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주디' (루퍼트 굴드·2019·미국)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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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6-05   |  발행일 2020-06-05 제39면   |  수정 2020-06-05
영원한 도로시의 슬픈 이야기

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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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주디'를 보면 마음이 아프다. 1939년에 개봉된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 역으로 나온 배우 주디 갈란드의 비극적인 삶을 담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오즈의 마법사' 오디션을 보는 열일곱 살의 주디와 생애 마지막 콘서트를 펼치는 마흔 일곱의 주디를 번갈아 보여준다. 기대가 너무 컸기 때문일까.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주디 갈란드의 전반적인 삶을 가늠하기엔 다소 부족한, 죽기 6개월 전의 모습을 주로 다루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이 든 주디 갈란드가 '오버 더 레인보우'를 부르는 한 장면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인, 잊을 수 없는 영화다. '오즈의 마법사'를 처음 봤을 때 주디 갈란드의 깊고 풍부한 연기 때문에 놀랐다. 겨우 열일곱밖에 안 된 소녀가 마치 삶의 희로애락을 다 아는 나이 든 사람처럼 풍부한 표정으로 노래를 하고 연기를 했다. '도로시=주디 갈란드'라는 공식이 생길 만한 명연기였다. 그 뒤 또 하나 놀랐던 것은 그녀의 불행한 삶이었다. 인권에 대한 개념이 없었던 1930년대, 프란시스 에셀 검(주디 갈란드의 본명)은 MGM에 소속되면서 쉼 없이 일해야 했다. 할리우드는 그녀에게 각성제와 수면제를 번갈아 먹였다. 다이어트 때문에 수프 한 그릇과 블랙커피 한 잔이 하루의 식사였고, 끊임없이 담배를 피우도록 했다. 스타를 만들겠다는 욕심으로 가득한 엄마는 그녀를 더욱 궁지로 몰아넣었다. 역할을 따내기 위해 성 상납까지 시켰던 것이다. 무명의 배우가 주연이 되자 동료 배우들은 그녀를 냉대했다. 스타가 되었지만 최고의 미녀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에바 가드너 등과 비교 당하며 '미운 오리 새끼'로 불렸다. 평생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리며, 약물과 알코올에 중독된 인생이었다. 네 번의 이혼과 다섯 번의 결혼은 짧은 행복과 긴 불행의 상징이다.

르네 젤위거의 명연기로 펼쳐진 영화 속 장면들이 떠오른다. 방 한 칸 없는 빈털터리, 약과 술에 찌들어 공연은 펑크 내기 일쑤인 퇴물 스타, 돈 때문에 억지로 공연을 하지만 무대에서만큼은 눈부시게 빛나고, 끝나면 다시 한없이 무기력해지는 모습…. 그렇게 생애 마지막 콘서트를 펼치던 모습이 뛰어난 연기와 노래로 펼쳐진다. 하지만 한편으로 아이들을 극진히 사랑하는 엄마로서의 모습, 반짝이는 눈물과 함께 '오버 더 레인보우'를 부르는 모습은 절망 속에서 가느다란 한 줄기 빛을 노래하는 것 같았다. 그녀의 삶이 마냥 행복했더라면 그 노래가 그렇게 절절하게 다가왔을까. 상처투성이의 몸이지만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어딘가 마음 한쪽에 희망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닌지. "주디 갈란드는 자신을 이겨냈다"라고 한 르네 젤위거의 표현이 납득이 되는 이유다. 르네는 주디를 향해 "순수한 천재성과 타고난 재능은 100만년에 한번 나오는 것"이라는 찬사를 보낸다. 그만큼 주디의 재능은 뛰어났다. 그러나 재능은 독이 되어 그녀를 갉아먹고 평생을 신음하도록 했다. 그녀를 둘러싼 세상은 그토록 잔인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런 생각을 해본다. 그녀는 좀 더 자신을 사랑할 수 없었을까. 말하자면 자존감 문제 말이다.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외모 콤플렉스와 무대를 향한 두려움, 관계에의 집착 등은 낮은 자존감의 전형을 보여준다. 비극적인 그녀의 삶을 안타까워하며, 오프라 윈프리(역시 수많은 고난을 겪어온)의 한마디를 기억해본다. "나의 행복이나 불행이 다른 사람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시간 낭비다. 우리는 반드시 용기를 내어 타인에게서 받지 못한 사랑을 자신에게 주어야 한다."

시인·심리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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