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의 소소한 패션 히스토리] 팬데믹으로 되돌아보는 트렌드

  • 임성수
  • |
  • 입력 2020-04-17   |  발행일 2020-04-17 제37면   |  수정 2020-04-17
과도한 코르셋 집착이 불러온 폐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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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시대의 철제 코르셋(Musee national de la Renaissance). <출처: https://vo.la/gR52>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이라는 심각한 현실이 전 세계 소비자들로 하여금 심신을 아우르는 종합적인 웰빙에 대한 관심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고 있다. 이런 가운데 2020년이 패션의 미래를 규정할 한 해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패션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패션 업계는 이미 상당한 변화의 과정에 있지만, 이제 전 세계 수많은 국가들이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자가 격리 사회로 접어들면서 코로나 바이러스는 진정한 인류 대변혁의 촉매제가 되고 있다.

꽉 조인 허리로 드러내는 보디 라인
나무·고래뼈·철 소재, 여성의 몸 구속
금속 알레르기 등 각종 질병 낳는 폐단
죽음보다 강한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
가냘픔 부각, 얇게 비치는 머슬린 소재
인플루엔자 환자 속출 '머슬린 디지즈'


자가격리 기간이 끝난 후에도 그것이 우리 생활에 미칠 변화는 오랫동안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평상복, 일상복을 아우르며 업무·휴식·여가 시 두루 입을 수 있는 옷에 대한 관심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주거 공간의 기능에 충실했던 '집'은 멀티태스킹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의류 또한 이 같은 추세를 따르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현대인의 건강과 생명에 위협을 가하고 있는 가공할 위력의 바이러스와 유사한 현상은 패션의 역사 속 트렌드를 통해서도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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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lin Disease'에서 영감을 얻은 'Fallen Angels'라는 제목의 존 갈리아노의 1986 S/S 컬렉션. (출처: https://vo.la/ntT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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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셋 벨트로 허리를 강조한 크레타의 뱀을 든 여신상. <출처: https://vo.la/vaNe>



현대 패션에 있어서 코르셋(Corset)은 가슴에서 힙에 이르는 여성의 보디 라인을 아름답게 보정하기 위해서 허리에 꼭 조여 매어 입도록 고안된 파운데이션의 일종으로 허리 부분의 체형을 유지시키기 위한 여성용 내의를 의미한다. 코르셋은 패션의 역사에서 가장 논쟁의 대상이 되는 아이템 중 하나로, 신체적인 질병에 그치지 않고 죽음에까지 이르게 할 정도로 많은 폐단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여성들은 아름다움을 위해서라면 그 착용을 멈추거나 주저하지 않고 있다.

여성의 허리를 가늘게 하고 몸의 곡선을 최대한 아름답게 보이고자 착용한 아이템인 코르셋은 인류 문명의 발전과 그 역사를 함께 한다. 노르포크 브랜돈의 신석기 유적에서 발견된 돌 인형에 입혀진 코르셋 형태의 옷이나 크레타나 미케네 문명, 앗시리아, 이집트와 같은 초창기 문명의 조각물이나 도자기류를 통해 허리를 가늘게 조인 옷을 입은 여성들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 당시에는 허리를 조여줌으로써 상대적으로 가슴과 둔부가 과장되게 강조되었는데 이는 풍요로움과 다산을 기원하는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특히 고대사에서 유럽 문명이 시작한 장소로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크레타섬에서는 기원전 2000년경부터 남녀 모두 허리를 극도로 가늘게 조이기 위해 넓은 코르셋 벨트를 착용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우리는 이것을 코르셋 착용의 기원으로 보고 있다.

