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에서는 한인단체가 평화 시위 주도…귀하지 않은 생명이 있을까, 하루빨리 안정되길"

  • 전영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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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6-10   |  발행일 2020-06-10 제12면   |  수정 2020-06-10
■ 애틀랜타에서 보내 온 편지
"불똥 어디로 튈지 몰라 불안
자유롭게 숨쉴 수 있는 날 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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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애틀랜타 도심에서 열린 시위현장을 보도한 FOX5의 뉴스 화면.

흑인 조지 플로이드의 목을 경찰이 무릎으로 눌러 숨지게 한 사건 이후 미국 언론은 연일 인종 차별과 관련된 시위를 보도하고 있다. 사건이 일어났던 미네소타에 거주하는 필자의 페이스북 친구는 도시 곳곳이 시뻘건 불길 속에 있는 사진과 경찰의 강제 진압 모습들을 번갈아 올리며 "미국은 지금 내전 중에 있다" "지옥 같다"고 했다.

필자가 사는 애틀랜타에서는 시위대의 일부가 CNN방송국의 유리문을 부수며 경찰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 실시간 뉴스로 보도되기도 했다.

최근 필자를 포함해 애틀랜타에 사는 교민 7명이 모였다. 팬데믹 상황에서 각자의 경험들을 주고받았다. 소독제를 어떻게 구했고, 마스크는 어떤 상품이 좋은지 등 정보를 교환했다. 가을에 학교가 문을 열더라도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겠다는 교민도 있었다. 이야기 끝에 시위 이야기가 나왔다. 모인 사람들 대부분이 1992년 LA 폭동 상황을 떠올리며 걱정을 했다.

그날 저녁 애틀랜타 시장이 TV에 나와서 했던 말이 인상적이다.

"나는 네 명의 흑인 자녀를 둔 엄마고, 이 도시의 시장입니다. 집으로 돌아가세요. 킹 박사가 암살됐을 때도 우리 도시는 이러지 않았습니다. 나는 이 도시에서 나고 자란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애틀랜타를 아낀다면 집으로 돌아가세요."

3년 전 필자는 애틀랜타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보다 평화적인 촛불시위를 더 의미 있게 보도하는 미국 언론을 봤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에서, 작지만 큰 대한민국의 국민인 것이 자랑스러웠다.

지금 미국에서 촛불은 보이지 않는다. 시위대 중 일부는 인종차별과 무관한 상가를 부수고 폭력과 약탈, 방화를 저지르고 있다. 시위대를 향한 경찰의 폭력도 보도되고 있다.

현지 한인들은 지난 2~3개월간 코로나19 감염에 대한 공포와 함께 아시안을 바이러스로 보는 편견 때문에 힘들게 보냈다. 이제는 성난 폭도들의 불똥이 어디로 튈지 걱정하고 있다. 조지 플로이드가 그랬던 것처럼 "숨을 쉴 수 없는" 상황에 놓인 것만 같다.

다행히도 긍정적인 소식들이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다. 몇몇 도시에서는 경찰들이 강제진압 대신 시위에 참여함으로써 평화적인 시위를 이끌어냈다고 한다. LA에서는 한인단체가 평화적인 시위를 주도해 평소 이기적이고 돈밖에 모른다고 생각했던 한인에 대한 편견을 바꿀 수 있었다는 말도 들려온다.

또 다른 도시에서는 흑인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종이 모여 경찰의 강압적 행위에 반대하는 평화적 시위를 보여줘 많은 사람의 공감을 이끌어냈다는 뉴스도 있다.

내가 사는 애틀랜타에서는 시장의 리더십이 칭찬을 받고 있고, 시위대는 한결 안정되어 가는 모습이다. 귀하지 않은 생명이 있을까. 안타깝게 죽어간 한 사람의 귀한 생명이, 이 나라 이 사회에 좋은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빈다. 자유롭게 숨 쉴 수 있는 시간이 오기를 희망한다. 글·사진=미국 애틀랜타에서

전영혜 시민기자 yhjun8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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