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걸 교수의 오래된 미래 교육] 사상(四相)-인본주의 비판

  • 박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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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7-13 07:52  |  수정 2020-07-13 08:04  |  발행일 2020-07-13 제15면

인본주의는 현대 교육의 바탕이자 기본 전제다. 현대교육은 모든 인간의 존엄성과 천부 인권을 바탕으로 하는 인본주의에서 출발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본주의에 대한 가장 철저한 비판은 '금강경'의 사상(四相)-인본주의에서 찾을 수 있다.

사상이라고 하는 아(我)·인(人)·중생(衆生)·수자(壽者)는 산스크리트어로 아트만(atman)·푸드갈라(pudgala)·사트바(sattva)·지바(jiva)이다. 인본주의적 입장에서 아트만 곧 아상이란 내가 온 우주의 중심이라는 생각이며, 오늘날 자유주의적 인본주의의 기본 전제다. 자유주의적 인본주의는 이런 입장에서 개인주의, 자율성, 책임감과 자기 결정권을 주장해왔다. 물론 더 급진적인 입장에 있는 인본주의자들은 연대, 공동체 유대 맺기, 사회 정의와 평등의 원칙들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나'라고 하는 분리 독립된 개체가 존재한다는 아상-인본주의는 궁극적으로 모든 갈등의 근본 원인이 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피부경계선을 중심으로 그 안을 '나'라고 주장하고 그 밖을 '세계'라고 할 경우, 나와 세계는 그 경계선을 중심으로 갈등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상(人相)-인본주의, 즉 푸드갈라 인본주의가 사실 일상적인 의미에서 사용되는 인본주의의 개념이다. 인간이 세계의 중심이고 인간 이외의 존재는 모두 인간을 위해 봉사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인상-인본주의는 르네상스 인본주의 이전부터 존재해 왔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아담과 이브를 만든 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동식물들을 다스리고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준 것이나, 유학에서 기(氣)로 구성된 모든 존재 중 인간이 가장 맑고, 밝고, 깨끗한 기로 구성되어 오상(五常)을 모두 갖추고 있다고 한 것은 모두 인상-인본주의에 해당된다.

중생상-인본주의, 즉 사트바 인본주의는 생명과 생명이 없는 것 사이의 경계를 설정하여 생명을 우선시하는 인본주의다. 따라서 중생상-인본주의의 극복은 생명 경계선을 해체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인간과 역사 중심의 관점에서 지구 중심적 관점으로의 시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제임스 러브록의 가이아 가설은 총체성을 되살리고 지구 전체를 하나의 신성한 유기체로 보자고 제안하는 대표적인 지구 중심적 관점이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자연의 역사와 인간의 역사 사이에 존재하는 인위적인 구별을 없애고 지구상에서 인간이 없는 미래를 숙고해야 한다.

수자상-인본주의, 즉 지바 인본주의는 영원한 것과 생멸하는 것을 구별하여 전자를 추구하고 후자를 배척하는 관점을 말한다. 결국 핵심은 '시간을 어떻게 볼 것인가?'하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무한함을 추구하는 에고에게 있어서 시간은 저기 바깥에 존재하는 객관적 구조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에고가 현재를 대하는 방식은 항상 미래의 목적을 위한 수단이며,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며 적이다. 그러나 시간은 객관적인 존재가 아니라 감각적인 지각을 위해 마음이 만들어낸 구조물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과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마음속에 저장된 지나간 지금에 대한 기억의 흔적이고, 미래라고 생각하는 것은 마음의 투사물로서 상상 속의 지금이다. 수자상-인본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시간이라는 망상을 극복해야 한다.

<대구교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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