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병 근원 육식' vs '채식 부작용'…한쪽 치우친 완벽함보다 섞인 균형 찾아야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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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4-24   |  발행일 2020-04-24 제34면   |  수정 2020-04-24
■몸이 원하는 밸런스...육식이냐 채식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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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식동물 & 육식동물
곡물·육류 조리, 큰 턱·치아 불필요
완벽한 천연상태 식품은 존재 안해
수세기 걸친 선택교배 접하며 진화


인간은 초식동물인가 아니면 육식동물인가. 현재 인간의 구강 구조는 육식동물과도 초식동물과도 비슷하지도 않다. 야생 식물을 생으로 씹어먹으며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기에는 우리 턱과 치아는 너무 작고 빈약하다. 이렇게 진화한 것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육류 섭취와 호모 에렉투스의 곡물 조리술 덕분이랄 수 있다. 고(高)칼로리를 쉽게 얻게 된 인류는 큰 턱과 치아를 유지할 필요가 없었다. 사람의 위산 PH농도는 1.5~3.5로 상당히 낮다. 이는 조금 상한 고기를 먹고도 살아야 하는 잡식동물의 특징이다. 초식동물이나 다른 영장류는 사람처럼 강력한 위산이 없다.

1950년대만 해도 국민 대다수는 초식동물에 가까웠다. 춘궁기엔 초근목피로 연명했다. 그로 인해 다들 최악의 변비에 시달렸다. 꿈의 먹거리였던 소고기는 생일·잔칫날 아니면 언감생심. 이젠 지구촌 세상, 필요한 식재료를 얼마든지 섭취할 수 있다. 자연주의자들은 '인스턴트 식품 망국론'을 외친다. 하지만 현실을 직시해 보자. 물 좋고 공기 좋고, 그리고 채식으로 일관했던 그 시절 시골 사람들은 되레 예순을 넘기기 힘들었다. 이젠 각종 가공식품류를 입에 달고 살아도 평균 100세 인생을 보장받는다. 영양이 좋아졌고 각종 예방약과 첨단수술법을 앞세운 현대의학 덕분일 것이다.

우리에겐 완벽한 '자연 상태'는 기대하기 어렵다. 식품도 완벽한 천연상태는 없다. 대부분의 식품은 수세기에 걸친 '선택 교배'에 의해 나왔다. 최초의 사과는 지금처럼 달지 않았다. 먹기 좋게 교배시켜 지금의 맛이 유지된 것이다. 두부도 천연식품일까. 중간에 화학물질인 간수, 그게 콩국물과 결합돼야 비로소 두부가 되는 것이다.

채식과 육식의 반론
보건부, 영양소 36종 섭취 기준 제시
탄수화물 55% 단백질 20% 지질 15%
영양학자·채식주의 의사 주장도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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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이상구 박사로부터 발화된 채식주의 논쟁. 하지만 제레미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위), 리어 키스의 '채식의 배신'이란 두 권의 상반된 책에 의해 세상은 육식과 채식에 공감대를 전혀 형성하지 못하고 서로를 배척하는 관계가 돼 버렸다.
60년대까지만 해도 연중 허기졌던 서민에겐 서양발 탄수화물·단백질·지방 등 6대 영양소에 대한 마인드가 전무했다. 1967년 겨우 한국영양학회가 생긴다. 더 진화된 임상영양학회도 등장한다. 영양사는 건강한 사람의 식단, 임상영양사는 환자의 표준식단에 대한 가이드 라인을 제시한다.

보건복지부는 2015년부터 국민의 건강증진에 필요한 영양소 36종에 대한 '한국인 영양소 섭취 기준'을 매년 발표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총 에너지 섭취량 중 탄수화물은 55~65%, 단백질은 7~20%, 지질은 15~30%를 섭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균형 잡힌 권장 식단'을 자전거 형태의 그래픽으로 제시한 '식품구성 자전거'도 공개했다. 그 구성을 보면 채식과 육식이 균분돼 있었다. 당연히 채식주의 베지닥터들은 이를 반대할 것이다. 식품영양학자의 기준과 채식주의 의사의 기준이 상충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방 의사의 기준과 양방 의사의 기준이 서로 다르다. 아마 의사들마다 환자에게 권하는 식단이 다 다르다고 보면 된다.

