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석의 電影雜感 2.0] 5·18 장편영화 '황무지' 31년만에 첫 공개

  • 임성수
  • |
  • 입력 2020-05-29   |  발행일 2020-05-29 제39면   |  수정 2020-05-29
5·18 항쟁 진압군이 본 참상, 죄책감, 고백…30년 시간을 넘어서 말한다
5·18 시민군 초점 '칸트씨의 발표회'
반대편 선 김의기에게 시선 '황무지'
김태영 감독 연출 1987·1988년 작품
개봉하자마자 필름 압수·상영 어려움
민주화운동 40주년, 2개 작품 특별전
영상자료원 온라인 사이트서도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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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 감독이 연출한 '칸트씨의 발표회(1987)' 스틸 컷(맨 왼쪽)과 '황무지(1988)' 스틸 컷.
'칸트씨의 발표회'(1987)라는 영화가 있다. 나처럼 독립영화를 제작하는 이들이나 공부하는 이들에겐 전설 같은 작품이다. 1980년대 초 한국의 독립영화를 대표하는 작품 가운데 하나로 늘 꼽히는 이 작품을 그야말로 공부하는 심정으로 몇 번이고 돌려보기도 했고, 훗날 영화진흥위원회가 2006년 발매한 '매혹의 기억, 독립영화 Vol. 1(1970~80년대)'을 직접 구해 소장하고 있다. 주인공으로 나오는 사진작가는 도시 속 인물들을 찍던 중 우연히 칸트씨라는 인물을 발견하고 그의 행동에 호기심을 느껴 그를 따라다닌다. 사진작가는 카메라에 담은 칸트씨의 모습을 인화해 그를 기다리지만 만나지 못하고, 그의 지인을 통해 칸트씨가 잡혀간 사실과 그가 1980년 5·18광주항쟁 당시 실종자였다는 걸 알게 된다. 영화는 5·18을 다룬 첫 번째 한국영화로, 작가 황석영이 쓴 최초로 광주시민의 목소리를 담은 5·18에 대한 체계적인 기록물이라 불리는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토대로 했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등이 폭로되던 시기 자유와 민주주의를 외치던 이들에게 바치는 작품으로, 1988년 제38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 한국 단편영화로는 최초로 초청되기도 했다.

광주 5·18 당시 시민군에 참여한 사람에게 초점을 맞춘 것이 '칸트씨의 발표회'였다면 '황무지'(1988)는 바로 시민군의 반대편에 서 있던 진압군에게 시선을 맞춘다. 1980년 5월 탈영병 김의기는 6개월째 도망다니던 중 군산의 기지촌 술집에서 일하게 된다. 술집에는 미군을 상대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이 있다. 주인공 의기는 파멸하는 주변의 비참한 삶들을 지켜보며 광주에서 학살한 소녀에 대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며 신부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는 망월동 묘지에서 분신한다. 주인공의 이름은 당시 광주의 참상을 목격한 뒤 1980년 5월30일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동포에게 드리는 글'을 남기고 죽음을 맞이한 김의기 열사에게 빌렸다. 김의기 열사를 기리기 위해 제작되었지만, 개봉하자마자 16㎜ 필름을 압수당했고 이후에도 제대로 상영되기 어려웠다. 또한 영화는 1967년 신동엽 시인이 발표한 시 '껍데기는 가라'가 중요한 모티브로 사용되고 있다.

5·18 시민군 초점 '칸트씨의 발표회'
반대편 선 김의기에게 시선 '황무지'
김태영 감독 연출 1987·1988년 작품
개봉하자마자 필름 압수·상영 어려움

민주화운동 40주년, 2개 작품 특별전
영상자료원 온라인 사이트서도 공개


황무지(1988)_촬영현장서.김태영.감독
'황무지' 촬영현장의 김태영 감독 모습.
'황무지'의 주요 촬영지인 옥구 실버타운은 전북 군산에 있던 실제 기지촌이었고 주인공 의기가 일하는 '25시' 클럽 내부는 경기도 의정부에서 촬영했다고 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미군들도 당시 현역 군인들이며 의정부 미군부대 앞에서 촬영한 시위 장면도 나온다. 영화에서 폭행과 살인을 저지르는 미군 두 명의 이름이 '도널드'와 '라이 건'(Lie gun)인데, 이는 거짓말하는 미국 대통령 도널드 레이건을 상징한다. 충격적인 엔딩 신은 당시 천주교 신부의 인도로 해를 넘기기 전에 빠르게 속죄하라는 상징이기도 하다.

