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희 변호사의 청년과 커피 한잔] 유산슬·카피추·펭수·김다비에 열광… '캐릭터 놀이'에서 찾는 행복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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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5-29   |  발행일 2020-05-29 제38면   |  수정 2020-05-29
톱스타 유재석과 트로트 신인 유산슬
산골에서 노래 즐기는 자연인 카피추
EBS에 소속, 크리에이터 꿈꾸는 펭수
개그우먼 김신영의 둘째 이모 김다비
현실·비현실 경계 공간 속 역할극 놀이
다양한 정체성, 인격 분리에 대한 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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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슬

필자에게는 여느 때와 같은 평일 아침이었다. 알람소리에 기상을 하고 회사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거실 TV에서는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KBS 아침마당'에서 트로트 신인들의 노래를 방송으로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익숙한 목소리와 얼굴이 트로트 신인이라면서 등장했다. 유재석이었다. 그야말로 '형이 왜 거기서 나와'였다. 항상 저녁과 밤의 예능을 책임 졌던 유재석이 갑자기 트로트 신인이라면서 유산슬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였고, 본인 소개도 유재석이 아닌 유산슬이라고 하였다. 이윽고 유산슬은 트로트 신곡 하나를 아침에 생방송으로 열창을 했다. 유산슬의 아침마당 출연은 필자에게 있어서 자그마한 행복을 선물해 주는 느낌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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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유튜버가 운영하는 채널에 산골에서 노래를 즐기는 50대 자연인이라고 소개한 '카피추'가 등장하였다. 그는 산에서 오래 살았던지라 요즘 문화에 대하여 무지하며 돈에는 욕심이 전혀 없고 등산객이 버리고 간 기타를 가지고 노래를 만들면서 '자연인'으로서 살아가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만들었다던 노래, 즉 자작곡이라며 몇 곡을 들려주었다. 그런데 자작곡 대부분이 무엇인가 친숙한 멜로디와 가사를 들려주다가 갑자기 전혀 다른 멜로디와 가사를 부른다. 표절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그렇다고 자작곡이라고 부르기에도 애매하다. 정말, 산골에만 있던 사람이 맞는지 의심이 간다. 그런데 그는 실제로는 약 20년 전에 MBC에서 개그맨으로 데뷔하였던 '추대엽'이라는 개그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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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캐릭터는 '펭하'를 외치는 자이언트 펭귄, '펭수'다. 펭수는 남극에서 태어난 펭귄이며, 나이는 10세다. 하지만 사람처럼 말을 하고 노래도 부르고 춤까지 추며, 현재 크리에이터를 꿈꾸며 교육방송 EBS에 소속되어 있다. 그리고 한 번씩 사회생활에 정곡을 찔러주는 말들을 과감히 한다. 자신의 소속사 EBS의 사장님인 '김명중'을 수시로 소환하며, '김명중의 지갑'으로 애청자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사주고 싶다고 당당히 이야기를 한다. 이러한 펭수의 도발적인 매력에 많은 청년들이 열광을 하였고, 그 인기를 토대로 펭수는 2020년 보신각 제야의 종 타종행사에도 참여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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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개그우먼 김신영의 둘째 이모라는 김다비도 등장하였다. 표준어를 구사하는 김신영과 달리 구수한 사투리를 구사하지만 자세히 보면 김신영과 판박이인 이모다. 그리고 그녀는 젊은이들을 대신해 쓴소리를 하는 어른 캐릭터로 거듭나면서 '주라주라'라는 노래로 인기를 갈구하고 있다. 하지만 철저히 김다비와 김신영을 불리해 보는 청년들과 달리, 김다비를 보고 '김신영'을 부르면 "예?"라고 대답하면서 김신영이 김다비와 혼동을 느껴 웃음을 선사하는 장면을 보여 주기도 한다.

작년 연말부터 시작하여 최근까지 온라인상을 중심으로 청춘들에게 재미를 주는 이슈 중 하나는 '캐릭터 놀이'다. 현존하지 않는 공간에서 '캐릭터'를 만들어 등장시키고, 그 캐릭터가 현존하는 것처럼 받아주는 소위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 선상에서 긴장감 넘치는 '줄다리기 게임'을 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유산슬은 소위 '3대 느님'이라고 불렸던 '유느님' 유재석이다. 누가 봐도 유재석이고, 실제로도 유재석이 유산슬을 연기한다. 하지만 대중들은 유재석과 유산슬을 철저히 분리해서 이야기를 하며, 방송국 역시 연말대상에서 유산슬에게 신인상을 수여해준다. 엄연히 따지자면 유재석은 신인상을 받을 자격이 없지만, 유산슬은 가능했던 것이다. 철저한 분리이고, 이러한 분리를 우리 청춘들이 즐기는 것이다. 그리고 유재석 스스로도 유재석 본인과 유산슬을 혼동하면서 보여주는 개그 코드는 또 다른 놀이문화를 선사해준다.

카피추나 펭수, 김다비 역시도 이러한 현실과 비현실이 만들어 낸 공간에서 역할극 놀이를 통하여 만들어졌다. 이러한 역할극 놀이에 관하여, 서울대 김난도 교수는 '멀티 페르소나'라는 개념으로 설명을 하였다. 여기서 페르소나는 그리스의 고대극에서 배우들이 쓰던 가면을 일컫는 말인데, 현대에서는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정체성'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즉, 다중적 자아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개인이 상황에 맞게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여 다른 정체성을 표현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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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희 법률사무소 대표

새로운 것에 대한 끊임 없는 갈망을 계속해서 요구하는 현대 사회에서 '캐릭터 역할놀이'는 분명히 청년들에게 있어서 새로운 놀이 문화를 제공해준 것으로 보인다. 철저히 인격에 대한 분리와 그 분리에 대한 존중, 그리고 그사이에 펼쳐진 가상의 공간에 대한 놀이터화는 '멀티 페르소나'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분명히 보여준다. 앞으로 어떤 캐릭터가 등장하여 청년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청년들을 보다 행복하게 해줄 것인지 기대가 된다.

조상희 법률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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