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결수 작가 "나는 노동의 흔적이 예술가의 여정이라 생각한다"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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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5-20   |  발행일 2020-05-21 제17면   |  수정 2020-05-20
27일까지 갤러리 오모크 초대전 'Labor&Effective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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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결수 'Lavor & Effective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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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결수

작가 김결수의 작업 화두는 '노동'이다. 그 고단한 노동의 증거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예술의 가치를 확인한다.


노동을 증거하는 것들은 많다. 삶의 현장에서 닳도록 쓰여진 뒤 버려진 플라스틱, 깡통, 종이, 나무, 고철 또는 각종 자재와 도구들이다. 효용성을 다해 낡아버린 것들이 보여주는 것은 긴 시간 반복되었을 누군가의 고된 노동이다. 작가는 낡고 버려진 것들을 가져와 오리고 붙이고 쌓고 매달아 노동의 가치를 소환하고 그 효과를 발견하여 우리 앞에 보여준다. 


노동의 흔적을 통해 인간의 조건을 확인하고 예술의 운명을 보여줬던 이전 작업에서 더 나아가 이번엔 아예 작가 스스로 노동의 도구가 됐다. 거대한 5톤 분량의 황토를 일일이 전시장에 실어나른 뒤 거푸집을 만들어 형태를 세우고 발로 밟아 다졌다. 꼬박 사흘을 투자한 '노동'의 결과물이다. 


"여태 사용한 뒤 쓸모 없어져 버려진 것들을 대상으로 하던 것에서 이번엔 작가 스스로의 노동을 한번 보여 주자고 생각했다. 스스로의 노동력을 '갈아 넣어' 거대한 황토 큐브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만들어졌다가 해체되고 환원되어 쓰여지는 과정을 보여주려 한다. 갤러리의 환경에 따라 수분을 머금고 있던 흙이 미세하게 마르고 균열되어가는 변화의 과정도 내부에 설치된 모니터를 통해 기록하고 있다. 그것들이 결국은 하나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노동효과'라는 테마로 대구문화예술회관미술관 '나무도마', 대구미술관 '삶-선', 강릉경포대 '가마솥' 등 일련의 설치전을 가져 온 작가는 예술 행위로서의 무모한 노동을 작품 도처에서 보여주고 있다. 두드리고 두드려서 구멍이 뚫려버린 도마, 폐목이 된 나무들보와 구들장, 닳고 닳은 가마솥에서 작가는 애잔한 노동의 그림자를 발견한다. 그 지난한 노동의 흔적을 통해 작가는 고단한 우리의 삶을 위무한다. 


이번 전시에서도 노동의 흔적은 작품 곳곳에 배여 있다. 검게 그을린 거대한 나무기둥에는 장대못이 빼곡히 박혀 있다. 놀이공원이나 유흥가에서 힘자랑을 하며 대못을 밖는 놀이에 쓰였던 나무기둥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재미있거나 슬프거나 스트레스받은 마음을 담아 대못을 나무에 내리쳤을 것이다. 놀이에 쓰였던 그 나무를 검게 태운 뒤 작가는 누군가가 박아놓은 그 촘촘한 못을 하나씩 빼냈다. 신문지를 돌돌말아 캔버스를 가득채운 작품이나 작은 집들이 촘촘히 쌓인 드로잉 역시 단순하고 힘들고 지루한 노동의 결과물들이다. 


"단순한 노동의 반복으로 만들어진 작품은 사실 두드러진 시각적 효과를 주진 않는다. 무언가를 만들거나 누군가의 눈을 의식한 보여주기가 아니라 그저 노동의 흔적으로 남겨진 것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노동의 흔적이 예술가의 여정이라 생각한다."


물리적 고통과 시간을 수렴해 지난한 노동의 흔적으로 작품을 통해 작가는 그렇게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이은경기자 le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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