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석의 電影雜感 2.0] '언택트 사회' 한국영화의 고민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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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6-19   |  발행일 2020-06-19 제39면   |  수정 2020-06-19
극장 관객, 넷플릭스로 이동…OTT 플랫폼 가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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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의 시간(윤성현 연출)' 포스터.

#1 상반기 기대작 '사냥의 시간' 개봉 진통
코로나 사태 장기화, 스크린에서 온라인 상영 전환
해외배급사와 상영금지가처분 우여곡절 끝에 공개


장면 하나. 지난 4월23일 '사냥의 시간'이 공개되었다. 윤성현 감독의 차기작이기도 한 '사냥의 시간'은 2020년 상반기 한국영화 최대 기대작이었다. 장편 데뷔작 '파수꾼'을 통해 한껏 주목을 받았던 젊은 독립영화감독이 9년 만에 내놓은 신작에 현재 한국영화계에서 가장 촉망받는 젊은 배우들이 다수 출연했기 때문이었다.

4명의 주연배우 모두 독립영화로 이력을 시작해 상업영화에서도 관객의 이목을 집중케 했다.(배우 이제훈과 박정민은 '파수꾼'으로, 배우 안재홍은 '족구왕'으로, 배우 최우식은 '거인'으로 호평 받았다). 지난 2월26일 개봉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에 들어가면서 배급사인 리틀빅픽쳐스는 극장 개봉을 포기하고 4월10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하기로 발표했다. 그러자 해외 판매를 담당한 콘텐츠판다가 "'사냥의 시간'의 넷플릭스 독점 판매는 자사 및 선판매한 해외 배급사들과도 협의되지 않은 리틀빅픽쳐스의 이중계약으로 법적 대응할 것이며, 세계 시장에서 한국 영화에 대한 신뢰도에 해를 끼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법원에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 이후 콘텐츠판다 측이 승소하면서 예정돼 있던 4월10일 공개가 보류되다 양측이 합의에 들어가면서 우여곡절 끝에 (개봉이 아니라) 공개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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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들의 피켓 시위 모습.

#2 영화인 356명, 영진위 코로나 정책에 성명
제작·개봉 등 분야별 특별지원 사업 대책 시행
비정규 프리랜서·중소 업체는 소외…지원 촉구

장면 둘. 지난 5월19일 영화인 356명은 '영화진흥위원회 코로나19 정책에 대한 범영화인의 요구'라는 성명을 내고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앞서 지난달 영진위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협의를 통해 한시적으로 연간 540억원 수준인 영화발전기금 부과금의 90%를 감면하고 고용노동부에 영화산업이 특별고용지원업종에 지정되도록 신청을 주선했다. 또한 올해 기존 사업비(889억원)에 추가로 17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이 액수는 영진위의 기존 사업예산을 제외하고 영화발전기금에서 추가 편성할 수 있는 최대 금액으로 코로나19 사태 극복을 위한 한국 영화 제작·개봉 활성화 특별 지원, 현장 영화인 특별 직업훈련 지원, 중소 영화관 특별 기획전 지원, 영화 관람 활성화 지원 같이 분야별 특별 지원 사업을 시행하기로 했다. 영진위가 마련한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에 따른 대책은 곧 비정규 프리랜서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이 되기엔 미흡하다는 지적이 이어지면서 성명 발표까지 이어진 것이다. 성명에 함께한 영화인들은 "영진위는 구조보다는 사람, 그것도 창작자와 제작 인력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나 관객 할인권 지원을 위해 90억원을 조성하는 등 다소 탁상공론적 성격의 지원금 구성이 눈에 띈다"고 비판하며 "코로나19 긴급지원 추경예산이 영화 중소업체, 프리랜서 영화인에 집중하고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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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 포스터.

#3 전주국제영화제 첫 온라인 상영
예매 경쟁 없이 원하는 시간대 관람 가능성 제시
오프라인 비해 수익 어려움, 필름마켓 역할 한계

장면 셋. 지난 6일 전주국제영화제가 폐막했다. 올해로 21회를 맞는 이 영화제는 국내서 열리는 국제영화제로는 최초로 온라인 상영으로 진행되었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이미 한 차례 연기하기도 했던 영화제는 심사 상영, 온라인 상영, 장기 상영회로 개최 방향을 변경해 5월28일 개막하면서 영화관이 아닌 OTT 플랫폼을 통해 관객을 만났다. 6월6일 자정까지 진행된 온라인 상영에는 영화제 공식 상영작 180편 가운데 최종적으로 97편이 참여해 열흘 동안 총 7천48건의 유료 결제가 이뤄졌다. 수익을 거두기 어려워 기피되는 온라인 상영 방식의 영화제에 일정 수준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은 사실이지만 오프라인 상영 방식의 영화제에 비한다면 여전히 적은 수준이다. 지난해 열린 20회에 참석한 관객 수는 총 8만5천900여 명으로 매진율도 55%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단순 관객 수만 비교하더라도 수익이 몇 배 이상 차이가 나는 것이다. 온라인으로만 영화가 공개됐기 때문에 영화제의 가장 큰 기능 중 하나인 '필름 마켓'의 역할 역시 수행하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오프라인 영화제에서 늘 벌어지는 예매 경쟁 없이 관객이 원하는 영화를 원하는 시간대에 관람할 수 있다는 건 온라인 영화제의 장점이라 할 만하다. 지난해에는 기대작들이 예매가 시작되자마자 매진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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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영화관.

이 모든 게 코로나19 사태 때문이다. 한때 확진자 수가 주는 것을 보며 희망을 갖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서울 이태원 클럽발(發) 확진자가 증가하면서 생활 속 거리 두기가 사회적 거리 두기로 전환이 되는 것을 보면서 다시 접었다. 아무리 K-방역 운운해도 지금으로선 백신이 나오기 전까지 장기화 국면으로 갈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어디 아닌 분야가 있겠냐마는 영화계는 그야말로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았다. 1천만 관객 영화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면서 사이즈가 큰 대작 중심으로 영화계가 재편되면서 안정적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영화인들은 이런 대작들에 참여한 소수의 영화인들이 전부다. '20대 80' 법칙이 예외 없이 영화계에도 적용이 된 셈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영진위가 내놓은 정책 역시 이 20에 집중돼 있다. 최근 영진위가 영화계를 살린다는 목적으로 진행 중인 '극장에서 다시, 봄' 캠페인만 봐도 그렇다. 지난 4일부터 3주 동안 실시한 이 캠페인은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상영하는 영화 한 편당 6천원 할인권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코로나19가 종식되지 않고 이번처럼 언제든 다시 확진자가 증가할 수 있는 상황에서 관객을 영화관으로 유도하도록 하는 정책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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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우석 (독립영화감독·물레책방 대표)

이태원 클럽발이 아니라 영화관발 집단 감염 발생 사태가 속출한다면 어쩔 것인가. 이런 논란을 부르는 캠페인보다 영화인이나 제작사에 직접 예산을 지원하는 게 좀 더 효과적일 것이란 지적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영화가 개봉을 해도 수익을 내지 못하거나 제작비를 회수할 수 없는 상황이 오면 '사냥의 시간'처럼 플랫폼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전주국제영화제에 이어 7월9일 개막 예정인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역시 온라인 상영을 결정했다고 한다. 코로나19와 언택트(Untact·비접촉)의 시대, 위기에 빠진 한국 영화를 근심 어린 눈으로 지켜본다.

독립영화감독·물레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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