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꾼 이희문 "나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퍼포머"

  • 입력 2020-06-22 07:08
재즈밴드 프렐류드와 '한국남자 2집' 발매

경기 소리꾼 이희문(45)은 국내 국악계에서 독특한 지위를 점하고 있는 뮤지션이다. 경기소리 보유자이면서 장르를 넘나드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팝, 록, EDM, 재즈 등 다양한 장르의 대중음악을 아우르는 소리꾼이다. 음악적으로만 협업하는 것도 아니다. 한복을 입고 갓을 쓰는 대신 짙은 화장과 가발, 중성적인 복장과 파격적인 퍼포먼스로 주목받고 있다. 최근 국악과 대중음악의 콜라보레이션(콜라보·협업)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데, 그는 그런 조류의 핵심에 있는 소리꾼이다.


"댄스 가수라고 할까요? (웃음). 저는 무대를 즐기는 퍼포머예요. 소리도, 노래도, 의상도, 저의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저는 무대에서 제 이야기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사람입니다."

4인조 재즈밴드 프렐류드와 함께 '한국남자 2집'을 지난 19일 발매한 이희문을 최근 서울 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한국남자 1집에서는 경서도 민요를 재즈 문법으로 재해석하고 전통성악과 서양의 기악을 융합시키는 작업을 선보였다면 2집에서는 잡가와 비밥을 뒤섞었다.


잡가란 조선 말기에 저잣거리에서 유행했던 음악이다. 마포 나루처럼 상업이 발달한 곳에서 상인들을 위해 부르던 음악이다. 민요가 후렴구가 반복되는 친숙한 노래인 반면, 잡가는 소리꾼이 자신의 소리를 자랑하기 위해서 다양한 기교를 섞어 부르던 매우 테크니컬한 음악이다.
그런 점에서 비밥과 비슷하다. 비밥은 자유분방하면서도 빠르고 격렬하며 화성이 복잡한 즉흥연주가 중심인 재즈의 한 종류다. 탁월한 기교를 선보였던 찰리 파커, 디지 길레스피가 비밥의 대표 주자다. 


"잡가는 템포가 노래하는 사람 마음대로입니다. 굉장히 불규칙하죠. 연주하는 분이 노래를 잘 알아야 맞출 수 있습니다. 프렐류드가 고생했죠. 하지만 연주자들과 활발하게 교감해야 했기에 그만큼 더 재미있기도 했습니다."

2집 앨범에는 '선유가' '제비가' '국문뒷풀이' '유산가' '금강산타령' 등 9곡이 수록됐다. 재즈는 정통적인 비밥이나 이를 계승한 하드밥 스타일로 연주된다. 격렬한 연주 뒤에 굵직한 재즈 보컬의 소리를 기대할 때쯤 이희문의 가느다랗고 여리지만, 남성적인 힘을 잃지 않는 소리가 이어진다.


이희문은 소리꾼으로서는 다소 늦은 27세 때 소리를 배웠다. 어머니(고주랑)는 이미 경기소리로 유명한 명창이었고, 스승인 이춘희 명창도 여성이었다. 그의 발성에 여성적인 영향이 강하게 묻어나는 이유다. 


"경기소리는 여성들이 주류입니다. 그래서 남자들의 소리에 대한 갈증이 늘 있었어요. 2017년 박상옥 선생님과 '사계축 공연'을 같이 했는데, 그때 그분의 소리를 귀동냥하고, 선생님의 에티튜드를 많이 배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제 스타일을 좀 더 찾게 됐습니다. 그 이후부터는 더 제 마음대로 부르게 됐죠."(웃음) 


비주얼에 신경을 쓰고, 머리를 땋고, 각종 장르를 결합하는 그의 독특한 스타일이 갖춰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런 시간을 함께한 세 명의 어머니가 있다고 그는 말한다. 생물학적 어머니인 고주랑 명창과 소리를 가르쳐준 어머니 이춘희 명창, 그리고 정신적인 어머니 안무가 안은미다.


"공연하다 보니 한계에 부딪히게 됐어요. 2013년 무렵 안 선생님을 7년 만에 다시 찾아뵙고 조언을 들었습니다. '어중간해선 절대 관객에게 임팩트를 줄 수 없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바가 있었어요. 그 후로 계속 교류하며 지도받고 있지요."

그는 이제 인생 3막을 시작한다고 한다. 1막에선 학생 신분으로, 2막에선 소리꾼이자 퍼포머로 자리매김했다면 3막에서는 영상 연출 등 다른 장르로의 변신도 고려해보고 있다고 했다. 이는 감염병 시대가 도래하면서 무대에 서기 어려운 상황도 가정한 계획이다. 다만 무슨 일을 하건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한다는 건 변함이 없다고 했다. 


"비주얼이나 소리는 저 자신을 보여주는 수단일 뿐이지요. 제가 하는 소리나 몸짓 이런 것 하나하나에 스토리가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는 것이 많지 않아서 제 이야기밖에 할 수 없어요. 영상 연출을 한다고 해도 그 형식만 변하는 것이죠. 장르가 달라진다고 해도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제가 하는 모든 것은 그저 이희문의 이야기일 뿐이죠."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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