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 세상보기] 아내를 맘에 묻은 노년 귀농자의 생활

  • 서홍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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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5-06   |  발행일 2020-05-06 제14면   |  수정 2020-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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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치매 걸린 아내를 돌보기 위해 도시생활의 모든 것을 정리하고 김천 조마면 대방리에 삶의 터전을 옮겼던 이응재씨(73). 사업과 함께 주민자치위원장, 생활체육회고문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던 그가 갑작스러운 귀촌 결정을 알려왔을 때 의아했다.

남은 생은 오직 아내를 위해 살겠노라며 김천의 작은 마을로 내려간 그는 귀농프로그램을 이수하고 주민과 교류하며 농촌생활에 적응해 나갔다. 또 텃밭도 개간하고 부인을 위해 꽃밭도 만들었다. 때때로 아내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지인과 마을 이웃들을 초청해 작은 음악회를 열기도 하면서 아내와의 남은 생을 소박한 즐거움으로 채워나갔다.

마지막까지 아내의 건강을 챙기며 치매를 이겨내기 위해 혼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귀농 2년 후 아내는 그의 곁을 떠났다. '울고 넘는 박달재'를 열창하며 아내와 자신을 위해 남은 삶을 열심히 살아내겠노라 많은 이들에게 다짐하며 그리 살았지만, 운명 앞에선 그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외출하고 돌아오면 어김없이 그 자리에서 자신을 반겨줄 것 같은 아내가 떠나자, 그는 한동안 마음을 잡지 못하고 힘들어했지만 떠난 아내를 생각하며 차츰 슬픔을 이겨냈다.

지금 그는 농촌 생활에 완벽히 정착하고 귀촌을 희망하는 이들을 위해 단체를 만들어 경험과 연륜을 전수하며 그들의 길잡이가 돼주고 있다.

도시에서의 활발한 활동을 떠올리며 그가 오래지 않아 농촌 생활을 접고 다시 돌아오리라 생각했던 것은 기우였다. 농토를 구입하고 새집을 지은 후 지극한 정성으로 치매 걸린 아내를 뒷바라지하며 노년의 아름다운 부부의 모습을 보여주던 그가 현재도 내게는 귀감이 된다. 사랑하던 아내가 떠난 후에도 외딴곳에 남아 여전히 자연인의 삶을 살고 있을 뿐 아니라 그와 같은 선택을 한 이들의 귀농 정착까지 돕고 있는 그가 한편으로 부럽고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근처 안장한 아내와 함께 머무르며 황혼의 멋진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의 소식을 간간이 보고 들으며, 이 노년의 쉽지 않은 삶은 계속 살아서 숨 쉴 것만 같다.

어느 책에서의 글처럼 세상 사람들이 다 잊어도 그의 아들 이진일씨(1998년 아시안게임 육상 금메달리스트)는 기억할 것이다. 어머니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과 황혼의 멋진 삶을.

서홍명 시민기자 abck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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