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포항 크루즈·포항함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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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5-08   |  발행일 2020-05-08 제36면   |  수정 2020-05-08
형산강과 동빈내항 생명의 물길 다시 열리니 닿는 곳마다 푸른 활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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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운하에 있는 다목적 포항 운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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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산강 하구와 포항제철이 보이는 크루즈 주차장과 주변 경관.

시나브로 바람이 분다. 어디서 불어오는지. 바람은 간절하게 귓밥을 만지고 훌쩍 달아난다. 형산강이 바다와 만나는 하구. 강 건너 포항제철의 위용이 한낮의 꿈같다. 흰 연기가 뭉실뭉실 올라오는 굴뚝은 햇빛과 범벅을 이뤄 마치 부라보콘에 닿은 혀처럼 정신에 단맛을 퍼붓는다. 우리나라 경제 기적을 일군 용광로가 토하는 연기는 그게 어디 현실인가, 환상의 단맛이지. 그리고 아르르 형산강은 흐른다. 어디서 언제부터 흘러왔을까. 몸도 없이 영혼의 소리만 쉭쉭 지르며 사라지는 바람과는 달리. 강은 소리 없이 흐느끼며 흐른다. 멈추다가 흐르고 흐르다가 멈춘다. 바다와 만나는 기수역은 허물 벗고 새 몸을 만드는 또 다른 자궁이다. 여기서 강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 가끔 바닷바람이 강줄기를 타고 거슬러 올라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날린다. 천천히 걸어 포항운하관으로 간다. 1·2 층은 지나치고 3층 홍보관 및 4층 전망대에 들른다. 전망대에서 보는 조망은 단연 뛰어나다. 360도 파노라마 뷰 포인트인 몽파르나스 타워처럼. 여기서 보면 형산강 물은 이중섭의 그림 '길 떠나는 가족'처럼 흐른다. 작은 만 건너 대형 밍크고래 등 같은 간척지에 포항제철이 온몸을 드러내며 우람한 근육을 자랑한다. 쉴 새 없이 뿜어대는 하얀 연기는 소름 끼치게 환상적이다. 동빈 내항 쪽으로 도시가 있고, 거기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림자를 끌고 오락가락한다. 마치 디오니소스의 파도처럼. 곰비임비 볼 만큼 본다. 어느덧 크루즈 탈 시간이라 매표소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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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크루즈 운항 중 지나는 탈랑교 진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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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함 정면 선상에 있는 76㎜ 주포와 한주호 준위 동상.

크루즈여행
강·바다 이은 국내 첫 도심형 유람선
강 건너 한낮의 꿈같은 포항제철 위용
도시 사이 운하로 나아가며 푸른 몽환
우짤랑교·말랑교·탈랑교 정겨운 다리
여행객이 든 새우깡 낚아채는 갈매기

포항함
30년간 영해수호 완수 퇴역한 초계함
市와 각별한 인연, 선상 병영체험 개방
함내 식당·기관 조정실·함장실 탐방
故 한주호 준위·천안함 추모코너 마련


포항 크루즈는 국내 최초 도심형 유람선이다. 유람선을 타고 포항 운하를 둘러보는 리버크루즈(14인승), 동빈 내항을 거쳐 송도 앞바다까지 한 바퀴 돌아오는 연안크루즈(44·54인승)가 있다. 매표소 강성실씨의 품위 있는 친절이 인상 깊다. 연안크루즈(44인승)에 탄다. 유람선은 오전 10시에 떠난다. 생명의 물길 따라 유람선은 간다. 포항 운하는 형산강 입구에서 동빈 내항 송도교 인근까지 폭 15m 내지 26m, 수심 1.74m의 수로를 조성한 대역사로 공사 7년 만에 형산강과 동빈 내항 물길이 다시 만나게 되었다. 1960년대 후반, 포항제철 건설로 수로가 변경되면서 물길이 끊어져 이때부터 동빈 내항 일대는 갈수록 썩고 비린 악취가 심해 사람들에게서 멀어져 갔다. 이런 오염을 걷어내기 위해 해마다 옴니암니 예산을 퍼부었으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포항의 허파와도 같은 곳, 한국의 나폴리라 불리는 동빈 내항으로 형산강 물이 흐른다면 포항은 싱싱한 물의 도시로 다시 번지 점프할 것이다. 이제 맑은 형산강 물은 운하를 쓰다듬고 흐른다.

유람선이 운하를 따라 나아간다. 운하의 양편에는 공원이 조성되어 그야말로 경치가 아름다운 만화다. 이렇게 도시 사이 운하로 유람선이 나아가는 것은 오전의 푸른 몽환이다. 운하로 생명의 물길 열리니, 포항시민의 어깨춤이 들썩하고 환호작약한다. 사업비 1천600억 원, 건물철거 479동, 이주자 827세대 2천225명. 안내자의 목소리가 우르르 왔다 와르르 멀어진다. 대단한 공사였다. 우짤랑교 다리 밑을 지난다. 푸른 다리의 그늘이 맴을 돈다. 유람선이 밀어내는 하얀 포말의 바다 위에 갈매기떼가 무리지어 따라온다. 포항 시민의 꿈은 갈매기의 꿈일지 모른다. '가장 높이 나는 갈매기가 가장 멀리 본다'는 그 갈매기의 꿈이 포항제철 연기처럼 날아다닌다.

