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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광장] 그대가 단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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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6-19   |  발행일 2020-06-19 제23면   |  수정 2020-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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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현 변호사

권한 남용의 본질은 합리적 이유가 없는 차별이다.

초등학교 시절 유난히 발표하는 걸 좋아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번쩍번쩍 손을 들었고 지목되지 않으면 실망했다. 다른 누군가가 특별히 많은 기회를 가질 때에는 억울하고 분했다. 교사의 편애가 있었다 생각했다.

누구나 그렇듯 살면서 가장 분노하는 지점은 별 이유없이 다른 취급, '차별'을 받을 때다. 이유는 차별이란 것이 인격적 모멸감을 주는 동시에 차별하는 주체의 만용에 대한 분노를 던져주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대통령 탄핵이 입시부정으로 시작해서 문화계 블랙리스트로 이어지다 경영권 승계의 대가인 뇌물에서 정점을 찍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 미국에서 비무장 상태의 흑인 남성이 경찰의 무릎 밑에 8분 동안 깔려 있다가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그는 숨을 쉴 수 없다고 호소했다고 한다. 미국 사회에서 수십 년간 반복되어 온 흑인에 대한 과잉진압 사례가 또 발생한 것이다. 인종 문제는 절대적 평등이 요구되는 영역이다. 정말 필요적 목적을 위한 최소한의 차별만 인정된다. 지금 전 세계는 조지 플로이드가 느꼈을 모멸감과 일부 백인 기득권층의 만용에 분노하고 있다. 플로이드 문제의 본질은 차별과 트럼프 정부의 권한 남용 두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무력에 의한 탄압, 공권력에 의한 살인은 없다. 적어도 그런 점에서는 평화롭다. 그러나 제도권의 파행, 정치권의 아슬아슬한 설전, 미디어에서 나오는 소음 같은 논평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대립의 본질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다름이다. 이념의 차이에 따른 갈등의 단면인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나타나고 있는 갈등은 정치적 구도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정치라는 게 권력 창출의 과정 아니었나. 권력을 잡은 쪽의 다른 이념을 가진 쪽에 대한 견제는 차별, '권한 남용'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여권에서 자칫 위험할 수 있는 견제 흐름이 보였다. 문제성이 의심되는 두 비례대표 당선자를 두고 한 사람은 '부동산 투기 의혹자', 한 사람은 '과잉 보도의 피해자'가 되었다. 차이는 '원래 우리편'이 누구냐에 있었고, 공격은 우리와는 '다른' 언론을 향했다. 권력을 쥔 쪽이 본격적인 견제를 작정하면 이는 차별로 연결된다.

이후 지난해 공수처 설치와 관련해 기권표를 던진 비문계열 전 국회의원에 대한 징계가 있었다. 징계 이유는 솔직했지만 별 이유는 없었다. 결국 우리와 다르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만고불변의 진영논리 앞에 헌법상 원칙 따위는 하위 규정에 불과했다. 소신파가 되겠다던 한 초선 의원은 아예 무소속으로 가라고 하며 추임새를 넣어주었다.

법사위원장 자리를 놓고 으름장을 놓았던 것도 결국 우리와 그들은 다르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177석이라는 숫자가 지극히 크기 때문에 과거와 다르다는 것이 합리적 이유가 있는 걸까. 결론은 의회 권력의 남용으로 이어졌다.

플로이드 사건이 '인종 차별' '사망'이라는 점에서 우리가 가지는 갈등의 문제보다 더 근본적이고 더 극악무도한 것은 맞다. 그러나 초등학교 시절 교사에게 느꼈던 감정과 같이 차별에 대한 분노는 인간의 본성이다. 더구나 그것이 권력과 연결되는 부분이라면 지난 탄핵에서 반면교사해야 할 부분이 있지 않을까. 평화로운 세상을 살고 싶다.
전지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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