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석의 電影雜感 2.0] 거짓말 못하는 국회의원 후보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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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4-10   |  발행일 2020-04-10 제39면   |  수정 2020-04-10
4·15 총선에도 '정직한 후보'처럼 기쁨 주는 후보·정당이 있을까

정직한.후보(장유정_연출)_포스터
'정직한 후보' 포스터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면서 극장을 찾는 대신 OTT(Over-The-Top) 업체를 이용하는 관객들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그 영향으로 CJ CGV는 지난 달 28일부터 전국 직영 극장 116개 중에서 35개의 문을 닫았다. 메가박스도 44개 직영점 중 10개 지점이 4월 한 달간 영업을 중단했고, 위탁점 58개 중에서 상영관 9개는 벌써부터 영업을 중단한 상태다. 그 와중에 한국영화 신작 개봉 역시 속절없이 미뤄지고 있는데, 그러면서 극장에서 놓친 구작들을 다시 찾는 관객들 속에서 나 역시 며칠 전 '정직한 후보'를 뒤늦게 찾아보았다. 지난 2월12일 개봉한 이 영화는 다행히 손익분기점(150만 명)을 넘기긴 했지만, 아마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더 많은 관객들을 모았을지도 모른다.

장유정.감독(in.정직한.후보.촬영현장)
장유정 감독.

연출을 맡은 장유정 감독은 나와는 동갑내기로 영화감독보다 뮤지컬 연출자로 이름을 먼저 알렸다. 원래 그는 2004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을 졸업한 후 영화계에서 먼저 일을 시작했지만 2년 동안 대여섯 편의 작품들이 전부 엎어지면서 영화와는 인연이 없다고 판단해 공연계로 넘어가 '김종욱 찾기'와 '오! 당신이 잠든 사이' 같은 작품들을 만들어내며 많은 관객들의 사랑을 받는 뮤지컬계의 스타가 되었다. 그러다 자신의 뮤지컬 작품을 영화화하면서 다시 영화계로 돌아온 것이다.


뮤지컬 연출자 알려진 장유정 감독
'김종욱 찾기' 등 영화로 만들어 두각

거짓말이 제일 쉬운 3선 국회의원
브라질 영화 원작 정치풍자 코미디
여과없이 내뱉는 속내로 웃음 선사



'김종욱 찾기'(2010)는 장 감독이 원안을 쓰는 데에는 3일, 그걸 각본으로 완성하는 데에는 1년이 걸린 작품으로 2005년 초연을 시작해 평균 객석점유율 93%와 누적관객 36만 명이라는 기록을 달성하며 기획 단계부터 충무로의 비상한 관심을 불러 모았다. 동명의 뮤지컬을 원작으로 했지만 이 영화는 뮤지컬 영화가 아니다. '첫사랑 찾기 주식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남자와 이 회사에 자신의 첫사랑을 찾아달라고 의뢰한 여자의 이야기를 담았던 원작의 설정에 크게 기대지 않으면서, 두 남녀의 만남에 집중했던 원작 대신 현실주의자와 낭만주의자인 두 남녀의 성장담에 좀 더 비중을 실으며 각색에 성공했다.

두 번째 영화 연출작이었던 '부라더'(2017) 역시 장 감독이 각본을 쓰고 연출을 맡아 2008년 초연해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는 스테디셀러 뮤지컬인 '형제는 용감했다'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가족과의 갈등 때문에 집을 나간 두 형제가 3년 동안 서로 왕래가 없다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배우 마동석과 이동휘의 스크루볼 코미디 연기가 단연 돋보였다. 여기에 두 사람 앞에 갑자기 나타나 비밀을 알려주는 멘탈까지 오묘한 여자 '오로라' 역을 맡은 배우 이하늬의 조합도 나쁘지 않았다.

