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안된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 대출 정책에 금융현장 아수라장

  • 홍석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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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3-29 17:31  |  수정 2020-03-29 17:42  |  발행일 2020-03-30 제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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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준비 없이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 대출 정책을 발표하면서 금융 현장이 큰 혼란을 겪고 있다. 사진은 지난 25일 대구 북구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대구 북부센터에 대출을 받기 위해 몰려든 소상인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 <영남일보DB>

코로나19 사태로 생존 위기에 몰린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지원을 위해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고 있지만 밀어붙이기식 집행을 고집하면서 현장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 은행과 보증기관, 소상공인시장지원센터의 행정 처리능력과 소상공인의 자금수요 예측이 빗나가면서 금융시스템에 병목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29일 대구지역 금융권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한 정부자금을 집행하고 있는 금융기관들의 혼란은 현재 진행형인 것으로 나타났다. 시중은행과 보증기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지역센터 등에서는 매일 쏟아지는 정책자금집행으로 인해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가장 심각한 곳이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소속의 지역센터들이다. 대구의 북부와 남부지역센터는 기존의 정책자금지원 대상 확인 업무에서부터 과부하가 시작됐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하루 1천명 이상이 찾았지만 직원 1인당 처리 건수가 10건 남짓이다 보니 발급 가능한 확인서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상황이다. 지난 25일부터는 소상공인 직접대출 업무까지 맡게 되면서 직원들의 업무 부담은 더욱 늘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관계자는 "30여명의 지역센터 직원들이 직접 대출 업무을 하면서 기존의 업무는 거의 마비상태"라면서 "신용도가 좋거나 상황이 상대적으로 여유있는 분들에게는 (직접대출 대신) 보증기관 소상공인대출을 권유하고 있지만 확인서 발급이 늦어져 이마저도 원망을 사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정한 정책이 현장에 전달이 늦게되는 탓에 현장에선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며 "이미 고객들은 뉴스 등을 접하고 현장에 오지만 막상 현장에선 그날 오전 당일 통보를 받는 경우도 있다"고 하소연했다.

소상공인업계는 내달부터 직접대출에 대해 출생연도에 따른 홀짝제를 도입되고, 은행권 대출이 활성화되면 대출적체에 숨통을 틔울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센터의 기대와 달리 금융권 상황은 여전히 복잡하다. 소상공인들을 대상으로 시중 은행에서 신용등급 1~6등급까지 대출이 급하게 추진돼 고객이 몰리면서 사전 준비 시간이 부족했던 금융권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정부가 내달부터 시중은행과 기업은행에서 본격 시작되는 소상공인 초저금리 긴급경영자금 대출에 대해서도 금융권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DGB대구은행과 농협 등 은행권에 과중한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대구은행의 경우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200명에 육박하는 인력이 외부에 파견된다. 대구시 주민자체센터에 긴급생활자금 지급을 위해 140여명이 지원나갈 예정이고, 경북신용보증재단에 25명이 파견해야 한다. 여기에 신용보증재단의 신청서 접수를 맡고 있는 직원까지 포함하면 전체 인력의 10%에 가까운 인력이 기존 업무에서 배제된다.

대구지역 시중은행 관계자는 "현재 은행 지점에서 하루 평균 5~7건씩 대구신용보증재단의 상담을 대신 진행 중인데 한 건 당 한 시간 이상이 걸린다"면서 "다음달에는 외환 담당 인력까지 여신 업무에 투입할 것을 검토 중이다"고 말했다.

소상공인 지원의 시급성과 부실 심사를 둘러싼 딜레마도 존재한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특수한 경우 부실 심사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겠다지만 일선 은행에서는 각 창구에서 보수적으로 심사해 추가적인 병목현상은 현실적으로 불가피하다"라고 말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인력 부족 등 현장을 고려하지 않고 지원 대책부터 발표하는 통에 현장은 고객들이 몰려 오히려 일처리가 늦어지고 있다. 홍보가 부족한 탓에 대출 조건이 안되지만 무작정 은행부터 찾아오시는 고객들로 업무 속도가 늦어지고 이로 인한 고객 불만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면서 "정부가 대책을 발표하기 전에 현장 상황부터 고려해야 한다. 대책없는 정책자금집행은 정작 자금이 필요한 소상공인에게 혜택이 돌아가기 어려운 생색내기에 불과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석천기자 hongsc@yeongnam.com 서정혁기자 seo1900@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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