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박사' 문제일의 뇌 이야기] '박치기 왕' 김일 선수

  • 박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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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7-06 08:03  |  수정 2020-07-06 08:04  |  발행일 2020-07-06 제15면

문제일

2020년 5월 '박치기 왕' 프로레슬러 고 김일 선수가 국립대전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 묘역에 안장된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1960년대 어려운 시기, 김일 선수는 우리의 영웅이었습니다. 화려한 레슬링 기술도 많이 보여주었지만 주특기인 '박치기'가 김일 선수의 아이콘으로 모두에게 기억됩니다.

그때 경기를 돌아보면 늘 비슷한 패턴이었습니다. 경기가 중반을 넘으면 상대편 선수가 팬티 속에 숨겨둔 흉기를 꺼내 심판 몰래 반칙을 쓰고, 모든 관중이 소리를 질러 심판에게 반칙을 알리지만, 심판은 이상하게도 누구나 볼 수 있는 반칙을 보지 못했고, 김일 선수는 반칙에 고통을 받습니다. 상대 선수가 반칙으로 쓰러진 김일 선수 위에 의기양양하게 올라타면 심판은 "원, 투"하고 바닥을 치며 카운트를 세고 관중들은 아쉬움의 탄식을 쏟아냅니다. 그때, 김일 선수는 힘을 내서 상대 선수를 밀어내고 일어나 본격적으로 박치기 공격을 가합니다. 그럼 단숨에 전세는 역전되고 반칙을 쓰던 상대 선수는 도망을 가거나 의식을 잃고 기절해 김일 선수가 승리를 합니다. 그 순간만큼은 관중들이 고단한 삶을 잠시나마 다 잊고 통쾌한 기쁨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김일 선수는 우리에게 기쁨을 주던 그 박치기의 후유증으로 힘든 투병생활로 말년을 보내야 했습니다. 2020년 6월 'Neurology' 잡지에 발표된 보스턴대 의과대학과 캘리포니아대(샌프란시스코) 의과대학 공동연구팀의 보고에 의하면, 반복적으로 머리에 충격을 받거나 머리 부상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나이가 들면서 우울증 증상이나 인지력 저하 위험성이 크게 증가한다고 합니다. 이런 위험성은 반복적인 머리 충격의 빈도와도 비례하였으며, 머리 충격과 머리 부상을 동시에 경험한 사람들에게서 가장 크게 나타났습니다. 안타깝게도 김일 선수는 그의 젊은 시절 국민들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사용한 본인의 필살기인 '박치기'로 인해 노후에 이런 증상으로 고생을 한 것이죠.

박치기 외에도 반복되는 머리 충격이 동반된 스포츠는 많습니다. 예를 들어 축구의 헤딩도 여기에 해당됩니다. 또 미국의 대표적인 스포츠인 미식축구의 경우, 헬멧을 쓰고 시합을 하지만 상당한 머리 충격이 동반되는 'head to head' 태클이 반복됩니다. 이에 미국에서는 선수들의 보호를 위해 'head to head' 태클을 금지하는 룰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앞의 연구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반복적인 머리 충격이 노후에 우울증이나 인지력 저하와 같은 문제를 유발할 가능성을 높인다는 것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집안에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남으로 인해 부모님들이 자녀를 혼내는 일도 많아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자녀의 건강한 노후를 위해 절대 자녀의 머리에 충격을 주는 꿀밤은 때리지 말고, 사랑으로 품어주길 부탁드립니다.
<DGIST·뇌 인지과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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