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내 휴식과 이완의 해...일년간 '잠을 자기'로 결심했다

  • 박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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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4-04   |  발행일 2020-04-04 제16면   |  수정 2020-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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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테사 모시페그 지음/ 민은영 옮김/ 문학동네/ 360쪽/ 1만5천원

발상이 기이하게 매력적이다.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봤을 법하지만 실천할 엄두는 내지 못하는, 다소 발칙한 상상을 현실화했다. 바로 동면이다.

일년간 잠을 자기로 결심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신경안정제를 처방받고, 그렇게 시간의 흐름을 잊었다. 모든 공과금은 자동납부로 돌리고, 재산세도 일년치를 선납했다. 눈을 뜨면 음식을 먹고 비디오를 보면서 다시 잠들기를 반복하며 하루에 두세 시간만 깨어 있다.

첫 장편소설 '아일린'으로 펜·헤밍웨이 문학상을 수상하고 맨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라 단숨에 미국 문단의 주목받는 젊은 작가로 떠오른 오테사 모시페그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일년간 동면에 들기로 계획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차갑고 신랄하게 그려낸 블랙코미디다.

사망한 부모의 유산을 상속받아 말 그대로 가만히 앉아 있어도 돈을 버는 26세 뉴요커 여성이 주인공. 유산에 학벌과 외모 등 부족할 것 없어 보이지만, 극복하지 못한 과거의 상처, 끊임없이 떠오르는 온갖 기억, 모든 사람에 대한 혐오와 모든 일에 대한 허무 등으로 일상과 관계에 고통을 느끼며 염세와 절망 어린 나날을 보낸다. 섬세한 심리묘사와 어딘지 뒤틀리고 어둠의 아우라(aura)를 뿜어내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주인공의 이야기에 푹 빠지게 하는 소설이다.

과연 그녀는 이 도발적인 '잠의 여행'을 통해 자신이 원하고 기대하는 것처럼 새로운 삶과 마주할 수 있을까.

박주희기자 j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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