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완 칼럼] 直而不肆 光而不燿(직이불사 광이불요)

  • 원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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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6-04   |  발행일 2020-06-04 제26면   |  수정 2020-06-04
도덕경 경구 숨은 뜻은 '절제'
총선 후 정치지형 1.5당 체제
巨與 전횡 욕구 커질 것
벌써 "상임위 독식" 으름장
민자·우리당 실패 반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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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군웅이 할거하고 권모와 살육이 난무했던 춘추전국시대. 춘추시대 초기 제후국이 140개국이나 됐고 기록에 남겨진 전쟁 횟수만 1천200여 회였다니 난장(亂場)을 짐작할 만하다. '춘추 5패'와 '전국 7웅' 탄생엔 또 얼마나 많은 희생과 살상이 따랐을까. 그 전란 속에 제자백가의 백화제방 시대가 열렸으니 사뭇 역설적이다. 공자·맹자의 유가, 노자·장자·열자의 도가, 한비자의 법가, 묵자의 묵가, 손자·오자의 병가…. 제자백가 중에서도 유가의 영향력이 압도적이었다. 사서오경이 유가에서 태생되고 완성됐다는 점도 유가의 넓이와 심연을 가늠케 하는 대목이다.

유가가 공맹사상으로 대변된다면 도가는 노장사상이다. 노자 도덕경과 유려한 문체의 장자 남화경이 도가의 양대 경전이다. '직이불사(直而不肆) 광이불요(光而不燿)'는 도덕경에 나오는 경구(警句)다. '곧으나 방자하지 않고 빛나되 눈부시게 하진 않는다'는 뜻 속에 숨은 화두는 '절제'다.

이 처세훈이 다시 생각난 건 거여(巨與)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177석을 포함해 범여권이 188석이다. 개헌 빼곤 다 가능하다. 예산·입법을 단독 처리할 수 있다. 공룡 여당은 권력을 절제할 수 있을까. 과거 경험칙으로만 판단하면 부정적이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218석의 거대 민자당이 탄생했고, 소위 '탄돌이'를 양산한 17대 총선에선 열린우리당이 152석을 획득했다. 하지만 민자당은 날치기 횡포로 민심을 잃었고, 우리당은 사학법·국가보안법 등 개혁 입법에 무리한 드라이브를 걸다 폐족으로 전락했다. 헌법에 보장된 개인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도 절제 속에 만발한다. 이웃의 안전을 배려하지 않는 자유는 방임이자 일종의 폭력이다. 공동체 정신을 훼손하는 방종이 자유로 윤색될 순 없다. 코로나19 사태에서 우리는 무절제의 폐해를 똑똑히 목도했다.

플라톤은 "우리 영혼은 욕망·기개·이성으로 3분돼 있다"며 "이성으로 욕망과 기개를 절제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하지만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 권력의 절제는 더더욱 어렵다. 영국 튜더 왕조 헨리 8세는 봉건 왕조와 절대권력의 상징이다. 절대권력은 그를 괴물로 만들었고 주변 인물을 비극으로 몰아넣었다. 왕비 앤 불린, 대법관 토마스 모어, 비서 크롬웰 등이 참수형을 당했고, 총리 울지 추기경도 반역죄를 뒤집어썼다. 다섯 번 결혼한 남자 헨리는 절제를 모르는 군주였다. 연산군 10년 때의 갑자사화는 궁중세력·사림파·훈구파의 대립과 알력, 폐비 윤씨의 죽음이란 서사(敍事)가 뒤얽혀 일어난 참화다. 만약 성종이 윤씨를 사사(賜死)하지 않았다면 역사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4·15 총선 후의 한국 정치지형은 양당체제가 아닌 1.5당 체제다. 야당이 지리멸렬한 일본이 딱 그렇다. 1.5당 체제에선 여당의 전횡 욕구가 커진다. 벌써 심상치 않다. "18개 상임위를 독식하겠다"며 으름장을 놓는가 하면,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난 한명숙 사건도 엎어버릴 기세다. 그래서 한화갑 전 의원이 "국회는 거여(巨與)였을 때 충돌했다"고 말했나 보다.

민주주의를 지탱시키는 요체는 권력의 분점과 절제다. 선한 의도라도 권력 남용은 법치를 파괴한다. 면역물질인 사이토카인도 너무 많이 분비되면 장기를 손상시킨다. 일본 사상가 미즈노 남보쿠는 저서 '절제의 성공학'에서 성공하고 싶으면 먹는 것부터 절제하라고 일갈했다. '원초적 본능'도 절제해야 하거늘 하물며 권력이야 오죽하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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