10일)를 놓고 해외 세일즈를 대행한 국내 업체 콘텐츠판다와 투자배급사 리틀빅픽처스가 날을 세웠다.
코로나19 사태로 당초 예정된 2월 26일 국내 개봉이 무기한 연기된 게 발단이다. 리틀빅픽처스는 "회사 존폐가 걸려 있는 만큼 현실을 감안한 최선의 차선책"이라며 콘텐츠판다에 계약 해지 의사를 전했고, 콘텐츠판다는 "이미 해외판매가 완료된 상황에서 일방적인 계약해지는 있을 수 없다"며 법적대응도 불사하겠다는 방침이다. 영화계는 이번 사례가 몰고 올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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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냥의 시간'의 한 장면
넷플릭스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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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판다
리틀
리틀빅픽처스

◆ '사냥의 시간' 극장 개봉없이 넷플릭스로 직행

리틀빅픽처스는 지난 23일 "넷플릭스를 통해 '사냥의 시간'을 오는 4월 10일 전 세계 190개 국에 동시에 공개하기로 결정했다"고 알렸다. 개봉을 앞둔 한국 영화 신작이 넷플릭스로 직행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리틀빅픽처스 측은 "이번 계약은 국내는 물론 전세계 극장들이 문을 닫는 상황에서 세계 각국 영화사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도 불가피한 상황이었다"며 "콘텐츠판다 측에 충분히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냥의 시간'은 순제작비 90억원과 홍보 마케팅 비용 27억원을 합쳐 총117억원이 투입됐다. 이미 홍보 마케팅 비용은 다 소진한 상태다. 때문에 "영화를 오랫동안 기다린 관객들과 투자사들을 고려할 때 언제까지 (개봉을)미룰 수가 없었다"고 밝힌 권지원 리틀빅픽처스 대표는 "넷플릭스와의 계약 금액을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지만, 제작비를 어느 정도 충당할 정도는 된다"면서 "이와 관련해 투자사들과 제작사의 동의를 구했다"고 말했다.

콘텐츠판다는 발끈했다. "리틀빅픽처스가 투자사들에게 글로벌 OTT사와 글로벌계약을 체결할 계획을 알리는 과정에서 당사만을 누락시켰다"고 반박했다. 게다가 "충분한 사전 논의 없이 3월 초 구두 통보를 통해 넷플릭스 전체 판매를 위해 계약 해지를 요청해왔고, 3월 중순 공문발송으로 해외세일즈 계약해지 의사를 전했다"고 밝혔다.

콘텐츠판다는 지난해 1월 24일부터 리틀빅픽처스와 해외세일즈 계약을 체결하고 1년 이상 업무를 이행해왔다. 콘텐츠판다 측은 "그 결과 현재 약 30개국에 영화를 선판매했고 추가로 70개국 계약을 앞두고 있다"며 "리틀빅픽쳐스는 극장개봉을 준비하고 있는 해외 영화사들로부터 기존에 체결한 계약을 번복할 의사가 없음을 직접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넷플릭스와의 계약을 강행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콘텐츠판다의 주장이 맞다면 이미 30여개국에 해외 판권을 판 리틀빅픽처스가 소송 위험을 무릅쓰고 넷플릭스와 독점 공개 계약을 체결한 이유는 뭘까. 리틀빅픽처스는 전체 제작비의 2%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수출 금액이 크지 않은데다, 지금 당장 개봉해도 관객 감소로 제작비 회수가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를 "이중 계약"이라고 주장하는 콘텐츠판다 측은 "이런 일방적인 행위로 금전적 손해를 입는 것은 물론이고, 그동안 해외 영화시장에서 쌓아 올린 명성과 신뢰를 잃게 될 위기에 처했다"며 "해외 영화사들이 확보한 적법한 권리를 무시하고 국제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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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서울 시내 한 영화관의 한산한 풍경.


◆ 새로운 국면 맞게 된 영화계

누구보다 당황스러운 건 고사위기에 처한 극장들이다. 신작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이 됐지만 향후 이와 비슷한 사례가 또 이어질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 여파로 3월과 4월에 개봉을 미룬 영화만 어림잡아 50편이 넘는다. 이들 작품도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하면 OTT에 공개 의사를 타진할 가능성이 있다.

한 극장 관계자는 "배급사 결정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영화 생태계적 측면에서 어떤 파급효과를 가져올지 우려된다"며 "충분히 경쟁력이 있는 중급 규모 영화들이 스크린을 포기하는 사례가 계속 나올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극장들은 그동안 넷플릭스와 힘겨루기를 해왔다. 넷플릭스 영화를 개봉할 경우 2~3주 유예 기간(홀드 백)을 거쳐 넷플릭스에 공개할 것을 요구해왔다. 홀드 백 기간을 지키지 않으면 상영을 거부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장기화됨에 따라 '사냥의 시간'처럼 극장이 아닌 다른 채널을 통해 영화를 배급하는 사례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김광원 대중문화평론가는 "코로나19에 따른 가장 큰 문화적 변화는 적정 수순에서 멈출 거라 예상한 OTT시장이 가열돼 오히려 자리를 잡는 것"이라며 "이번 문제를 잘 해결해 성과를 낸다면 중소 투자·배급사는 새로운 판로를 확보함과 동시에 재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될 수 있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제훈·최우식·박정민·안재홍 등이 출연한 영화 '사냥의 시간'은 새로운 인생을 위해 위험한 작전을 계획한 네 친구들과 이를 뒤쫓는 정체불명의 추격자가 벌이는 숨 막히는 시간을 담아낸 스릴러다. 지난 2월 20일 개막한 올해 제70회 베를린영화제 베를리날레 스페셜 갈라 섹션에 초청돼 호평을 받았다.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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