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양심과 소신 막으면 독재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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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6-29   |  발행일 2020-06-29 제26면   |  수정 2020-06-29
뭐든 찬반 있는 게 세상 이치
금태섭 의원 당론 거부·징계
조선 붕당정치의 재현 형국
필자의 사보임 계기로 만든
국회 자유투표법에도 위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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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신 소설가

세계 최대 수력발전시설로 알려진 중국 싼샤댐 건설에 가장 크게 공헌한 사람이 누구냐고 설계책임자에게 물었다. 그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댐 건설에 반대한 사람들이다. 만약 그들이 반대하지 않았다면 싼샤댐의 설계가 완벽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얘기를 정치판에 들려주고 싶다. 무슨 일이든지 찬성과 반대가 있고 좋아하거나 싫어할 수 있고 여당과 야당이 존재하는 게 세상의 이치다. 요즘 언론에 사보임, 당론거부, 징계에 관한 기사에 어김없이 '2001년 김홍신 의원 당론 거부와 강제 사보임 징계'라는 문장이 따라붙는다. 필자의 지난 얘기를 굳이 꺼내는 것은 국회의원의 양심과 소신이 꺾이는 세상은 조선시대 붕당정치의 재현이자 독재로 가는 형국임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필자는 2001년 말에 건강보험재정분리 당론에 홀로 반대하다가 강제 사보임을 당했다. 그때 직장보험과 지역보험을 통합했기에 전 국민 단일보험체계로 코로나19 위기 대응도 잘할 수 있게 되었음을 새겨보게 된다.

헌법 46조 2항에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수행한다'고 명시되어 있지만 당 지도부가 당리당략에 따라 국회의원을 거수기로 이용하는 죄를 짓고 있다. 그 당시 필자는 즉시 의원회관에서 양심과 소신을 지키기 위한 항의 농성을 했고 참여연대와 함께 헌법 재판소에 이만섭 국회의장을 피청구인으로 '권한쟁의 심판청구'를 했다. 이에 새천년민주당은 2002년 자유투표 조항을 신설, 국회법 제 114조 2항 '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로서 소속정당의 의사에 기속되지 아니하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고 못 박았다.

당론을 거부하고 항의 농성할 때 민주당 인사들은 '김홍신 의원의 양심과 소신은 정치사의 규범'이라고까지 했다. 2003년 김두관 행자부 장관 해임건의안에 필자 혼자 반대해 징계당하자 그들은 '소신의 상징'이라고 했다. 헌법재판소는 국회에서 자유투표법이 통과된 이후인 2003년에, '김홍신 의원 강제 사보임 당한 1년10개월 만에 기각 결정'한 걸 두고 뒷말이 무성했다.

요즘 위헌, 반민주 논란의 중심이 된 금태섭 의원 징계 소식에 정치판이 점점 잔혹해졌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필자는 자유투표법 제정 이전에 징계당한 것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금 의원은 제정 이후에 당한 것이어서 징계의 부당성이 명백하다.

금태섭 의원이 공수처 설치법을 찬성해 달라는 당 지도부의 지시를 거부한 것만으로 공천탈락과 징계까지 받았다면 한국정치사의 괴담이 될 것이다. 설마 그럴 리야 있으랴만 인사청문회에서 조국 후보자에게 "언행 불일치와 젊은이들의 정당한 분노에 동문서답으로 답변해서 상처를 깊게 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할 생각은 없습니까?"라고 정곡을 찔러 많은 국민의 분노를 대변한 것에 대한 치졸한 응징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제21대 국회의원들에게 당명을 거역하거나 당 지도부의 눈 밖에 나거나 거수기 노릇을 거부하면 금태섭 의원처럼 당한다는 경고장은 아닐까? 더더욱 그럴 리가 없겠지만 국회를 양심과 소신 증발의 현장으로 만들고 싶은 걸까?

그러나 분명한 건 금태섭 의원처럼 양심과 소신을 지킨 정치인들만 역사가 '국민 편'으로 기록한다는 걸 잊지 말라. 국민들은 코로나로 시름이 깊어가는 데 영혼을 팔아 득세하는 무리들이 깨끗한 척, 잘난 척할수록 대한민국이 더러워진다는 걸 알까? 세상 바뀌면 가장 먼저 줄행랑칠 걸 세상이 모를까?
김홍신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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