현재 먹거리와 관련해 가장 영향력을 행사하는 두 명의 전문가가 있다. 이계호 태초먹거리학교 교장(충남대 화학과 명예교수), 현미 채식 운동가로 나선 황성수 닥터다.

'국민 반찬'으로 사랑받는 김치조차 발암식품이라 배척하는 황 닥터는 30여 년째 채식만 하고 있다. 대구의료원 신경외과 전문의로 있다가 지금은 서울로 가서 힐링스쿨과 유튜버로 활동 중인 그는 현미 채식 예찬가다. 그는 그게 '완전 식품'이라 주장한다. "밥 한 공기에 하루 필요한 단백질·지방·탄수화물을 전부 담고 있다. 여기에 생채소와 과일만 곁들이면 된다."

황 닥터가 먹는 한 끼는 현미밥과 사과 반쪽, 그리고 상추 다섯 장 정도다. 그는 "고기가 없어도 몸에 기운이 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현미의 영양성분표를 내밀며 영양이 충분하고 당뇨·고혈압 개선에도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별 탈 없이 사는 걸 보면 그에겐 현미 채식이 정답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걸 전 국민한테 적용시킬 수 있을까.

많은 책들은 현미가 놀랍도록 몸에 좋다는 칭찬뿐이다. 과연 그럴 수가 있는가. 인터넷을 검색해 봤다. 현미에 포함된 피틴산이 몸속의 칼슘을 빼내 가는 바람에 치아가 삭아 내리는 등의 이유로 현미 채식 중단을 선언한 글들이 눈에 띄었다. 임상영양사들은 현미 등 채식으로는 필수아미노산을 취할 수 없고, 그래서 반드시 육류를 섭취해야 된다고 지도한다. 하지만 현미파는 그것만 먹어도 충분하다고 역주장한다.

채식 비판론
채식만 섭취땐 알레르기 질환 두배
기름진 식품 배척 비타민A·D 결핍
세계장수촌 상당수 육식 즐기는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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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과 육식의 행복한 동행을 고민하며 유방암 전문의 임재양 원장이 펴낸 '제4의 식탁'.
채식이 만능건강법으로 통한 데는 '육식이 만병의 근원'이란 생각이 깔려 있다. 비만 같은 생활습관병의 원인이 고기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오스트리아 의대는 식습관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채식만 하는 사람이 채소·고기를 함께 먹는 사람에 비해 건강 상태가 불량하다는 내용이다. 체질량 지수가 정상 범위인 오스트리아인 1천320명을 대상으로 채식주의 그룹, 육식을 함께하는 그룹으로 구분해 이들의 질환을 조사했다. 그 결과 채식주의자는 육류를 많이 먹는 그룹보다 알레르기 질환 보유율이 2배 많았고, 암 발생률도 1.6배나 높았다는 발표도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1998년부터 2008년까지 4천600여 건의 식품 매개 질환 사례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식품 종류별 식중독 사례 중 가장 빈번한 것은 녹색 잎채소로 23%를 차지했다. 그리고 모든 식중독의 거의 절반인 46%가 농산물로부터 온 것이라 한다

자신도 고기를 너무 좋아하는 허정 서울대 보건대학원장은 육식주의를 두둔한다. "지나치게 동물성 지방을 많이 섭취하는 것도 바람직한 섭생법이 아니지만 채식이 몸에 좋다고 해 기름기 있는 음식을 전혀 먹지 않는 것도 문제다. 우리나라는 식품구조가 탄수화물 위주로 돼 있고, 노인이 되어 기름기 있는 음식을 전혀 먹지 않으면 비타민A와 비타민D 결핍 때문에 여러 가지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 실제로 세계의 장수촌을 돌아보며 직접 관찰한 것인데 대부분 고기 먹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이춘호 음식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취재 후기
평생 고기만 먹고도 장수한 외조부
운동과 평화로운 마음이 최고 반찬
전문가 주장 단일 식품 효과론 한계


