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혐오와 한국 교회…혐오의 대상 찾아 공격하는 한국 개신교 통렬히 비판

  • 노진실
  • |
  • 입력 2020-07-04   |  발행일 2020-07-04 제14면   |  수정 2020-07-04

십자가
'혐오와 한국 교회'는 기독교학과 교수, 목사, 선교사, 신학 박사 등 직·간접적으로 개신교와 연관이 있는 인물들이 일부 한국 교회 내에 자리하고 있는 타자에 대한 '혐오'의 행태를 비판하고, 새로운 교회의 모습을 찾자는 내용을 담은 책이다. <위키백과 제공>
d
권지성 외 13인 지음/ 삼인/ 1만6천원/ 312쪽

"이 연구의 주된 관심은 한국 교회의 혐오의 언어가 어떠한 방식으로 생산·유통·확장되고, 정치 선전의 도구가 되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것이다. 그리고 성경의 가르침에서 이탈한 것이 분명한 혐오와 배제의 언어가 남용되고 있는 현상과 그 원인에 대한 탐구에 집중한다."(9쪽)

신간 '혐오와 한국교회' 서문에서 저자는 이렇게 강조한다. 이 책은 '현재의 한국 개신교 교회는 한국 사회의 어떤 계층을 향한 혐오를 쏟아내고 있으며, 무엇이 보수 개신교 진영으로 하여금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를 생산하게 만들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학벌주의·성소수자 차별·낙태반대 등
한국교회의 낙인찍기·증오 심층 분석
정치종교에서 시민종교로 변화 강조

제목에 나와 있듯 책은 '혐오'에 관한 이야기다.

가장 혐오를 멀리해야 할 것 같은 종교가 '신의 가르침'과는 다르게 타자를 혐오하는 것을 목격했을 때 느껴지는 당혹감과 분노 같은 것들이 책 곳곳에 담겨 있다.

기독교학과 교수, 목사, 선교사, 신학 박사 등 직·간접적으로 개신교와 연관이 있는 인물 14명이 각자 주제를 나눠 책을 집필했다.

'철학적·신학적 시각' '역사적·문화적 시각' '실천적 시각'이라는 3개의 큰 주제 안에 △제주 4·3 사건 △시민 종교와 정치 종교 △학력·학벌주의와 한국교회 △성 소수자 차별 △낙태 반대 등 혐오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깊이 있는 분석과 함께 전개한다.

"증오의 신학은 적으로 낙인찍은 대상을 신의 이름으로 응징하라고 부추긴다. 그런 부추김에 동화된 이들은 자신에게 허용된 폭력의 방식을 최대한 활용하여 응징을 수행한다. 때로 허용된 폭력은 잔혹한 학살로 나타났다. 제주 4·3사건에서 기독교의 '증오의 신학'에 부추김 받은 전사들인 서북청년단원들이 그랬다."(96쪽)

'모두에게 파괴였던 시간의 바깥'이라는 장에서는 제주 4·3사건의 아픈 역사와 함께 당시 극우개신교 청년들이 어떻게 해당 사건에 가담했는지를 보여주며, '이단'이나 '혐오의 대상'을 찾아다니는 일부 한국 개신교의 행태에 통렬한 비판을 가한다.

"한국 개신교는 저들을 낙인찍고 공격하는데 몰두하다 보니 자기를 성찰할 틈을 갖지 못했다. 아니 자기를 성찰하지 않으려 적의 발견 혹은 발명에 집착한 것일 수도 있다."(96쪽)

'한국 기독교: 시민 종교와 정치 종교 사이에서'라는 장에서는 정치 종교로 등장한 한국 기독교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한국 보수 기독교에서 악으로 상정했던 것이 과거 공산주의·사회주의, 북한, 친북세력이었다면, 오늘날에는 (저 3가지에 추가하여) 이슬람이나 페미니즘, 성 소수자들이 그 타자화의 대상이 되어 있다. 자유민주주의, 반북, 반동성애 등의 레토릭은 철저히 국가주의적이다.…시민 사회에서 종교가 순기능을 상실하면 정치 종교로 변질될 수밖에 없다."(104쪽)

그리고 저자는 '시민 종교의 복원'을 강조한다.

"지금은 대형 교회 목회자들이 보여주는 정치적 행태에 대해 실망할 때가 아니라, 건전한 시민 종교를 향한 잰걸음을 다시 고민하여 시작해야 할 때다. 한국 사회에서 시민 종교에 대한 자의식은 보수 개신교가 독재체제와 밀착하던 극단의 현실에 대한 반성과 저항에서 출발했다. 이제 다시 시민 종교이다."(120쪽)

'성소수자 혐오와 차별의 반대편에서 만나는 낯선 하느님'이라는 장에서는 한국의 일부 목회자들과 교회 관련 매체가 성 소수자들에 관해 자행하는 허위사실 유포의 사례들을 들면서, 그 같은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낸다.

"우리는 종교의 자유를 얻기까지 꽤 오랜 시간 온갖 비방과 허위사실 유포에 시달리며 박해받아 온 교회의 아픔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와 같은 허위사실 유포로 큰 고통과 아픔을 겪은 이들 가운데 일부가 역사를 잊어버린 듯, 성 소수자에 대한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온갖 혐오와 차별로 박해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233쪽)

책은 코로나19 등 감염병을 '신의 저주'로 해석하는 일부 종교인의 행태도 비판한다.

"우리는 전 세계적으로 닥친 감염병 재난 앞에서 다양한 불평등에 노출된 상대적 약자나 사회적 소수자들이 유령 취급을 받으며 속수무책으로 고립당하거나 생명을 위협당하는 상황을 매일같이 목격하고 있다. 그런데 사회의 빈틈에 갇혀 고립당하고 생명과 존엄성을 위협당하는 이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아무렇지 않게 감염병이라는 재난과 '신의 저주'를 연결해서 공개적으로 선포하는 이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230쪽)

이 책은 독자의 종교 유무, 종교관 등에 따라 반응이나 해석이 달라질 수 있는 책이다.

유신론자에게 이 책은 '불편한 이야기' 혹은 '교회의 지속을 위한 자기반성'으로 읽힐 것이다. 무신론자에겐 여러 모습의 '혐오'에 대한 꽤 심층적인 사회학적 분석으로 읽힐 것 같다. 기자는 후자 쪽의 관점에서 책을 읽었다. 물론 더 강한 무신론자는 책의 전제(교회) 자체를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종교의 자유'가 있듯 '무교의 자유'도 허락해줘야 하지 않겠나.

어쨌든 책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혐오'라는 주제는 어떤 형태로든 꾸준히 논의돼야 할 대상이기에 종교 여부를 떠나서 충분히 탐독할 만한 내용인 듯하다.

저자들이 교회의 불편한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언급하며 각자 글을 쓴 목적을 알기 위해선 다시금 책의 서문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이 책의 여러 연구를 통해 증오심과 미움으로 점철된 극단적 종교심을 버리고 타자에게 관용과 이해의 손을 내밀 수 있는 교회와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10쪽)

노진실기자 know@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