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 재원 걱정 없는 기본소득제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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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6-26   |  발행일 2020-06-26 제22면   |  수정 2020-06-26
기본소득제 놓고 찬반 갈려
변동형 도입하면 문제 없어
토지 등의 소득 일부 환수해
걷히는 대로 나누면 해결돼
美 알래스카 주에서 시행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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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교수

우여곡절 끝에 재난지원금이 모든 가구에 지급되면서 정책공론장에서 기본소득이 화두로 떠올랐다. 그 와중에 문재인 대통령이 전국민고용보험제를 거론하자, '기본소득인가, 전국민고용보험인가?'를 둘러싼 논쟁까지 벌어지고 있다. 정치인과 학자가 두루 참여해 논쟁을 벌이는 것은 환영할 만하지만, 의미있는 결론에 도달하기에는 역부족인 듯하다.

문제는 지지자와 반대자 모두에게서 발견된다. 지지자들은 모든 국민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릴 권리를 갖는다고 보고 개인 단위로 적게는 월 30만원, 많게는 월 60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월 30만원을 모든 국민에게 지급하려면 연간 186조원이 필요하고 월 60만원을 지급하려면 연간 373조원이 필요하다. 2020년 예산이 512조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기본소득 도입에 드는 예산이 엄청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지지자들은 이 예산을 국토보유세, 탄소세, 시민소득세, 데이터세 등의 도입과 예산 절감, 그리고 각종 세금감면 제도 조정으로 충분히 조달할 수 있다고 믿는다.

반면, 기본소득 반대자들은 그 엄청난 예산을 증세로 조달한다는 말 자체가 비현실적이고, 설사 조달한다고 해도 그것을 모든 국민에게 1/n씩 나눠줘서는 정책의 '가성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비판한다. 불평등과 빈곤으로 고통받는 저소득층에 한정해서 예산을 사용하면 효과를 크게 향상할 수 있는 것을 모두에게 흩어 줘서 이도 저도 아니게 만드느냐 하는 것이 반대자들의 판단이다. 그들은 기본소득이라고 부르려면 지급액이 일정 수준 이상이 돼야 할 텐데 거기에는 예산문제가 뒤따르기 때문에, 사실상 기본소득은 실현 불가능한 몽상에 불과하다고 결론짓는다.

이렇듯 지지자와 반대자는 기본소득에 대해 정반대의 견해를 가진 것 같지만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양쪽 다 기본소득을 국가가 '국민을 위해' 지급하는 급여로 간주한다는 점이다.

기본소득의 시조로 평가받는 토머스 페인과 토머스 스펜스는 기본소득을 국가가 국민을 위해 지급하는 급여가 아니라 국민이 권리에 상응하여 받는 배당금이라 여겼다. 주주가 주식회사로부터 배당금을 받는 것과 같은 원리다. 페인과 스펜스는 모든 국민이 자국의 토지에 대해 평등한 권리를 갖는다고 보았다. 토지는 만든 사람이 없고 인류에게 거저 주어졌으니 그렇게 여기는 것은 정당하다. 토지에 대해서는 모두가 1주씩 가졌으므로 배당금도 같아야만 한다.

작금의 논쟁은 시조들의 발상을 적용하면 쉽게 해소될 수 있다. 우선, 토지와 유사한 성질을 갖는 자원을 찾아낸다. 아마도 자연자원, 환경, 빅데이터, 각종 특권 등이 발견될 것이다. 토지와 이 자원들이 만드는 소득을 계산해서 일부를 환수한다. 환수 비율은 사회적 합의에 따르고, 수입은 모든 국민에게 1/n씩 분배한다. 이 경우 지급액은 해마다 달라질 수밖에 없다. 나는 이를 '변동형 기본소득'이라 부른다. 권리를 가진 사람에게 권리에 상응해서 지급하는 돈이므로 정책의 가성비 운운할 여지가 없다. 월 30만원 또는 월 60만원 등 미리 공표한 금액을 확보하기 위해 무리해 재원을 발굴할 필요도 없다. 걷히는 대로 나누면 끝이다. 이상한 기본소득이라고? 아니, 페인과 스펜스가 주장한 것이 바로 이 기본소득이고,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미국 알래스카주가 지급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기본소득이다.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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