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란의 스위치] 보수의 길을 묻다-이상돈 국회의원

  • 이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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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4-25 08:08  |  수정 2021-06-27 13:57  |  발행일 2020-04-25 제22면
"민주당식 공천 따라하다간 백전백패…보수 살려면 知的운동 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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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돈 의원은 보수재건과 관련 "보수가 민주당식 공천을 따라 하다가는 백전백패한다"며 "보수는 국가를 이끌어갈 수 있는 능력 있는 정당이라는 점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돈 비례대표 국회의원은 1990년대·2000년대에 교수이자 논객으로, 2010년대에 박근혜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으로서, 그리고 2016년엔 20대 국회의원으로 한국 정치의 이론과 현장을 모두 경험한 정치권에서 몇 안 되는 인물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미국의 헌법과 정치에 관한 한 최고의 전문가이기도 한 이 의원을 21일 만나 4·15 총선을 복기해보고 보수우파의 앞날을 논의해봤다. 이 의원은 미래통합당 패인과 관련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을 보면 공천에서 다양성을 항상 강조한다. 그런데 보수가 자꾸 거기를 따라 한다. 그러면 백전백패"라며 "보수는 능력 위주의, 우리는 국가를 이끌어갈 수 있다 하는 점을 보여줄 수 있는 식견과 학력, 경력을 갖춘 사람들을 연령 무시하고 뽑아 정면 도전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 의원은 바닥으로 떨어진 보수우파의 재건을 위해서는 "진보 운동의 기초는 정서적이다. (이를 감안해) 보수는 지적(知的) 운동을 벌여 나가야 한다"며 보다 장기적인 플랜을 갖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 모인 정당의 면모를 다시 찾을 것을 조언했다.

통합당 조직 모두 망가진 상태
여의도연구원도 아마추어 전락
지적인 토대 탄탄한 인물 영입
국가운영 능력 보여야 재건 가능
어설프게 다양성 흉내내선 안돼
김형오 공천, 철학 없고 비상식
황교안은 장관·총리직도 과분
그런 사람 대표로 앉힌 게 잘못

▶4·15 총선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

"대체로 통합당이 패배하리라고는 생각했다. 그러나 이 정도로 패배할 것이라고는 예상 못 했다. 미시적으로 보면 공천실패, 대표의 능력 부족 이런 것이 가까운 원인이라고 본다. 긴 원인은 2012년부터 계속 패배해온 것이다."

▶경기·인천 등 수도권은 사실상 완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서울의 외곽지역에 베드타운이 많이 생겼다. 2012년 총선 때 느꼈는데 경기 오산·평택 등 베드타운에 새누리당 의원들 지원을 나가면 30대 여성들의 시선이 싸늘했다. 그리고 대구경북에 가면 열광적인 환대를 받는다. 그때 수도권 베드타운이 우리 사회 허리인데 이런 싸늘한 시선을 받고서는 안 된다 싶었다. 박근혜 대통령 되고 나서 황금의 기회가 왔다. 그런데 그 사람들을 끌어들여서 우리 편으로 만들지 못했다. 이번에 베드타운에서 진 것 아니냐. 새누리당 비대위원으로 있을 때 보수 정당이지만 제3의 길을 가기를 권했다. 베드타운을 가져올 방안이 거기에 있는데 박근혜 대통령 당선되고 나서 전혀 다른 길을 갔다."

▶가장 큰 패인은 '코로나' 아닐까. 긴급재난지원금이 영향이 컸다고 본다.

"총선을 두 달 전에 했으면 달라졌을 것이다. 처음에는 대만·싱가포르 보다 안이하게 대응했다고 정부가 몰렸다. 이것이 유럽·미국으로 확산되다 보니 우리나라처럼 준비가 된 나라가 별로 없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런 것 때문에 초기 코로나 대응 미비 문제 등이 완전히 묻혀버렸다. 코로나 상황이 잘 관리된 것은 이 정권이 잘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시스템이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CNN방송이 문재인정부를 엄청 띄우면서 본의 아니게 선거를 도운 셈이다. 문재인정부가 운이 좋은 거다. 재난지원금도 평상시 같으면 전 국민 상대로 현금 살포한다는 것은 어느 정당이든 간에 말하기 어렵다. 그런데 세계적인 추세가 그러니 그렇게 흘러갔다."

▶김형오 공천관리위원회의 실패를 주요한 패인 중의 하나로 보는 시각이 많은데.

"김 전 국회의장이 정치를 오래 한 사람인데 그런 식으로 공천한다는 것이 참 뜻밖이었다. 기본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간다는 철학도 없었다. 또 구체적으로 장기판에서 장기짝 옮기듯 멋대로 후보를 보내고. 상식에 벗어난 것이다. 황교안 대표 입장에서 보면 홍준표 등 자기가 버거운 사람을 다 날리는 공천을 한 측면이 있다. 황 대표 본인 문제만 해도 종로는 이미 2012년부터 조직이 와해된 곳이다. (보수에 어느 정도 유리한) 송파 정도 나가서 대표가 살아 돌아와야 했다. 그런데 황 대표가 결정을 늦추자 김형오 공관위가 그를 종로로 떠밀어 버렸다. 기본적으로 정치의 ABC를 모르는 공천이었다."

