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 또다른 영웅] 소시민 봉사자들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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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4-03   |  발행일 2020-04-03 제33면   |  수정 2020-04-03
취약 계층·의료진에 따뜻한 한끼
꾹꾹 사랑 눌러 담은 김밥 도시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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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급식소 등의 운영이 중단되면서 끼니 걱정을 해야 하는 노숙인, 쪽방 주민, 홀몸 어르신 등 취약계층과 코로나19와 싸우는 의료진에게 제공하기 위해 2월26일부터 시작된 '사랑 담은 김밥 도시락' 만들기에 참여한 자원봉사자들이 지난달 25일 대구 중구 계산동 바보주막에서 이날 배달될 김밥 250인분(500줄)을 싸고 있다.

"과거 외세 침입 등 국가적 재난이 있을 때마다 의병(義兵)의 역할이 컸습니다. 사상 초유의 이번 코로나19 사태에도 평범한 소시민들의 역할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다시 한번 실감합니다."

누가 강요한 적도 없고, 함께 하는 이들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찾아 노숙인과 쪽방 주민을 위해 김밥 도시락을 싸는 대구시민, 이웃에서 마스크가 모자란다는 소식에 평소 배워 둔 봉제 기술을 활용해 마스크 1천 매를 만들어 기부한 경북도민, 이들 모두 소시민이다.

대구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처음 발생(2월18일)한 이후 가장 적은 환자(14명)가 나온 지난달 25일 대구 중구 계산동 바보주막에는 영업개시 시간(오후 5시)이 한참 남은 오전 10시, 30~50대 여성들이 한두 명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매주 수·금요일 오전 11시부터 시작되는 '사랑 담은 김밥 도시락'을 만들고, 직접 배달까지 하는 자원봉사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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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급식소 운영 중단
홀몸 어르신 등 식사 마련
주부·상인·강사 각계 동참
김밥 배달까지 직접 나서
SNS로 봉사활동 알려지며
전국서 식재료 보내 응원

'사랑 담은 김밥 도시락'은 대구에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세를 보이던 2월26일 <사>전태일의친구들 관계자 4명이 무료급식소 등의 운영이 중단되면서 끼니 걱정을 해야 하는 노숙인, 쪽방 주민, 홀몸 어르신 등 취약계층과 코로나19와 싸우는 의료진에게 식사를 제공하기 위해 시작됐다. 이후 SNS를 통해 '사랑 담은 김밥 도시락' 봉사활동이 알려지면서 자원봉사자는 25명까지 늘었다.

자원봉사자들의 직업은 주부, 서문시장 옷가게 사장, 요가 강사, 심리 상담사 등 다양하다. 바보주막에서 김밥을 만드는 날이 기다려진다는 이들은 처음엔 서로가 누군지도 몰랐지만 어느새 친구·자매가 된 듯했다. 이날도 고생하는 동료들을 위해 샌드위치를 직접 만들어 온 자원봉사자부터 함께 나눠 먹기 위해 과일을 사 온 자원봉사자까지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이날도 낮 12시부터 홀로 사는 쪽방 어르신에게 50인분이 배달된 것을 시작으로 대구보훈병원 의료진에 100인분, 영남대병원과 대구가톨릭대병원 의료진에 각각 50인분씩 배달됐다. 배달도 김밥을 만든 자원봉사자들과 배달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김병호 화가가 맡았다. 김 화가 외에도 남성 자원봉사자 5~6명은 배달과 뒷정리, 무거운 재료 운반 등을 도왔다. 특히 하루 배달되는 200~250인분의 김밥 재료가 십시일반으로 모인 대구시민들의 후원금과 전국 각지에서 보내온 정성으로 준비되면서,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에서 '우리'라는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사랑 담은 김밥 도시락'을 제안하고 실행에 옮긴 김채원 〈사〉전태일의친구들 상임이사는 "SNS를 통해 김밥 도시락 봉사가 알려지면서 전국 각지에서 김밥 재료와 과일 등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들어오고 있다"며 "전라도에서는 쌀·자연산 김·계란·당근·시금치·사과즙·음료수·생선까지, 제주도에서는 귤·한라봉·당근·과자 등이, 강원도에서는 곤드레나물 등이 후원 물품으로 배달될 뿐 아니라 서울에 사는 한 분은 직접 차를 몰고 와 쌀 130㎏을 전달하고 가기도 했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 초창기 대구에 대한 일부 지역에서의 잘못된 소문으로 좌절도 많이 한 게 사실인데, 김밥 자원봉사를 하면서 다른 지역의 이웃들도 모두 대구 시민 이상으로 훨씬 더 많이 대구를 응원하고 격려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고마운 마음을 대구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하기 위해서라도 여력이 있는 한 '사랑 담은 김밥 도시락'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약속했다.

한편 〈사〉전태일의친구들은 대구가 고향인 전태일의 정신을 알리고 이어가기 위해 설립된 법인으로, 중구 남산동에 있는 전태일 열사가 살던 집을 시민의 성금으로 매입해 '대구 전태일기념관'을 만드는 활동에 주력하고 있는 단체다. 김 상임이사는 "전태일 열사 50주기인 올해 6월까지 전 열사 집 매입이 목표인데,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전태일 열사의 어려운 이웃에 대한 사랑과 헌신을 다시 한번 되새기기 위해 김밥 봉사를 시작하게 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글·사진=임성수기자 s018@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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