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삼협(3協)'을 기리는 '안동 임란역사공원'에 부쳐

  • 이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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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6-03   |  발행일 2020-06-04 제25면   |  수정 2020-06-03
김도현
김도현안동 임란역사공원 무명의병추념비 자문위원·전 문화체육부 차관

경북 안동 서후면 작은 마을에 꽤 규모가 되는 시설이 완공단계에 있다. '임란역사문화기념공원'이다. 경북북부에 비슷한 시설이 꽤 있다. 어슷비슷한 또 하나의 시설 박제유물과 그렁그렁한 예식장고용주례사 같은 좋은 글귀모음 따위라면 이 핑핑 돌아가는 세상에 쓸모가 있을까? 과거만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시대정신에 응답하는 그런 시설이 될까?


16세기 동아시아최대의 전쟁이고 우리민족사상 가장 혹독한 재앙인 임란을 물리친 것이 바로 의병임을 분명히 하자는 것이란다. 임란은 의병 이순신 명나라원군이 물리친 것은 세계적으로 공인된 것이지만 이 인식은 아직 뚜렷하지 못하다. 의병은 전국에서 일어났지만 영남의병이 가장 성공했다. 이유는 이렇다. 3협(協)에 성공했다. 민과 관, 신분을 넘은 계층협력, 퇴계학파와 남명학파의 협력이다. 의병의 사회경제적 기반이 없지는 않았지만(이태진·'임진왜란극복의 사회적 동력'), 출발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선조수정실록'은 이렇게 기록했다.(선조 25년 6월1일) "제도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삼도의 장수와 관리가 모두 인심을 잃은데다가 군사와 식량을 징발하자 사람들이 모두 밉게 보아 적을 만나면 모두 패해 달아났다. 그러다가 도내 거족 명인이 유생과 함께 조정의 명을 받들어 창의하여 일어나자 듣는 사람들이 격동하여 원근에서 응모했다. 호남의 고경명 김천일 영남의 곽재우 정인홍 호서의 조헌이 먼저 일으켰다. 그러나 관군과 의병이 서로 갈등을 일으켰고 관군장수와 관리들 다수가 의병장과 화합하지 못했는데 초유사 김성일만은 요령 있게 잘 조화시켰기 때문에 영남의병이 그 덕분에 정중하게 대우를 받아 패하여 죽은 자가 적었다." 의병장 곽망우당과 감사 김수가 서로 사생결단 다투는 것을 초유사 김성일이 극적으로 화합시킨 것을 말한다. 호서의 조헌은 관과의 갈등으로 끝내 실패했다. 퇴계 제자인 김성일은 일찍이 남명 제자인 최영경의 신원에 앞장서서 영남 양대학파의 협력을 이루어 의병에 동원했다. 여기에 온갖 문란한 정치에 시달리던 양민 노비도 일시 원망을 떨치고 활 화살 창 칼 만들고 밥 짓고 옷 깁고 짐 지고 돌 날라 의병에 합세하여 계층협력을 이루었다. 1593년 1월 전국의병 2만2천명 중 김성일휘하의 영남의병이 1만5천명이었다.('선조실록' 선조 26년 1월11일) 


3협(協), 관민 학파 계층 협력, 바로 이 시대가 목마르게 요구하는 국민통합이 아닐까. 


이 공원엔 '무명 의병영웅 원군명나라군대 일본군희생자 추념비'가 세워진단다. 슬쩍 비문 몇 구절을 봤다. "신령이시어! 여기 하찮은 짧은 혀와 붓으로 아뢰는 기림 따위에 귀 기울이고 눈길 주지마소서.?/ 님들께서 임진난리 때 살아생전 흘린 땀과 죽음에 뿌린 피는 이미 말과 글 아득히 너머에 있나이다. / 님들, 우리할매 할배는 노비였고 양민이었고 선비였고 그 할배 할매는 임금이었고 귀족이었고 상민이었고 노비였나이다./ 님들은 눌리고 빼앗기고 차별과 설움 조세 부역에 못참을 것을 참고 죽을 것을 죽지 않고 살아왔지요. 난리 나자 노비문서를 불사르고 곳간도 털었지요./ 하지만 이빨에 물들인 도적떼가 몰려와 우리 산천 짓이기고 우리집 불태우고 조상묘 파헤치고 아녀자 짓밟자,/ 님들은 떨쳐 일어났나이다./... 다름을 넘어 손잡고 싸웠지요. 짐 지고 돌 나르고 활 화살 창 칼 만들고 옷 깁고 밥하고 부모 봉양하고 아이 낳고 병자 간호했지요./ 때로 군령세우기에 억울한 희생도 당했어요./ 역병 앓고 굶주렸지만 진주성싸움때는 장수는 앞장서고 목사는 이끌고 초유사감사는 어버이되어 보살펴주었어요. /모진 적의 창 칼 총에 다치고 죽고 코 귀 잘리고 잡혀가 일본에 서양에 종 노예로 팔리기도 했지요./ 원군으로 온 명나라군대 성근빗 참빗 소리 듣도록 작폐도 많았지만 산 설고 물 설은 만리타향에서 조선을 돕겠다고 다치고 죽어 고혼이 되었지요. / 아, 왜적우두머리 추괴(酋魁)의 야망과 탐욕에 내몰리어 님들과 싸운 일본 민초들도 죽고 다치고 굶주리고 병들어 삶을 마쳤으니 그 혼령들 또한 가엽고 덧없고, 바다 넘어 남은 처자식에 한 되기는 우리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신령이시어! 생전 모진 삶을 털고 하늘에서 넘치도록 복락을 누리소서./ 굽어 살피시어 저희에게 용기와 힘을 주셔 우리가 손잡고 함께 삶의 즐거움을 노래하는 세상 만들도록 도와주소서./ 중국의 민초들과도, 바다 넘어 일본의 민초들과도 어께 나란히 세상의 평화와 행복을 만들어 가도록 이끌어 주소서. / 이름 못 남긴 신령이시어! 이름 있고 없는 뭇 생명의 드높힘 받으소서. 이름 안 남긴 신령이시어! 탐욕 적괴들 이름을 천상천하에서 지우소서."


지난날 한 때 안동은 세계와 조선을 향한 문화발신(發信)기지였다. 모쪼록 또 하나의 그런 시설이 아닌 만들기에 참여한 이들의 영혼이 담긴, 오늘의 시대정신의 부름에 응답하도록 건설되고 운영되는 것이 위대한 민중영웅 의병의 혼을 기리는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김도현<안동 임란역사공원 무명의병추념비 자문위원·전 문화체육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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