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방가사 읽으면 몸과 마음이 편해져요" 우리것을 지키는 어르신들

  • 조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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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6-24   |  발행일 2020-06-24 제12면   |  수정 2020-06-24
권숙희 내방가사 문학회장
"국학진흥원, 세계유산 추진
세계 유일의 여성 집단 문학
젊은층 관심 가져주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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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숙희 내방가사 문학회장이 두루마리에 적힌 내방가사를 읽고 있다.

"두루마리 풀어가며 내방가사를 읽는 어머니가 답답해 보였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익숙한 운율을 가진 내방가사가 내 몸과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권숙희(58·대구 남구 봉덕동)씨는 시인이자 음식디미방 연구회 전문 강사지만, 요즘은 내방가사 문학회 회장으로 더 바쁘게 활동하고 있다. 권씨가 내방가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몇 년 전 여고 동창 모임에서였다.

권씨의 고향은 수몰 지역인 경북 안동 원촌마을(안동댐 준공으로 사라진 마을)이다. 고향을 잃어버린 친구들이 오랜만에 모였다. 권씨가 그날 고향을 그리고, 그리웠던 친구를 반갑게 만나는 내용의 내방가사를 읊었더니 친구들이 너무 좋아했다. 친구들의 응원에 힘입어 내방가사 공부를 시작하게 됐다.

권씨는 전국 내방가사 경창대회 경창부문에서 네 번이나 입상했다. 물론 시인으로서 윤동주 탄생 100주년 기념 공모전 시 부문 수상, 한국가사문학대상 장려상 등의 수상경력도 있다. 내방가사 경창대회에서 입상하자 내방가사 전통을 이어오던 대구의 어르신들에게 연락이 왔다. 권씨는 2019년 한국출판문화사업진흥원의 후원을 받아 '내방가사 이야기'를 출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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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중구 남산동 내방가사 공부방에서 내방가사 문학회원들이 공부하고 있다.

대구 여성 박약회(유림단체)는 2018년 9월 대구 중구 남산동 박약회 사무실에 '내방가사 공부방'을 열었다. 권씨는 이 모임의 회장이다. 회원 대부분이 어릴 적부터 내방가사를 접한 분들로 연세가 많다.

최고령자 김동기(88·수성구 만촌동) 어르신은 매일 8㎞ 이상 걷는 운동으로 건강을 유지하며 여전히 소녀 같은 감성을 갖고 있다. 조경자(80·남구 대명동) 어르신은 "한복 짓는 일에 청춘을 다 보냈다. 내방가사를 만나서 이제야 하고 싶은 공부를 실컷 할 수 있어서 지금이 제일 행복하다"고 말했다.

김화자(80·달서구 두류동 ) 어르신은 '참외 서리가'로 2011년 전국 내방가사 창작 공모 입상을 할 정도로 일생을 내방가사와 함께한 분이다. 이만식(80·북구 조야동) 어르신은 17세부터 내방가사를 써 온 분으로 자작 가사, 제문, 사돈지를 모아 '옛글 가사'(1997) 책을 내기도 했다.

그 외 조명자(75·달성군), 조영애(71·달서구 상인동), 이홍자(70·수성구 황금동), 장향규(67·북구 칠성동)씨도 매주 목요일 오후 2시 공부방으로 모여든다. 이들은 공부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먼저 도착해서 오래된 문종이에 내방가사가 적힌 두루마리를 펴놓고 자랑하고 읽기도 하며 공부 시간을 기다린다.

내방가사 공부방 회원들은 박약회 총회 및 신년교례회 때 공연해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다. 지난 21일에는 칠곡향교에서 열린 '팔거역사 문화연구회' 주최 행사에서 발표도 했다.

권 회장은 "우리 것을 지켜낸 분들이 계시기에 지금 우리가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국학진흥원과 안동시에서는 내방가사를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 추진 중이다. 세계 유일의 여성 집단 문학으로 젊은 층의 관심이 필요하다. 내방가사에 관심 있는 분의 참여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조경희 시민기자 ilikelake@hanmail.net

☞내방가사(內房歌辭)= 조선시대 양반 집안의 부녀자들이 짓거나 읊던 가사. 한글 변천사의 중요한 연구 자료이며, 여성이 겪은 역사가 숨 쉬고 있다. 읽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읽어주고 공감하던 나눔의 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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