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의사도 아픕니다

  • 노인호
  • |
  • 입력 2020-06-02 08:00  |  수정 2020-06-02 08:04  |  발행일 2020-06-02 제17면
이 상태로 가면 병의원 너무 어려우니
정상화를 위한 대안 필요 주장인데
배부른 집단 징징대다 제풀에 지쳐
그만둘 것이라고 생각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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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균 <늘시원한위대항 병원장〉

사람은 살면서 자기도 모르게 평판을 생각한다. 누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여태 자신이 살아온 인생역정을 돌이켜 보면 찬사를 받지는 못해도 욕먹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사는데 혹여 나를 오해나 다른 인식으로 나를 보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를 안고 살게 된다.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애써 외면하면서 말이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초기엔 너나 할 것 없이 허둥지둥하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이 난국을 극복하겠다는 마음뿐이었다. 그러다 진정국면에 접어들면서 그동안 미처 챙기지 못했던 많은 것이 보이기 시작했고 잘못 처리한 것은 반성하고 해결방안을 찾아야 했다. 그동안 쌓아 놓은 이미지가 너무나 중요했던지 대충 유야무야 넘어가려고 하는 것이 보였다. 주위의 과분한 칭찬에 춤만 춘 고래가 됐다. 칭찬에 도취해 정작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잊어버리고 만 것. 칭찬만 듣고 춤만 추는 고래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고래라는 말이 있다. 미숙한 일 처리에 대한 책망을 달게 받고 성숙한 고래가 되어야 함에도 그렇게 하는 게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주위 동료들도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미담을 이행하기 시작했고 우리 모두는 아파도 아프다는 말 못 하고 속으로만 끙끙거렸다.

칭찬을 들으면 뭔가 성과가 좋게 나타나고 책망을 듣거나 야단을 맞으면 기가 죽어 아무 성과도 내지 못한다는 착각을 빨리 누군가 나서서 깨트려야 했다. 그래서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의 아픔을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엔 정치인 흉내라도 내야 하나 싶어 대구시청 앞에서 머리를 밀었다. 이런 행위를 정치적 용어로는 삭발식이라고 했다. 그제야 의사회에서 부랴부랴 전부 몰려나와 의사도 많이 아프다는 사실을 성명으로 발표하게 됐다. 진실이 외부로 알려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대구시의 그 누구도 일언반구, 이 문제에 대해 공식적인 답이 없었다. 건강보험공단도 마찬가지였다. 배부른 돼지 집단인 의사들이 얼마 동안 징징거리다 제풀에 지쳐 그만둘 것이라는 생각을 했나 보다. 그래서 일인시위에 돌입했다. 매일 한 시간씩 시청과 건강보험공단을 돌면서 땡볕에 서 있었다. 이젠 누가 알아주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됐다. 내 행동에 대한 당위성이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너무나 무관심했기에 의아했다. 나만 어렵고 나만 문제의식을 가진 것일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돈을 달라고 떼를 쓰는 것도 아니고 단지 이 상태로 가면 병·의원이 너무나 어려우니 병·의원이 정상화될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하다는 것뿐인데, 이러다 병원 한두 군데가 폐업이라도 하게 되면 걷잡을 수 없는 더 큰 문제가 눈에 보이게 되는데도 돈 많이 버는 의사라는 인식 때문에 그 어떠한 주목도 받지 못하고 있다. 어쩌다 의사의 평판이 이 지경이 됐는지 모르겠다. 사비를 털어 호소문을 냈다. 엄살이 아니고 진짜 아프니 관심을 조금이라도 가져 달라고 말이다. 대구시와 건강보험공단, 그리고 의사회를 비난하고자 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나의 이러한 행동은 관심과 기대가 아직 있기 때문이다. 진짜 싫어하는 행위는 무시해버리고 관심을 꺼버리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 모두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면 해법은 오히려 쉬운 곳에서 찾을 수 있다.

병원 폐업이 목전이다. 수십 명의 직원은 묵묵히 환자만 기다린다. 곧 뿔뿔이 흩어져야 할지 몰라 불안해하는 초조함이 눈에 보인다. 누군가가 말했다. 여태 아무 소리 안 하고 있다가 갑자기 뒷북치니깐 당황스럽다고 말이다. 이제 더는 뒤에서 북이나 치는 삶을 살진 않겠다. 의사에 대한 제대로 된 평판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노성균 <늘시원한위대항 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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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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