나는 먹고 싶은 걸 맘대로 먹는다. 대신 육식과 채식을 3대 7 비율로 먹는다. 가능한 제철 음식에 포인트를 둔다. 시도 때도 없이 먹는 걸 경계한다. 그걸 소화시키기 위해 불침번을 서야 하는 췌장을 배려한 탓이다. 그리고 마지막 한 점은 가급적 먹지 않는다. 평생 매끼마다 고기를 먹어야 했던 내 외조부는 별로 운동도 하지 않고 살았는데도 장수하며 살다 갔다. 체질이란 게 있는 모양이다. 채식을 고집하던 지인의 삶이 훨씬 고립적인 것도 목격했다. 나도 예전에는 따지면서 먹었다. 언젠가 죽는 목숨,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 혀보다 나의 장기를 더 믿는다. 소화 과정에 내가 간여할 수는 없다. 거기에 간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 현대가 결국 '식자우환'(識字憂患)의 늪에 빠진 것이라 본다. 나는 정말 좋은 반찬 중 하나가 운동과 평화로운 마음이라 여긴다.

전문가별 주장은 모두 '단일 식품 단일 성분 단일 효과론'에서 기인된다. 무슨 성분은 무엇에 좋고 무엇은 나쁘다는 식인데, 이게 바로 '한계'랄 수 있다. 인간은 매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식품군을 섭취하고 그 속에 포함된 성분은 멀티플하게 복합반응을 일으킨다. 나쁜 걸로 알려진 성분도 다른 성분과 합성돼 좋은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전 과정을 제한적 시험으로는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전문가의 주장보다 더 중요한 건 자신의 본래 식성 찾기라 생각한다. 골라 먹는다는 게 병이 아닐까 싶다.

세상은 점차 채식주의 쪽으로 옮겨가는 것 같다. 하지만 해결해야 될 문제가 산적해 있다. 채식파와 육식파가 태극기와 촛불처럼 서로를 적대한다. 2017년 프랑스 급진 채식주의자들이 육식 진영을 향해 테러를 시작한다. 테러의 대상이 된 곳은 정육점, 생선가게, 치즈 가게, 햄버거 가게 등이다. 가게가 문을 닫은 늦은 밤 유리를 깨고 스프레이로 '육식 그만' '고기 먹는 야만인' 등의 글을 남기고 달아났다. 프랑스 전역 50여 곳의 농장과 상점이 공격을 당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채소와 과일, 고기, 그리고 그 경계에 선 수많은 식품군이 생각났다. 저들이 무슨 죄일까 싶다. 다 사람이 만든 건데.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는 '식품 공전'에 의거해 나름 신체에 별 무리가 없는 식품류들만 엄선돼 시중에 유통되고 있다. 하지만 그들 상당수는 채식주의자에 의해 저주의 식품으로 매도되고 있다. 설상가상 채식파들끼리도 반목질시한다. 남의 식단은 악마이고 자기 식단은 천사란 확신이다.

독초, 청산가리, 황산, 염산, 맹독성 농약 등은 먹으면 즉사한다. 자살 아닌 다음에야 절대 그걸 먹지 않는다. 먹거리는 기호와 식욕에 따라 형편과 처지에 따라 먹을 '섭취자유권'이 우리에겐 있다. 영양학이 등장하기 전, 민초들은 골고루 먹고 주어진 명대로 살다 갔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맘대로 먹을 수 있는 자유권을 박탈당하고 있다. 식품의학 전문가들이 책임을 통감해야 할 대목이다.

이춘호 음식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 불균형 식사 해결 방안 '식품구성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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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양학회와 보건복지부가 한국인 영양 섭취 기준을 쉽게 알리기 위해 만든 '식품 구성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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