스크류 소리는 으르릉거리며 푸른 물결이 작두춤을 춘다. 유람선의 속도는 얼마나 될까. '완전한 속도란 생각을 하는 순간 이미 그곳에 가 있는 것이다.' 나의 내면에서 완전한 속도란 어떤 것일까. 어느 여행객의 손에 있는 새우깡을 낚아채 날아오르는 갈매기를 본다. 갈매기를 따라가는 눈이 햇빛에 파묻힌다. 갑자기 시야가 깜깜해지면서 시간이 환각으로 산산조각 난다. 이렇게 멈출 수 있는 순간이 나의 영원한 공간인지 모른다.

말랑교 다리가 나타난다. '함께하는 변화, 도약하는 포항'. 이 다리 측면에 적혀있다. 그렇다. 우리 모두 함께 도약하자. 갈매기떼가 더 많아진다. 관광객의 손에 새우깡이 있는 한 갈매기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탈랑교 다리도 지난다. 우짤랑교, 말랑교, 탈랑교. 다리 이름을 이어본다. 세계적인 미항 포항의 크루즈다. 유람선을 타 볼 거냐 아니면 말 거냐, 어떻게 할래, 그런 뜻인 것 같다. 이러한 포항 사투리는 투박하면서도 사무치게 정겹고 그립다.

동빈 내항에 닿자 방송이 나온다. 오늘은 파도가 있어 바깥 바다로 나가지 않고 다시 운하로 해서 되돌아간다는 내용이었다. 반환점에 온 것이다. 모든 것은 돌아간다. 돌고 돌아서 본집으로 간다. 자기 집을 바로 찾아가면 그게 부처다. 바다 위 하얀 물거품으로 흩날리는 유람선 꽁무니, 시간의 포말이 우리의 본집이 아닐까. 왠지 그 극성스럽던 갈매기가 갑자기 딴 곳으로 이동한다. 두 눈이 파랗게 물들기 전에 유람선이 출발했던 부두에 정박한다. 포항 크루즈 여행은 이렇게 끝났다. 포항 운하는 기억의 저편에 남게 되었다. 이제 여기서 지근 거리에 있는 포항함으로 이동한다.

포항함에 승선하자 남자 안내자가 해설을 한다. "포항함은 2010년 3월26일 서해 백령도 앞바다에서 북한의 잠수정 공격으로 침몰한 천안함과 동일한 재원의 함정으로, 30년 가까이 조국 영해 수호의 임무를 완수하고 명예롭게 퇴역한 우리 해군의 주력 1천200t급의 초계함입니다. 취역기간동안 우리 포항시와 많은 교류 관계를 가져온 각별한 인연으로 퇴역 후 동빈 내항에 안보 의식과 선상 병영체험 공간으로 일반인에게 개방하게 되었습니다."

해설을 마치자 탐방 순서를 표시한 화살표를 따라간다. 함 내 식당은 부사관과 수병들이 식사하는 곳이다. 이어지는 곳이 기관 조정실이다. 함정의 기관 전기를 통제하는 곳이다. 다음은 안보관으로, 장교들이 아침마다 회의를 하거나 사관들 식당으로 사용한다. 고(故) 한주호 준위와 천안함 46인 전사자 추모코너도 있다. 방 벽에는 다녀간 전답자들의 메모가 빼곡하게 붙어있다. 2층으로 올라간다. 전투정보실이다. 사격 통제사(일명 사수)와 전탐사(레이더 관측)가 근무하는 곳이며, 전투에 필요한 레이더 관측 및 포를 발사하는 전투 지휘소다. 연평도 포격전 시 북한의 122m 장사정포 포탄 잔해 4점을 전시하고 있다. 다음은 함장실(Captain's cabin)이다. 함정에서 최고 지휘관인 함장이 업무, 휴식, 취침을 하는 곳이다. 화살표는 통신실로 이어진다. 통신실은 군대 통신과 어선망, 위성망을 관리한다.

선내 탐방을 마치고 갑판으로 나간다. 함포와 주요 무장 장비를 본다. 76㎜ 함포 1문, 30m 상열 기관포 2문, MM38엑조세 미사일 2발, 어뢰 및 폭뢰 장착. 전장 88.5m, 전폭 10m, 최대 속력 32노트. 마스트 높이 23m다. 해군 함정에 대해 까막눈이던 나는 포항함 탐방에서 감탄의 속눈을 떴다. 3면이 바다인 우리나라, 해군들이 목숨 걸고 바다를 지키고 있으니 우리가 삶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선체를 벗어나니 바다가 새롭게 보인다. 나는 바다가 호수보다 마냥 크고 별보다 더 멀리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바다는 관념의 꽃처럼 피었다 지고. 내 내면의 아득한 곳, 더 깊고 먼 곳에서 출렁이고 있다. 맵싸한 바람 소리가 동빈 내항을 푸른 건반으로 만든다. 낯 익으면서도 낯선 바다. 욕망이 숨은 심리적 거리의 바다. 동해의 영감이 나의 머리에 꽂히면 나는 속절없이 푸른 파도를 타게 되고, 의미 가득한 그 무엇이 된다.

시인·대구힐링트레킹 회장 kc12taegu@hanmail.net
사진=김석 대구힐링트레킹 사무국장

☞ 문의:포항 운하 홍보관(054)270-5177·5173 승선안내 (054)253-4001

☞트레킹 코스: 포항 운하 - 포항 크루즈 선착장- 동빈내항 - 선착장 / 포항함 이동 - 포항함 탐방

☞ 인근 볼거리: 영일대, 구룡포 근대 역사 문화거리, 호미곶 새천년 기념관, 연오랑 세오녀 테마 공원, 포경사, 다무포 고래 해안 생태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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