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부러진 펜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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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7-03   |  발행일 2020-07-03 제23면   |  수정 2020-07-03

일제강점기에 치욕의 일제 문학작품을 쓰느니 아예 붓을 꺾는, 절필한 문인이 많았다. '삼대'로 잘 알려진 문학가이자 언론인 염상섭은 일찌감치 만주로 떠나 작품활동을 일절 중단했다. '매천야록'을 남긴 구한말의 문인이자 우국지사인 매천 황현은 '절명시'를 남긴 채 자결했다. 죽음으로 절필을 보여줬다.

한국 수필문학의 거장 피천득은 1970년대 중반에 갑자기 절필을 선언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어느 날 보니 내가 전보다 못한 글을 쓰고 있었다. 그래서 더는 쓰지 않기로 했다." 그는 약속을 지켰다. '객주'의 소설가 김주영도 80년대 말 잠시 붓을 놨다. 일간지에 쓰는 연재소설의 무대인 개성에 한 번도 다녀오지 않은 채 소설을 쓰는 게 철면피 같았다고 밝혔다. 이 같은 자발적 절필은 물론 타의에 의한 절필도 있다. 70년대 최고 인기작가였던 한수산은 81년 국군보안사령부로 끌려가 고문당했다. 신문 연재소설의 내용이 문제가 됐다. 그 충격으로 절필하고 일본으로 떠났다. 문인만 절필하는 게 아니다. 독특한 화풍을 보여준 천재화가 천경자는 한국미술계 최대의 미스터리인 '미인도' 위작 사건으로 큰 상처를 받고 절필한 채 미술계를 떠났다. 절필의 이유는 개인적인 것부터 사회적·정치적인 것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절필 선언을 끝까지 지킨 피천득의 말은 그 이유를 한 가지로 정당화시킨다. "한계에 도달했다고 느낄 때 바로 붓을 꺾어야지요."

예술계에서 주로 볼 수 있었던 절필이 최근 청년에게서 확산하고 있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정규직 전환사태와 관련해 SNS를 통해 급속히 퍼지고 있는 '부러진 펜운동'이다. 이 사태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취업을 위해 공부하던 필기구를 부러뜨린다는 의미다. 프로작가가 글 쓰기, 그림 그리기를 멈춘다는 건 곧 생계수단을 내려놓겠다는 것이다. 절필에는 그만큼 절박함이 담겨 있다. 부러진 펜운동 역시 마찬가지다. 열심히 공부해도 취업은 안 되고 결혼, 주택 마련 등이 점점 딴 세상 이야기처럼 들리는 절망감이 청년을 좌절시키고 있다. 우리 시대의 아픈 자화상이다. 김수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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