'칸트씨의 발표회'에 이어 '황무지'의 주인공을 맡은 배우 조선묵 외에도 서갑숙, 방은희, 전무송 같이 대중에게도 잘 알려진 배우들의 젊은 모습을 보는 것도 이채롭다. 또한 '쉬리'(강제규 감독), '공동경비구역 JSA'(박찬욱 감독), '실미도'(강우석 감독)의 촬영을 맡았던 김성복이 촬영감독을 맡았고 저 유명한 신중현의 장남이자 그룹 시나위의 기타리스트 신대철이 음악감독을 맡았다. '황무지'의 OST는 김종서의 목소리와 서태지의 베이스 연주로 시나위 4집 앨범 마지막에 수록되어 있으며, 이 두 영화의 각본은 1990년 지금은 없어진 예술기획에서 시나리오집으로 출간이 되기도 했다.

'칸트씨의 발표회'는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이런저런 자리에서 몇 번 공개된 적이 있지만, '황무지'는 무려 31년 만에 관객에게 공개되면서 재조명을 받고 있다.

시네광주.1980_포스터
'시네광주 1980' 포스터
두 영화 모두를 연출한 김태영 감독 역시 회한이 없을 수 없을 것이다. 1958년생인 김 감독은 서울예대 방송연예과를 졸업하고 영화과를 다니던 중 MBC에서 FD로 3년간 일하다 1987년 퇴사해 '칸트씨의 발표회'를 연출한다. 광주의 진실을 알고난 충격을 고스란히 담아 스스로 "타는 목마름으로 만들었다"고 밝혔다. 이듬해 이 작품이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청받으며 호평 받은 뒤 '황무지'를 연출한다. "(진압군) 병사들의 양심선언이 있었다면 우리나라가 이렇게까지 양분되진 않았을 것"이란 아쉬움이 아직도 있다고.

영화는 1988년 5월 광주에서 첫 공개하려고 했지만 당시 문화공보부와 광주시청의 상영 중단 압박 속에 투자사에 필름을 빼앗겼다. 닷새 뒤 서울 혜화동 상영에선 이 영화의 VHS 테이프마저 문공부에 압수됐다. 관객과 만난 건 2000년대 초 서울 아트시네마의 기획전에서 상영됐던 게 유일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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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감독·물레책방 대표
31년이라는 시간을 넘어 '황무지'는 5·18민주화운동 40주년 특별전의 일환으로 지난 21일 서울 마포구 영상자료원에서 상영되었다. 23일엔 '칸트씨의 발표회'와 함께 광주 아시아문화전당에서 상영됐다. 두 편 모두 다음 달 8일까지 영상자료원 사이트에서도 온라인으로 상영되고 있다. 또한 광주시와 서울시 공동 주최로 지난 21일부터 30일까지 개최되고 있는 '시네광주 1980'에서도 두 작품이 공개되고 있다. 코로나19 예방과 생활 속 거리두기 실천을 위해 네이버TV를 통해서도 볼 수 있다.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먼 길을 갈 뻔 했는데 오히려 전화위복이랄까. 모두 무료로 상영되니 이 기회에 가족·지인들과 함께 관람하고 5·18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것도 좋겠다.

이미 1997년 법정기념일로도 제정된 5·18이 무려 40년이나 지났음에도 여전히 이 비극을 부정하는 이들이 있다. 우리 사회를 민주화시키는데 결정적인 토대가 된 사건에 대한 역사인식의 문제를 넘어 민주주의의 핵심에 관한 문제로까지 연결된다. 이 세력들을 주요 동력으로 삼았던 한 정당의 원내대표가 최근 5·18을 폄훼해 공분을 일으킨 의원들의 문제적인 발언들에 사과하며 "5·18을 기리는 국민 보통의 시선과 마음가짐에 눈높이를 맞추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겠다"고 한 일은 얼마나 다행인가.

독립영화감독·물레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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