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을 잃었으나 희망까지 버릴 순 없다' 김건예 개인전 '잃어버린 계절'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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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5-28   |  발행일 2020-05-29 제16면   |  수정 2020-05-29
6월7일까지 아트스페이스 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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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예 작가의 작업 과정은 좀 특별하다. 일련의 작업을 거친 뒤 선별해 전시를 하는 보통의 방식과 달리 그는 전시를 위한 콘셉트를 먼저 잡은 뒤 그와 관련된 작업을 한다. 그에게 전시란 지금껏 그린 그림들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전시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건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전시는 늘 새롭다. 같은 레퍼토리가 반복되는 지루한 이야기에 귀 기울일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전시를 준비할 때마다 이번에는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라는 전시 콘셉트에 대해 고민한다. 이전과 다르고 발전된 그림을 보여 주기 위해서다. 왜냐면 우리의 삶이 매달 매년 조금씩 변화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전시는 작품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고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은 스스로도 재미가 없기 때문에 나의 작업 방향은 내 삶의 변화를 반영한다. "


늘 그래왔듯 그의 관심은 '현대인의 삶'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번 전시의 콘셉트는 '잃어버린 계절'이다. 그렇다. 코로나로 잃어버린 우리의 계절, 봄이다. 


코로나 19라는 초유의 재난 앞에서 송두리째 일상을 빼앗긴 채 하루하루 견뎌내고 있는 우리의 마음 속을 들여다 볼 수 있다면, 거기엔 작가가 그려낸 풍경이 그대로 펼쳐질 것이다. 


작가의 전매특허라 할 '회화적 그리드'는 이번 전시에서도 유효하다. 붓 끝을 이용해 가볍게 쓸어내리는 듯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그리드 기법으로 그는 지금까지 17번의 개인전을 치렀다. 복제, 관음증, 여성, 인권, 수집욕 등의 키워드로 현대인의 왜곡된 욕망과 피할 수 없는 정체성을 보여줬다. 지금껏 인물을 통해 현대인의 모습을 형상화해 온 그는 이번 전시에서는 오로지 풍경에 몰두한 작품을 선보인다. 


적게는 서너번 많게는 십여 번의 반복된 붓질이 만들어 낸 그리드는 매우 정교하게 이미지 위를 교차한다. 씨줄과 날줄을 엮어 만든 직물의 표면 같기도 한 그리드로 새로운 회화적 공간을 만들면서 공간의 깊이를 더해준다. 


"그리드는 현대 사회의 구조를 의미하기도 하고 현대사회에서 수없이 연결되는 관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또 현대인으로 상징된 작품 속 인물들을 평면화하고 익명화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2002년 시작된 이 그리드 작업을 통해 현대 사회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꾸준히 보여주고 있다."


계절을 잃었으나 희망까지 버릴 순 없는 일. 눈이 덮힌 나목이 버티듯 서 있는 풍경은 고요하나 강인하다. 우리는 봄이 오듯 여름이 올 것이며, 눈이 녹은 자리마다 푸른 잎들은 돋아나 천지를 덮을 것임을 믿는다. 김건예의 풍경은 우리의 그 믿음을 지지하고 응원하고 있다. 희망을 버리지 말라며 용기를 북돋운다. 


"내가 보는 풍경은 관계성을 배제해 느껴지는 건조함과 멜랑콜리, 갇혀있는 듯 불안한 겨울이다. 느낌으로 그려낸 이들 풍경은 현실엔 존재하지 않으나 어딘가에 있을 법한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주제가 사람에서 나무로 옮겨왔으나 그 본질은 같다. 정체성을 잃은 현대인과 가지만 앙상한 나무가 닮아 보이지 않는가. 앞으로의 작업이 어디로 갈 지 나도 모른다. 정해진 것은 없으나 작업이 깊어짐은 느낀다. 스스로 다음 작업에 대한 기대감도 갖고 있다."


김건예 작가는 2001년 독일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가졌고, 뒤셀도르프 아카데미를 졸업할 무렵 레히베르크하우젠 후원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이후 바덴뷰르텐베르크주 후원으로 활발한 창작활동을 했다. 13년간의 독일 유학을 마치고 2009년 귀국한 이후 현대인을 중심 테마로 한 다양한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6월7일까지 아트스페이스 펄.

글·사진=이은경기자 le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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