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타임] 문화부인가, 정치부인가

  • 노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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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6-01   |  발행일 2020-06-01 제26면   |  수정 20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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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진실 문화부기자

"국가는 국가에 유리한 예술만을 인정하고 그렇지 않은 예술은 무시하고 배제한다. 예술의 정신은 그야말로 자유에 있다."

"예술가의 정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권력에도 아첨하지 않는 정신이다."

일본 작가 마루야마 겐지의 책 '사는 것은 싸우는 것이다'에 나오는 문장들이다.

여든을 바라보는 작가는 세상 눈치보지 않고 국가와 정치인, 예술, 종교 등에 대해 거침없는 직언을 쏟아낸다. 진영·피아 구분도 없다. 2020년, 극심한 진영논리와 답답한 자기검열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꽤나 위안을 주는 책이다.

'예술의 정신은 자유'. 책에서 작가는 이렇게 정의한다. 그렇다면 예술 혹은 좀 더 넓은 개념인 문화는 얼마나 자유로운가.

문화계의 소프트웨어는 아직 자유를 추구하고 있을지 몰라도, 하드웨어는 그다지 자유롭지 못하다.

친소(親疏)나 종교연, 정치적 이해관계 등 온갖 인맥으로 만들어진 공고한 카르텔과 정치적 개입, 권력자 입맛에 맞는 코드 인사 등이 문화계의 자유를 잠식한 듯하다.

매번 반복되는 문화기관장 선임 논란만 봐도 그렇다.

문화예술을 발전시키고, 문화예술인들을 지원하고, 시민들의 문화예술 환경을 조성해야 할 문화계 수장들의 선임 과정이 너무나도 정치적이다.

대구 문화계에서는 지난해부터 굵직굵직한 문화기관들의 수장 인선이 이어졌다. 해당 기관장 인선 때마다 '내정설' '보은인사' 등 온갖 '설'이 잇따랐고, 일부는 '설'에 그쳤지만 일부는 실제로 그렇게 진행된 의혹이 짙다.

올해도 대구 문화계에 '큰 장'이 섰다. 대구문화예술회관이 최근 관장 인선을 마쳤으며, 대구문화재단과 수성아트피아는 각각 대표와 관장 인선을 앞두고 있다.

특히 상징성이 큰 대구문화재단 대표와 수성아트피아 관장 인선을 앞두고는 벌써부터 온갖 '설'들이 난무한다. '자가 발전'도 섞인 듯한 그런 '설'들을 듣노라면, 내가 지금 문화부 기자인지 정치부 기자인지 헷갈릴 정도다. 문화기관장 선임, 더 나아가 문화계 전반이 갈수록 정치화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물론 문화기관장이 문화예술계 전체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나라 '문화권력'의 탄생과 작동 구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한 예다.

정치에 잠식되고 있는 문화예술계는 어떻게 야성과 자유를 되찾을 수 있을까. 당장 정답을 찾기 어려울 땐 우선 원칙이나 양심 같은 것에 충실하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노진실 문화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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