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시론]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 김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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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5-20   |  발행일 2020-05-20 제31면   |  수정 2020-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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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억 경북본사 총괄국장

전력수급기본계획 워킹 그룹은 지난 8일 제9차 전력수급계획(2020~2034년)에 담길 권고안을 내놓았다. 이 권고안의 핵심은 전체 발전 설비에서 원전 비중을 현재 19.2%에서 9.9%로 줄이고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15.1%에서 40%까지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석탄 발전소도 대폭 줄어든다. 이 안대로라면 현재 26기(건설 중 원전 2기 포함)인 원전은 2034년에는 17기로 줄어든다. 정부는 이 권고안을 토대로 연말까지 9차 계획안을 확정한다.

국내에서 건설 중인 마지막 원전이 될지도 모르는 신고리 5·6호기의 주요 설비 납품이 내년 3월이면 끝난다. 국내 유일의 원전 설비 기업인 두산중공업 원전공장은 유지 보수에 필요한 분야를 제외하고는 문을 닫아야 한다. 수백개의 협력 업체도 폐업 수순을 밟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한국 원전 산업 생태계 붕괴 시간이 초읽기에 들어간 셈이다. 결국 10개월 안에 국내 원전 산업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원전 산업은 무너지면 다시 일으켜 세우기가 힘들다. 국내 원전 산업이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는 데는 족히 60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한국형 원전 APR1400은 미국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설계 인증을 받았다. 미국 외 국가에서 NRC의 인증을 받은 것은 한국이 유일하다. 이 원전은 이미 UAE 바카라에 건설됐고, 신한울 3·4호기도 이 원전으로 건설 예정이었다. 설계와 시공, 원전 운영 능력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럼에도 국내 원전 산업은 멈춤 직전이다.

핵 종주국 미국은 스스로 원전을 짓지 못한다. 1979년 펜실베이니아주 스리마일 원전 사고 이후 34년간 새 원전 건설이 전면 중단됐다. 이 여파로 1950년부터 1989년까지 전 세계에서 완공된 원전의 4분의 3을 도맡아 건설했던 미국 원전 기업들은 문을 닫거나 해외로 팔려나갔다. 우리나라 역시 지금처럼 탈원전 정책이 지속되면 미국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우리가 탈원전 정책을 밀어붙이는 사이 세계 각국은 원전을 재가동하거나 원전 건설에 적극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 이후 원전 제로 정책을 추진해 왔지만 최근 후쿠시마 사고 이전으로 유턴하고 있다. 잇단 원전 재가동에 이어 원전 비율을 2018년 2%에서 2030년에는 20~22%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원전 폐쇄 이후 전기료 급등으로 떨어진 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미국도 최근 자국 원전산업 복원을 선언하고 나섰다. 세계원자력협회(WNA)에 따르면 세계에서 2020년대 가동을 목표로 건설을 계획하고 있는 원전은 109기, 검토 중인 원전은 329기에 이른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탄소배출을 줄이는데 아직까지 원전만 한 에너지원이 없기 때문이다.

원전산업은 코로나 이후 가장 각광 받는 산업 중의 하나가 될 것이 분명하다. 원전 산업은 사양산업이 아니라 여전히 지속 발전 가능한 산업이다. 탈원전은 원전산업 포기를 의미한다. 정부는 원전 수출은 지원하겠다고 한다. 어불성설이다. 자국에서는 위험하다고 짓지 않는다고 하고, 다른 나라에는 원전을 짓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 거대 세계 원전시장을 스스로 발로 차버리는 꼴이다. 일자리 정부를 표방하면서 양질의 일자리 수만 개를 없애고 있다.

국가에너지정책은 일정 임기의 특정 정권이 마음대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 국내 원전 생태계가 유지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마련돼야 한다. 우선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재개해야 한다. 9차 전력수급안의 대폭 보완도 요구된다.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 설비 비중을 40%까지 끌어올린다는 것은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것과 같다.
김기억 경북본사 총괄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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