정직한.후보(장유정_연출)_스틸컷.1
국회의원 주상숙 후보역을 맡은 라미란.
O.Candidato.Honesto(정직한.후보_원작)_포스터
브라질의 '정직한 후보' 원작 포스터

'정직한 후보'(2020)는 전작들과는 달리 뮤지컬 원작이 아니라 브라질의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삼았다. 거짓말이 제일 쉬운 3선 국회의원 '주상숙'이 선거를 앞둔 어느 날 하루아침에 거짓말을 못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정치풍자 블랙코미디다. 2014년에 개봉해 브라질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동명의 브라질 영화를 원작으로 한다. 원작에서의 남자 주인공이 여기서는 여자 주인공으로 바뀐다. 전반부는 거짓말을 앞세워 이미지 정치를 하던 주상숙이 거짓말을 못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그렸다면, 후반부는 주상숙이 자신의 속내를 여과 없이 내뱉어 관객의 웃음을 만들며 정치권에 입성하기 전의 순수했던 시절을 환기시킨다. 다만 흥미롭게 진행되던 전반부의 이야기를 성급하게 마무리지으려 한 후반부는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아쉬움을 상쇄시켜주는 건 배우들의 힘이 크다.

배우 라미란은 거짓말하는 법을 잊어버리고 지나치게 솔직하고 대놓고 뻔뻔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주상숙으로 분해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 가며 그야말로 라미란만이 보여줄 수 있는 원맨쇼를 펼친다. 장 감독 역시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주상숙을 연기할 수 있는 배우는 라미란 외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 배우를 캐스팅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며 라미란에 대한 신뢰를 보였다. 그간 영화에서 주로 조연을 맡았지만 최근 주연을 맡았던 '내 안의 그놈'과 '걸캅스'에 이어 '정직한 후보'까지 흥행하면서 충무로는 새로운 여성 주연배우를 획득했다.

배우 김무열은 극중 주상숙의 보좌관으로 주상숙의 모든 것을 책임지는 프로다운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입만 열면 폭탄을 터뜨리는 3선 의원을 지키기 위해 온몸을 내던지는 짠한 캐릭터를 연기했다. 그간 주로 심각한 연기들을 주로 보여주었던 그가 코미디 연기에도 발군의 매력을 펼치는 건 관객에겐 또 다른 즐거움이다. 다만 배우 나문희가 스테레오 타입으로 소비되는 모습은 안타까웠다. '아이 캔 스피크'와 '수상한 그녀'에서 반짝였던 그이를 다시 볼 순 없을까.

장유정 감독이 만든 3편의 영화 모두에 우정출연하는 진기록을 세운 배우 오만석이 맡았던 '장덕준'역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하고 싶다. 극 중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보이는 라디오의 진행자를 맡은 그의 이름은 실제 역사 속에서 존재하는 언론인에서 가져왔다. 장덕준은 김성수·이상협과 함께 '동아일보'를 창간한 이로 일본군이 한국인을 대량 학살한 훈춘 사건을 취재하러 만주로 갔다가 순국했다. 영화에서는 짧게 등장하지만 정도를 지키는 언론인으로 등장하는 이 인물은 영화 말미에 주상숙의 후배 정치인으로 등장하는 '신지선'에게 "머리 스타일이 바뀌었다"고 지적한다. 이때 신지선이 쓴 가발은 영화 초반에 주상숙이 썼던 가발이었다. 초심을 자주 잊는 위정자들의 모습을 장유정 감독이 풍자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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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우석 (독립영화감독·물레책방 대표)

다음 주 수요일이면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일이다. 이번 총선은 코로나19로 후보와 유권자들이 대면하는 일이 힘들어지면서 누가 누군지조차 모르고 찍어야 하는 사실상 '깜깜이 선거'가 되었다. 거기에 두 거대 정당이 차례로 위성 정당을 만들며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의 취지까지 엉망으로 만들어버렸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웃을 일 없는 국민들에게 기쁨을 주는 후보와 정당은 누구인가.

독립영화감독·물레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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