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영천 자양면 성곡리 산 78

  • 류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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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6-05   |  발행일 2020-06-05 제36면   |  수정 202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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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정씨 세장지 입구의 솔밭

영묘한 老松의 문 열고 들면 해사하게 맞이하는 오천정씨 가옥
계곡따라 오르는 길 입구 가문 역사 새겨진 한글 碑
영천호 향해 선 강호정, 다섯 형제 모여 산 오회당
풍경 바라보며 편히 쉬는 곳, 詩 '삼휴' 지은 삼휴정
노승이 효자 정윤량에게 점지해준 명당 '세장지'
80여기 문중 묘소 모인 하천묘역 후손들이 관리
적진으로 세번이나 함께 나선 주인·노비도 기려


영천댐 하류공원에서부터 길은 점점 높아졌다. 무성한 벚나무 이파리들 사이로 이따금 깊게 가라앉은 호수가 보였다. 그리고 제법 고지대에 다다랐다고 느끼는 순간 숲은 들이치듯 불쑥 나타났다. 지나치게 영묘한 모습이었다. 굴곡진 채로 비스듬히 솟구친 노송의 숲. 그들 하나하나는 수천 수백 년이 빚은 지팡이처럼 보였고, 그들이 일제히 꽝 하고 지축을 울려야만 그 숲으로의 진입이 허락될 것 같았다. 그러한 의지적인 몸짓은 너무도 단호해서 창백하게 보일 정도였다. 도로에 면해 과하지도 박하지도 않게 터놓은 주차장에서 잠시 최근에 뭔가 잘못한 것은 없는지 곰곰이 생각하다 흘끔 옆을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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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 호수 정세아가 임란 후 여생을 보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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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정씨 문중 묘재인 하천재. 뒤편에 정세아의 신도비각이 위치한다.

◆오천정씨 하천세적지

노송의 숲 좌측에는 물 마른 계곡을 사이에 두고 이파리들 밝게 찰랑이는 활엽수의 숲이 있다. 그리고 그 해사한 빛 속에 오래된 집들이 모여 있다. 영천댐 수몰지에 있었던 오천정씨(烏川鄭氏) 가문의 문화재 가옥들이다. 영천지역의 영일정씨(迎日鄭氏)를 오천정씨라 하는데, 호수(湖수) 정세아(鄭世雅)의 조부인 선무랑(宣撫郞) 정차근(鄭次謹)의 후손들을 말한다. 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 입구 둔덕에 '오천정씨하천세적지비'(烏川鄭氏夏泉世蹟之地)가 서 있다. 비에는 가문의 역사가 새겨져 있는데 한글이라 기쁘다. 비문에 따르면 정차근이 이곳에 들어온 이후 주자(朱子)의 서재인 자양서실(紫陽書室)의 이름을 따 학당을 자양이라 불렀고 그것이 현재 자양면의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또한 정몽주를 모신 임고서원을 창건하는데 주축이 된 이도 바로 그였다.

비석 뒤편에 정세아의 정자인 강호정(江湖亭)이 있다. 정세아는 임진왜란 때 영천성 수복과 경주성 전투에 참여해 많은 공을 세운 의병장이다. 전쟁 후 나라에서 수차례 벼슬을 내렸으나 나가지 않다가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의 청을 이기지 못하고 황산도찰방을 잠시 지냈다.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강호정사를 짓고 가르치고 공부하다 여생을 마쳤다. 이후 그는 영조 때 병조판서에 추증되었고 정조 때는 강의(剛義)라는 시호를 받았다. 정자에서 영천호가 내려다보인다. 옛 풍광은 상상되지 않지만 오리 선생도 이곳에 올랐다 하니 어쩐지 마음이 울렁거린다.

강호정만이 영천호를 향해 남향으로 서 있다. 나머지는 모두 계곡을 따라 동향으로 자리한다. 첫 번째는 하천재(夏泉齋) 부(附) 비각(碑閣)이다. 하천재는 묘재(墓齋)이며 비각에는 정세아의 신도비가 모셔져 있다. 비각으로 오르는 계단 아래 향나무가 근사하다. 두 번째는 오회공종택(五懷公宗宅)이다. 정세아의 넷째아들 정수번(鄭守藩)이 그의 셋째아들 삼휴(三休) 정호신(鄭好信)의 분가주택으로 광해군 때 지은 것이다. 길게 뻗은 담장 위로 '삼휴고택'이라 적힌 현판이 보인다. 종택과 이어지는 담장 안에는 오회당(五懷堂)이 자리한다. 정호신의 손자인 정석현(鄭碩玄)이 만년에 이 집을 짓고 다섯 형제들과 모여 지내며 오회당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다섯을 품은 집'이 아주 소박하다.