이후 시대의 발전과 더불어 진화를 거듭한 코르셋은 15세기에 이르러서는 나무나 고래 뼈, 심지어 철로 만든 것까지 등장하면서 여성의 몸을 강하게 구속하게 된다. 이를 통한 갈비뼈의 골절상이나 철제 코르셋을 통한 금속 알레르기의 발생은 의술이 발달하기 전인 당시 여성들에게는 치명적인 사인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16세기 르네상스 이후 서양의 근세시대 패션 트렌드는 인체미를 변형시켜 과장된 모습을 보이면서까지 관능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에 치중하였고, 트렌드를 좇는 수많은 여성들은 이러한 실루엣의 변화를 극단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도록 자신의 몸을 코르셋으로 압박하면서 더욱더 가는 허리 라인을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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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유행하던 머슬린의 엠파이어 드레스를 입은 '베르니나크 부인의 초상화'(자크 루이 다비드, 1799). <출처 :pinterest.com>

코르셋이 출현한 이래 20세기가 되기까지 코르셋 없는 패션이 유행한 것은 1800년을 전후해 약 4반세기 남짓한 동안의 짧은 기간밖에 없었다. 1780년경 마리 앙투아네트가 오늘날 원피스나 잠옷 같은 홑겹 목면 드레스를 선보인 이래 엠파이어 스타일의 드레스가 20여년 동안 유행하였는데 그렇다고 여성들의 고통이 멈춘 것은 아니었다.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에도 시민들은 귀족들에 대한 반감이 사그라들지 않았고, 귀족들이 누렸던 사치와 향락을 금지하는 사치금지법이 제정되면서 한 사람이 입는 옷과 장신구의 무게가 3.5㎏을 넘으면 안 된다는 조항이 명시되기도 하였다. 프랑스 혁명 이후 패션에서는 클래식 스타일이 유행하면서 고대 그리스와 로마 스타일의 하이웨이스트와 아래로 길게 흘러내리는 드레스, 그리스풍에서 영감을 받은 드레스 장식과 액세서리, 헤어스타일이 나타났다.

19세기 초에는 최대한 가늘어 보이는 패션이 유행하여 여성들은 더 말라보이기 위해 속옷을 입지 않거나 피부색과 유사한 보디수트를 입었고, 드레스의 옷감은 얇고 비치는 머슬린(Muslin)을 사용하였다. 특히 머슬린 옷에다가 물을 뿌려서 몸에 달라붙게 함으로써 피부가 비쳐 보이도록 하여 몸매를 과시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드레스 착장은 어린아이부터 노인들에게까지 나이를 불문하고 전 연령층에 인기가 많았다. 당시 유럽의 추운 날씨에서 이 같은 '트렌디'한 젖은 드레스 착용으로 인해 여성들 사이에서 폐렴 환자가 속출하였다. 계속되는 기침이 가냘픈 여성성을 부각시켜 아름답게 보일 것이라는 착각 속에 여성들의 엠파이어 드레스 착용은 오랫동안 계속되었고 이로 인해 건강이 악화되고 심지어 사망하는 경우도 많이 발생하였다. 이때 퍼졌던 폐렴을 일컬어 '머슬린 디지즈'(Muslin Disease)라고 한다. 1803년 6만명의 인플루엔자 환자가 발생하였다고 하니 코르셋 착용으로 인해 생긴 폐해와 함께 트렌드를 좇다가 피해를 입은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트렌드가 신체를 불편하게 하고 심지어 건강을 헤치기까지 하는 극단적인 현상은 패션의 역사에서 오랫동안 계속되어 왔다. 하지만 그 이유만으로 트렌드 스타일이 버려지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트렌드를 통해 아름다움을 완성하기 위해서 갖가지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거나 개선점을 찾아 새로운 패션을 만들어 내는 방향을 선택해 왔다. 코로나19 팬데믹이 가지고 온 현재의 이 엄중한 상황 속에서도 패션은 또 다른 새로움을 찾아 적응하고 발전할 것이다.

계명대 패션디자인과 교수

▨ 참고자료

△코로나19; 디자인 우선순위-wgsn.com △ 인체착용평가를 통한 엠파이어드레스의 보온성과 착의생리반응-김지수(학위논문, 2015) △ 전족과 코르셋을 통해 본 동서양 복식문화의 심미적 특성 비교-于媛媛(우원원)(학위논문, 2013)

△ wgsn.com.△ google.com. △ pinterest.com.

△ 네이버지식백과-Muslin Dise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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