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광장] '열공'이 필요한 이유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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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5-22   |  발행일 2020-05-22 제23면   |  수정 2020-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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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현 변호사

늘 부족한 점이 아쉽고 채워 넣어야 할 것들이 보인다. 그래서 틀린 건 솔직하게 인정하고 더 찾아본다. 돌이켜 보면 삶은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무언가를 알기 위해 발버둥치고 평가받고 깨닫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가혹할 정도로 등수대로 줄을 섰던 고시 공부할 때나 연수원 시절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석차내기 방식에 익숙해서인지는 몰라도 지금도 어디에 서 있든 내 위치 파악이 자연스럽다.

이번 정부 집권 초기의 화두가 최저임금제였다면 코로나 이후의 화두는 고용안전망이다. 문 대통령의 취임 3주년 특별연설이 끝나기 무섭게 여당 대표는 '전 국민 고용보험의 시급함'을 얘기했고, 대통령직속일자리위원회는 고용보험의 보편화에 대한 찬반을 묻는 너무나 정답이 뻔한(?) 여론조사를 실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시급 1만원을 목표로 2년 동안 29%를 인상해버림으로써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미준수율만 높여버린 최저임금의 기억 때문에 여전히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낸다.

누구나 그렇듯 확대 취지에는 백번 찬성한다. 다만 몸에 좋은 산삼이라고 빚내서 사는 게 맞는 걸까. 국가 재정도 돈 들어 갈 데가 많으면 장기 계획표를 짜서 아껴야 하고, 돈을 찍어 낼 수 없으면 벌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하는 게 기본이다.

그런데 목소리만 큰 스피커들 때문에 화들짝 놀랄 때가 있다. 그냥 곳간이 비었으면 세금 늘리고 기업에 부담시키면 만사 오케이다. 당초 고용보험 확대의 전제로 논의되었던 노동시장의 유연화 논의는 숨어버렸다. 경제체질 개선에 대한 고민 따위는 시원하게 날려버린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돈이 부족한데 어떻게 쓸 것이냐'의 문제, 고용 확대에 따른 보험료 인상의 문제나 재정확보 방안, 맞물린 노동시장 개혁의 문제 따위는 그냥 '라떼는~' 수준의 반대논거 정도로 치부한다.

다른 문제도 비슷하다. 이재용 부회장의 국정농단 관련 재판 중 설치된 삼성 내 준법감시위를 가지고 말이 많다. 재판부가 '실효적 준법감시제도' 도입을 언급하면서 일종의 퇴로를 열어준 뒤에 이뤄졌기 때문이다. 스피커들은 재판부가 준법감시위 운영이 감경사유로 작용하는 미국의 양형기준까지 끌어오면서 꼼수를 부린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기업의 준법지원 조직은 미국 내 대형 에너지기업의 분식회계사건 이후 일종의 자체 행위규범으로 정착하며 내부 견제를 통한 건전한 기업문화 형성에 기여한 측면이 크다. 양형상 고려는 준법 경영을 이끌어내기 위한 인센티브이고, 이는 우리 형법의 양형기준인 '범행 후의 정황'으로 충분히 포섭될 수 있는 것이다. 제도의 본질에 대한 연구 없이 오직 시야를 재벌 총수 엄벌에만 맞추는 것이 안타깝다. 정녕 기업문화 개선을 원한다면 기업 내 위법행위가 감시위로 바로 연결되는 핫라인 절차를 확보하고 내외부로부터의 독립성 확보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에 대해 살펴보는 게 우선이 아니겠나.

고용안전망을 확보하고 엄격한 법의 형평을 기하자는 것 같은 정의의 대원칙에 반대하자는 것이 아니다. 구조를 세심하게 짜서 안전하게 가자는 것이다. 정의롭게 보이는 것보다 실제 정의롭게 만들자는 것이다. 내용을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대충 말하고 던져놓는 식이면 그냥 말싸움밖에 안 된다. 몇십 년 연구한 전문가들 얘기가 전부 구시대 꼰대 소리일까.

유난히 목소리 큰 스피커들이 일부에 불과한 건 다행이다. 그러나 민주사회 아닌가. 외부적 압력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이상 목소리 큰 자들에 대한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솔직해지자고 얘기해주고 싶다. 모르는 걸 우기지 말고 더 공부해야 토론도 되고 발전도 있는 거 아닌가.
전지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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