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당신이 꿈꾸는 부캐는 무엇인가요?

  • 박종문
  • |
  • 입력 2020-06-29 08:09  |  수정 2020-06-29 08:15  |  발행일 2020-06-29 제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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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숙 〈대구 새론중 교장〉

혹 '부캐'라는 말을 아는지? 요즘 이 단어가 예능 대세다. 원래는 온라인 게임에서 온 힘을 다해 키우는 '주된 캐릭터' 외에 만일을 대비해 만든 '부수적인 캐릭터'라고 한다. 예능의 블루칩인 개그맨이 국민MC 외에 트롯가수·드러머 등등으로 자신의 삶의 영역을 넓히고 보다 유쾌하게 욕망과 끼를 채우며 사는 데서 핫한 단어가 되었다. 고정된 자신의 평범한 삶에서 새롭게 살고 싶은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다.

2학년 기술교과를 담당하는, 내년이면 우리 나이로 60세가 되는 원로교사 이야기다. 원격수업 관리 중에 늘 제대로 수업을 듣지 않는 뺀질이(?)에게 수업 이수 독촉문자를 보내도, 전화를 해도 반응이 없어 아버지께 전화를 했다. 받은 사람 왈 차분한 어조로 "저 아버지 아닌데요". 황당해서 다시 확인하고 담임께 재확인했는데 분명히 전화번호가 맞다는 것이다. 홀짝 등교인 까닭에 다음날 교실로 찾아가 물었더니 "선생님, 아버지께 전화 좀 하지 마세요. 요즘 전쟁 중이라 아버지 자리 휴직이에요". "헉, 나도 전화 안하고 싶다. 수업 잘 들으면 되지. 앞으로는 그대로 결과 처리할까?" "에잇, 선생님, 그건 아니구요…. 좀 대충대충 하세요".

예전처럼 아버지는 무거운 이름이 아니다. 가정의 모든 문제를 짊어지고 직진하는 고정된 캐릭터가 아니다. 청춘의 자유는 갔지만 아직 젊다. 앞 세대 선생님과 어른들에게 봉걸레가 부러지도록 맞고 컸지만 어느 세대보다 반항심이 컸다. 옷 좀 입고 신발, 시계, 자동차 등 신상품을 좋아하고 춤도 악기도 운동도 조금씩 즐길 줄 안다. 요즘 중학생 아들을 둔 아버지들은 대체로 감정 표현도 잘하고 말도 많다. 급기야 아들의 선생님에게 아버지가 아니라는 표현으로 그날 자신의 역할에 선을 그은 것이다.

반면 원로교사는 원격수업으로 개학이 시작되었던 첫 수업에 새내기 교사처럼 이렇게 썼다. '영상수업의 소감을 작성해 주세요. 여러분의 피드백을 적극 반영하고 좋은 수업을 위해 열심히 연구하고 노력하는 선생님이 되겠습니다.' 학생들은 어떤 면에서 이해가 잘 되었는지, 무엇을 새로 알게 되었는지 적기도 하고 선생님의 고민이 느껴진다, 뜨거운 교육열을 읽을 수 있다는 등 어른 같은 평가도 있었다. '내용 전달에 방해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배경음악을 넣어 달라거나, 느린 어조가 듣기 좀 불편하지만 빠른 것보다는 낫다는 상대적 비교까지 표현이 명확했다. 이 맛에 원로교사의 가슴에 살아 있는 소년 같은 부캐는 오늘도 달뜨며 수업 준비를 하고, 내게 이런저런 얘기를 쏟아놓는 것이다.

사람들은 행복하게 살 길 원한다. 그리고 때와 장소에 어울리는 다양한 삶을 즐기길 바란다. 사실 우리가 맡은 아버지와 어머니란 얼마나 따뜻하고 정겨운 캐릭터인가. 그러나 우리는 잘 알지 못했다. 지시하고 압박하며 열심히 부모 노릇했다고 생각했다. 선생님도 그러하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어린 학생을 교육한다는 것은 얼마나 설레는 일인가. 그런데도 우리는 아이 하나하나를 보지 못하고 전체적으로 통솔했으며, 또 얼마나 일방적이었던가. 지금 내가 맡은 '주캐'든 '부캐'든 여유를 가지고 본질을 볼 수 있다면, 그리고 애쓰고 다듬어 간다면 지금 이 자리가 얼마나 풍성하고 아름다울까.

김희숙 〈대구 새론중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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