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매미나방

  • 이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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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6-06   |  발행일 2020-06-06 제23면   |  수정 2020-06-06

1970년대 우리나라 숲에 가장 큰 피해를 줬던 곤충은 송충이였다. 그것을 없애는데 온 국민이 나선 덕에 지금은 박멸되다시피 했지만 당시엔 워낙 많았다.

식물에 해를 끼치는 곤충 중 솔나방처럼 한 종류의 나뭇잎만 갉아 먹는 벌레가 여럿이다. 그중 벚나무모시나방과 자귀뭉뚝날개나방은 명칭에 나무 이름이 들어있다. 벚나무모시나방은 요즘 벚나무에 큰 피해를 입히고 있기 때문에 미운 놈이기에 틀림이 없지만 생김새가 너무 예쁘다. 애벌레는 몸 색깔이 노랗고 듬성듬성 검은 털이 나 있지만 다른 곤충 애벌레처럼 징그럽다는 생각을 들게 하지 않는다. 성충이 인견처럼 하얀 날개를 펄럭이며 나는 모습은 조지훈의 승무(僧舞)를 연상케 한다. 자귀뭉뚝날개나방은 자귀나뭇잎을 먹는다.

이름에 나무를 특정하는 말은 안 들어갔지만 낭만적인 이름을 가진 쌍줄푸른밤나방은 참나무류를, 이름과 모양이 섬뜩한 황다리독나방은 층층나무를 주식으로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곤충은 잡식성이다. 나무를 가리지 않고 다 먹는다. 매미나방이 그 대표다.

매미나방은 활엽수·침엽수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먹는다. 덩치가 크기 때문에 먹는 양도 많다. 암컷은 날개를 편 길이가 10㎝에 가깝다. 암컷 애벌레 한 마리가 먹는 양은 나뭇잎 1천800㎠다. 암컷 성충은 몸이 무거워 날지 못하는데, 수컷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활발하게 암컷을 찾아다닌다. 이 때문에 집시나방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교미한 암컷은 나무줄기에 알을 낳고 노란 털로 덮어준다. 줄기에 붙어 있는 알덩이 한 무더기에 500여 개의 알이 있는데 대부분은 겨울을 나면서 얼어 죽는다. 그러나 따뜻했던 지난겨울 대부분의 알이 월동에 성공한 것 같다. 산속은 가는 곳마다 애벌레 투성이다. 나무에 붙어 있는 애벌레는 번데기를 거쳐 이달 말쯤부터 나방이 되어 날아다닐 것이다. 흉측한 모습의 나방이 사방을 휘저을 것을 상상하니 끔찍스럽다.

전 국민이 송충이 잡기에 동원됐던 50년 전처럼 올겨울에는 매미나방 알 덩이 제거에 나서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하수 중부지역본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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