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전 서예·서각 배워 은퇴후 문화향기 넘치는 삶…공모전 수상도

  • 천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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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5-06   |  발행일 2020-05-06 제14면   |  수정 2020-05-06
■ 100세시대를 사는 사람들
경산시 하양읍 72세 장동천씨
30여년 공직 후 다양한 취미 즐겨
영천 운부암에도 작품 걸려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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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공무원 장동천씨가 자신의 작품에 새겨진 글귀를 설명하고 있다.

"갑작스레 멈춰버린 일상, 그래도 이 나이에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니 다행이지요."

장동천씨(72·경산 하양읍 동서리)는 지난 3~4월 코로나19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당시 스스로 사회적 거리를 두고 모범적 생활을 했다. 자주 나가던 하양어르신복지센터가 휴관을 하는 바람에 자연스레 발길을 끊었고, 건강을 위해 다니던 헬스클럽은 먼저 쉬겠다고 연락을 했다. 차를 이용해 다니던 와촌면 텃밭에는 한 시간가량 걸어서 다녔다. 하지만 평소 익혀둔 서예·서각·문인화·캘리그래피 등 다양한 취미활동 덕분에 집안에 마련된 작업공간에서 오히려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됐다.

햇살 가득한 봄날, 그의 집 대문에 들어서자 화분 속 꽃들이 봄을 맞아 화사하게 피어 있었다. 삽살개는 낯선 이가 방문했는데도 짖지 않았다. 장씨는 "천연기념물인 경산 삽살개는 영리해서 주인이 맞이하는 손님에게는 짖지 않는다"고 했다. 작업 중이었는지 제작 중인 작품과 연장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서각 작업실이기도 한 야외공간 여기저기 작품이 걸려 있다. 담장 위에 얹힌 기와에도 글씨가 새겨져 있어 운치 있다. 갑자기 넘쳐 나는 시간 덕분에 작품이 늘었다고 했다.

한자(漢字)로 새겨진 글귀의 설명을 부탁하니 '말로써 문자로써 표현할 수 없고 오직 깨달아야만 알 수 있다'는 향곡선사의 오도송(悟道頌·고승들이 불도의 진리를 깨닫고 지은 시가)이라고 했다. 나무의 재질에 따라 칼날의 강도를 다르게 해야 한다고 설명하는 그는 "나무에 글씨를 새기듯 마음에도 새기며 교훈으로 삼고자 한다"고 했다. 얼핏 보기에도 그의 서예와 서각은 취미 수준을 넘어섰다. 여러 공모전에서 이미 실력을 인정받았다. 영천 운부암 보화루에도 그의 서각 작품이 곳곳에 걸려 있다. 불경에 나오는 좋은 구절을 새긴 작품을 그곳에 기증했기 때문이다.

1973년 공직에 첫발을 디딘 후 2009년 와촌면장으로 퇴직하기까지 30여 년을 경산에서 근무한 그는 모범공무원 표창 등을 수상한 성실한 공직자였다. 그가 서예를 시작한 것은 40대부터다. 퇴근 후 저녁 먹을 시간도 없이 버스를 타고 대구까지 나가서 한두 시간 배우고 돌아오면 밤 10시가 넘었다고 회고했다.

서각을 시작한 것은 퇴직을 6개월쯤 앞둔 2009년. 퇴직 후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다 입문했단다. 지역 평생교육기관인 문화회관 관장직도 맡았던 그는 퇴직 후 그곳의 수강생이 되어 지역민과 문인화를 함께 배우며 어르신 복지관에서 도시락 배달 등 봉사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지나면 전시회를 여는 게 어떠냐고 권하자 그는 단호히 아니라고 했다. 장씨는 "전시회를 열면 주변 사람에게 오히려 부담을 줄지도 모른다. 작품제작 그 자체를 즐기고, 좋아해 주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기도 하고, 필요한 곳이 있으면 기증하는 것으로 만족한다"고 했다.

글·사진=천윤자 시민기자 kscyj8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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