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광장] 선거의 세계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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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4-24   |  발행일 2020-04-24 제23면   |  수정 2020-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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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화제가 되는 '부부의 세계'라는 드라마가 있는데 등장인물들의 디테일한 심리묘사가 흥미롭다. 유능한 의사인 여성이 무능한 데다 잘못을 저지른 남편과 바로 헤어지기는커녕 솔직하게 말하라고 기회를 주는 걸 보면서 그 미련의 이유가 궁금했다. 결국 아들까지 남편의 실체를 알게 되고 나서야 이혼을 결심하는 걸 보면서, 여주인공의 망설임의 이유는 가족의 가치였다는 것을 알았다.

지난주 끝난 총선의 결과는 보수 진영의 참패였다. 지역구 의석수는 여권의 절반 정도다. 예상 밖이다. 처음 이번 총선을 시작할 때만 해도 분위기는 희망적이었다. 어차피 정권 중반기 총선의 테마는 정권 심판인 데다 경제·외교·안보 같은 기본과목 점수 함량 미달에 조국이라는 변별력 높은 선택지까지 있으니 나쁠 게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인지 밖으로는 심판을 외치면서도 안으로는 내부견제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선거 막판에 이르러서야 분위기 파악하고 '심판'을 '견제'로 바꿨지만 민심은 별로 견제할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선거는 끝났다. 역대급 초유의 180석 압승을 거둔 여당은 일단 축제 분위기다. 물론 앞으로 180가지 고민을 들고 아슬아슬 외줄타기 정치를 해야 하는 위험은 있다. 당장 재난지원금 지급 기준부터 비례교섭단체 설립, 공수처장 선출까지 앞날이 쉽지만은 않다. 민심의 분노를 혼자 막아야 하는 부담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제는 누구의 탓을 할 수도 없다. 대선을 앞두고 일찌감치 승자의 오류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향후 우려되는 걱정일 뿐, 문제는 야당이다.

당연히 위기를 절감하고 내려놓기를 할 줄 알았는데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나 보다. 둥둥 떠 있는 난파선의 키를 서로 잡겠다고 나선다. 안 태워주면 끌어내리겠다고 호통치는 사람도 있다. 돌고 돌아 찾아낸 방안이란 것도 반장 선거하듯이 다수결로 결정했다. 우선순위가 당이 아니니 합의가 될 리 만무하다. 굳이 걱정해줄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내가 살아야 할 나라다. 국가라는 큰 배의 균형을 위해서라도 원인 분석은 필요해 보인다.

이번 선거 결과의 내용을 두고 심판을 당했다는 자성론부터 득표율이 비슷하니 희망이 보인다는 낙관론까지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데, 낙관론은 위험하고 코로나 같은 원인 분석은 지엽적인 것에 불과하다.

먼저 선거란 무엇인가 하는 본질적인 질문부터 시작한다고 할 때, 누군가를 선택한다는 점에서 선거와 인간관계는 비슷하다. 결국 눈에 보이는 조건부터 호감이나 분노와 같은 감정들이 더해져 나오는 선택의 결과라는 얘기다.

야당은 코로나 상황에서의 중국인 입국이나 한일관계, 경제위기 같은 것들을 들어 유권자들이 이번 정권에 등을 돌릴 거라 봤다. 그들이 주장한 실정이라는 것이 3년 전 어렵게 이루어낸 선택을 바꿀 만한 기준은 아니었다. 게다가 대안 없는 구호에 오락가락 공약을 얘기하면서 세계가 격찬한다는 방역 성공 정부 대신 선택해달라고 하는 건 호감 안 가는 프러포즈에 불과했다.

선거는 또 돌아올 것이고, 야권은 도전을 하는 입장에서 유권자가 지키고자 하는 것이 뭔지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선거도 우리네 인생살이고 길고 긴 한 편의 드라마가 아니었나. 등 돌린 민심을 돌아서게 하려면 유권자의 마음을 돌려야 하고, 한번 어렵게 신뢰를 준 정권에 등 돌리지 못하는 미련이 뭔지를 알아야 답이 생긴다. 다음 선거에서는 유권자의 미련이 어디에 있을지, 지키고자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찾아내야 한다.전지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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