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아무도 모른다

  • 서민지
  • |
  • 입력 2020-05-18   |  발행일 2020-05-19 제25면   |  수정 2020-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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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강 대구 수성구청 세무2과 팀장

옆자리 동료가 뜬금없이 묻는다. B.C.가 뭐의 약자냐고. B.C.는 'Before Christ'의 약어로 기원전을 뜻하는데... 아니란다. 요즘 B.C.는 'Before Coronavirus(코로나19 이전)'란다. 우스갯 소리로 넘기면서도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After Cornavirus(코로나19 이후)'는 어떨까.

 


대구 봉쇄라는 공포 속에서 자발적으로 시작한 '셀프 격리'. 대구 시민들이 마스크 쓰고 모임·외출을 자제하면서 살아온 지가 벌써 몇 달 째다. 끝이 보이지 않던 절망에서 희망을 기다리며 대구 시민은 말한다. 대구라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처절한 싸움인가를 겪어 보았으니까. 대한민국 심장인 서울이 코로나19 진원지였으면 대한민국 전체가 흔들렸을 것이다. 이것이 대구시민이 가진 따뜻한 마음 DNA다.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 오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육체적 거리두기일 뿐이다. 하지만 사람 관계 거리두기가 더 보태진다. 사람이 그립다. 직장인·학생들로 북적이는 거리 풍경이 눈물 나도록 그립다. 코로나19와의 힘들었던 싸움보다 무서운 건 대구 포비아(phobia:공포증)다.


코로나19는 대구 사람 어느 누구도 동의하지 않은 재난이었다. 대구 사람과 거리두기를 하고 있는 나라 안팎 이웃의 인심은 가혹하다. 코로나19는 아무도 가보지 못한 길이기에 대구시민은 대구 봉쇄를 이해하려고 한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며 등 두드려 주는 위로는 바라지도 않는다. 제발 대구 거리두기만이라도 멈추어 주었으면….


드라이브 스루는 코로나19 확진 여부를 알기 위해 차에 탄 채로 검사하는 선별진료소다. 한국의 드라이브 스루 검사 방식은 세계적 호평을 받고 있다. 코로나19는 경제생활마저 멈추게 했다. 드라이브 스루 농수산물 판매는 차에서 내리지 않고 상품을 구매하는 비대면 쇼핑이다. 절망에 빠진 농민과 상인을 도와주고 있다. 도서 대출·반납에도 드라이브 스루 방식이 등장했다. 공공도서관에선 책을 소독한 뒤 밀봉해 비대면으로 전달하는 북 스루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해외에서도 다양한 드라이브 스루 방식이 도입되고 있다. 스페인에선 드라이브스루 장례식이 등장했다. 영결식 참석자도 5명 이하로 제한하고 5분 안에 영결식이 끝난다고 한다. 감염 가능성 때문에 가족도 마스크를 쓴 채 멀리 떨어져서 지켜본 뒤 차를 타고 떠난다. 드라이브 스루는 비대면 관계 속에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다. 하지만 행복했던 우리 일상은 같은 공간 속에서 나누는 은은한 커피향과 따스한 눈빛이었다. 지금 우리가 애타게 기다리는 평범한 일상이거늘. 평범한 일상이 무너지고 나니 그것이 행복이었음을 배우고 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언택트(untact:비대면)시대다. 재난을 앞세워 단단히 자리 잡은 비대면 시대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되는 봄날이다.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는 많이 달라질 것이다. 우리는 다른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이다. 현재로선 변종 바이러스가 문제이지만 이 재난이 끝난 후 몰려올 사회·경제적 변화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예전의 평범한 일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에 불안하다. 이것이 코로나 블루.
흐드러지게 핀 꽃이 우리를 유혹하지만 집 밖에 대한 두려움으로 집안에서 쳐다보고만 있다. 코로나19 이후 우리 삶이 어떻게 다가올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코로나19 이후는 대구 포비아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 대구시민이었음을 당당하게 말하고 대구 밖으로, 나라 밖으로 자유로이 다니고 싶다.
김은강<대구 수성구청 세무2과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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