▶보수대통합을 가장 큰 성과로 내걸고 선거를 치렀는데.

"당의 조직이 몸 따로 머리 따로였다. 형식적 통합이었다. 황교안 대표와 박형준 공동선대위원장이 우리가 통합했다는 말로 뻥튀기한 것 말고는 아무런 기능을 못 했다. 선거과정에서도 엇박자가 나지 않았나. 황 대표가 재난지원금을 국민 모두에게 50만원 주자고 하니 유승민 의원은 포퓰리즘이라 힐난했다. 박형준 위원장이 개헌선이 무너진다고 호소하니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은 엄살 부리지 말라 했다. 말하는 사람들이 무게감도 없고 신뢰성도 없는 발언을 막 쏟아냈다."

▶막판에 터진 막말 논란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까.

"좋은 영향은 아니지만 대세에 영향을 준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차명진 공천했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선거 준비부터 공천, 그리고 선거운동 관리에 이르기까지 이번 선거는 프로와 아마추어의 대결 같았다.

"보수우파는 당 조직도 다 망가졌다. 여의도연구원도 그렇다. 교수들 해봤자 아마추어다. 저는 보기 드물게 총선, 지방선거 등 선거를 두 번이나 직접 지휘하면서 호남까지 가 보았다. 정당 유니폼을 입고 가야 민심을 느낄 수 있다. 책이나 보다가 선거지휘하는 것은 턱도 없다."

▶황 대표의 능력 부족도 대표적인 패인으로 꼽았는데.

"검사는 잘만 하면 정치적인 인물로 클 수 있다. 그러나 황교안 대표는 검사로서 뭘 보여준 게 없다. 80년대 공안검사는 대학생 데모 기소하는 것이 전부다. 그는 앞만 볼 줄 알지 전방 후방 측방 못 본다. 법무장관 한 것도 분수에 안 맞다. 총리 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김종인 같은 사람 총리시켰으면 탄핵 안 당했을 거다. 그런 사람을 대표로 불러서 무슨 선거를 하냐.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박근혜-김종인의 결별 등 박근혜정부 시절 아쉬운 대목이 많다.

"김종인 박사를 견제한 사람도 있었겠지만, 본인도 웬만하면 받아들여 도와야 하는데 내가 다 하지 않으면 안 한다 하니 파탄이 났다. 고비마다 많은 기회가 있었다. 그것을 다 놓쳤다."

▶통합당 재건의 조건이 있다면.

"시민단체 운동가 등이 주축인 민주당·진보당 등은 다양성을 중시한다. 그런데 보수정당이 자꾸 이를 흉내 내는 공천을 한다. 백전백패다. 보수주의가 살기 위해서는 지적 운동을 해야 한다. 진보운동의 기초는 정서적인 것이다. 어설픈 진보 흉내 내선 이길 수 없다. 보수는 보수의 장점인 지적인 토대가 탄탄한 사람들을 정치권으로 많이 영입해 실력 있는 정당의 면모를 보여야 한다. 우선은 이번에 당선된 사람들이 열심히 해서 각자의 상임위에서 탄탄한 실력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총선 완패로 보수의 정권 재창출 가능성은 완전히 없어졌다고 보나 .

"사실 어렵다고 본다. 당장 대선을 보지 말고 멀리 보면서 선거에 임해 대한민국 앞날에 좋은 비전을 제시했다는 공감을 얻으면 기회가 올지도 모른다."

▶앞으로 우리 정치가 나아갈 길에 대해 짚으면.

"정당 공천제도 바꾸어야 한다. 그리고 정당이 너무 낙후되어 있다. 서울지역 대학후배 교수들 보면 학력이 기가 막힌다. 큰 기업 임원은 또 얼마나 경력이 좋은가. 우리 정당 조직이 버티는 이유가 세금 보조다. 낙후된 정당이 국회 진입의 게이트키퍼를 하는 게 말이 안 된다. 미국 캘리포니아 같이 주민이 선택권을 갖도록 선거제도를 바꾸는 방법을 도입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정당은 인재를 키우고 정책을 개발해서 국민에게 알리는 데 주력하면 된다. 공천을 가지고 온갖 잡다한 일을 해결하는 현 정당의 개혁이 시급하다."

◆이상돈 의원
△1951년 부산 출생 △경기고, 서울대 법학과 △미국 툴레인대학교대학원 박사 △중앙대 교수, 법과대학장, 법학연구소장 △조선일보 비상임논설위원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 △제20대 국회의원(현 비례대표/무소속)
이영란 논설위원 yrlee@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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