직선으로 오르던 길이 굽어지며 담장 없이 계곡으로 화계를 낸 건물들이 나타난다. 사의당(四宜堂)이다. 영조 때의 정중호(鄭重鎬), 중기(重岐), 중범(重範), 중락(重洛) 형제가 우의를 다지고 인재를 기르기 위해 지은 집이라 한다. 사랑채가 사의당, 안채는 수의헌(守宜軒), 그리고 고방채와 문간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길 끝에는 정호신의 정자인 삼휴정(三休亭)이 자리한다. 그는 할아버지 정세아가 살았던 곳에 이 정자를 짓고 풍경을 바라보며 '삼휴'라는 시를 지었다고 한다. '좋은 봄날 꽃을 즐기다가 꽃이 지면 쉬고/ 맑게 갠 밤 달을 마주 보다 달이 지면 쉬고/ 한가한 달에 술을 얻어 마시다가 술이 떨어지면 쉬노라.' 100m가 조금 넘을까, 강호정에서 삼휴정까지. 내내 생전 처음 듣는 자지러지는 새소리가 온 숲에, 온 길에, 온 집들에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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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회공종택과 오회당이 긴 담장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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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의당. 영조때의 정중호·중기·중범·중락 4형제의 집이다.

◆오천정씨 세장지

길은 삼휴정에서 끝나지만 계곡은 더욱 멀리 나아간다. 그리고 그 계곡의 사면에도 꼿꼿하거나 휘었거나 기울어진 소나무들이 도열해 있다. 새들이 지저귀고 토끼풀꽃과 흰나비가 인정 없이 연애를 하는 동안 계곡의 솔숲 너머는 눈부시게 밝아졌다. 때때로 힐끔댈 때마다 하얀 석물들과 부드러운 봉분들이 보였다. 그저 오천정씨 문중의 묘소이겠거니 했다. 하천재 앞에서 계곡을 가로질러 저편으로 건너간다. 노송의 숲을 거치지 않은 영악함이었지만 결과는 겉약은 짓이었다.

드리워진 베일을 걷듯 숲을 헤치고 들어와야 한다. 발소리를 삼키는 숲의 붉은 땅을 지나 활짝 열린 도래솔밭에 다다라야 한다. 그래야 이세계설(二世界說)을 와르르 무너뜨리는 호접몽의 세계에 정면으로 들어설 수 있다. 저편에서는 감히 가늠치 못했던 푸른 땅. 보현산 줄기가 남쪽으로 뻗어오다가 기룡산을 솟구쳐 놓고 다시 남쪽으로 달려 고깔산을 세웠다가 단박에 누운 광활한 땅, 성곡리 하천(夏泉). 이곳은 설학대사라는 노승이 정차근의 아들인 효자 정윤량(鄭允良)에게 점지해 주었다는 명당으로 오천정씨 문중에서 대대로 묘소를 쓰는 세장지(世葬地)다. 정차근과 정세아의 묘 등 80여 기의 묘소가 모여 있는 이곳을 하천묘역(夏泉墓域)이라고 하며 후손들로 이루어진 하천종약회(夏泉宗約會)가 이 일대를 관리한다.

가장 위에 정세아의 묘가 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정세아의 장자인 백암(栢巖) 정의번(鄭宜藩)의 묘가 있다. 의번은 임진왜란 경주성 전투에 아버지와 함께 참전했다. 적에게 포위된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의번은 세 번 적진으로 향했다. 종 억수(億壽)가 그와 함께였다. 마지막에 그는 억수에게 말했다. 너는 가거라. 그러자 억수는 울며 '임금과 신하, 아버지와 아들, 주인과 노비는 마찬가지'라 하였다. 의번과 억수는 경주성에서 전사했다. 시신은 찾지 못했다. 그의 죽음을 애통해하는 이들의 시와 그의 의관을 모아 장사를 지냈으니 그의 무덤에는 시총(詩塚)이라 새겨져 있다. 그 옆에는 시신 없는 억수의 무덤도 함께 있다. 시가 되어 묻힌 이의 무덤과 그와 함께 기억되는 이의 무덤이 나란하다. 의번의 비문은 채제공의 스승인 약산(藥山) 오광운(吳光運)이 썼다. '그 사람과 시(詩)는 끝내 오래되어도 썩어버리지 않을 것이니 이 무덤이 얼마나 위대하겠는가… 시로써 장사하니 혼을 장사하는 것 같도다.' 아름다운 땅에 아름다운 역사가 흐르니 늦봄의 더위 속을 꿈처럼 나는 듯하다.


■ 여행정보

대구~포항고속도로 북영천IC에서 내려 신호교차로에서 좌회전해 영천댐 이정표를 따른다. 신호리~죽곡리~선원리를 거쳐 평천리에서 69번 지방도 포은로를 타고 가면 영천댐 하류 공원을 지나 영천댐 북쪽 자양면 소재지에 이른다. 번화가가 나타나기 직전 왼편에 오천정씨 가문의 문화재 안내판과 솔숲이 나타난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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