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전북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

  • 류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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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7-10   |  발행일 2020-07-10 제36면   |  수정 2020-07-10
지리산 바라보며 넙죽 엎드린 바보예수의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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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 남원 출신 김병종 작가의 작품을 기증받아 지었다.

전북 남원 시가지를 흐르는 요천(蓼川)의 강변도로에는 녹음이 시원하게 드리워져 있었다. 차량은 많지 않았고 모두가 당연하다는 듯 너그럽고 느긋했다. 곧 춘향테마파크의 높다란 계단이 보이자 그 옆 상점가로 들어섰다.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고요한 길을 따라 굼실굼실 오르다 남원 항공우주천문대 이정표를 즈음해 스윽 내리막이 시작되었다. '내려섰다'라는 느낌과 함께 작은 마을이 나타났고 미술관 입구를 가리키는 화살표가 보였다.

호리병 속 갇힌 모양새 '함파우 마을'
7분 능선에 모습 활짝 드러낸 미술관
김병종 작가 작품 400여점 기증 받아

3개 전시실·수장고·성큰 가든·북카페
작가가 보낸 책 수천권 읽는 '화첩기행'
연못 위 큰 창, 실컷 그리워하는 공간
눈부신 빛 지나 어둠에 갇히는 갤러리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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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서 뒤돌아본다. 길 끝에 작은 솔숲의 언덕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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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홀에서 내려다본 갤러리1. 김병종 작가의 작품을 상설 전시하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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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2. 기획전시실로 현재 김영태의 작품을 전시 중이다. 빛이 들어오는 가벽 뒤에 지리산을 조망하는 큰 창이 있다.



◆덕음봉 골짜기에서 지리산을 바라보다

남원 시가지를 훤히 내려다보고 있는 덕음봉(德蔭峯)은 높이 288m의 아담한 산이다. 북사면에서는 춘향테마파크가 있는 관광단지가 빼곡히 들어서 있고 그 위쪽에 남원 시가지를 내려다보며 천문대가 자리한다. 남사면은 깊고 외진 골짜기로 작은 자연부락들이 숨은 듯 자리한다. 덕음봉 아래에 '함파우'라는 마을이 있다. 함파(含波)는 '물결을 머금고 있다'는 뜻이다. 이 이름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지만 마을이 호리병 속에 갇힌 모양새여서 붙여진 이름으로 추측된다. 실제로 마을 입구에 서면 사면이 저고도의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꼭 호리병 속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마을 앞에서 산을 다시 살짝 오르면 7분 능선 즈음으로 체감되는 자리에 미술관이 자리한다. 함파우를 살짝 내려다보고 멀리 지리산을 바라보는 자리다.

초록의 구릉 위에 하얀 건물이 고개를 빼 들고 앉아 있다. 구릉을 비스듬하게 오르는 진입로의 긴 벽이 건물의 아랫부분을 감춰두고 있어 처음부터 건물의 전체가 보이지는 않는다. 긴 벽의 길을 지나 열린 문을 통과하면 그제야 미술관은 활짝 모습을 드러낸다. 2층 규모의 건물은 상자에 상자를 끼워 넣거나 덧붙인 형태로 앞마당에 직사각형의 연못을 계단식으로 배치했고 그 가운데에 직선의 진입로가 나 있다. 전주의 젊은 건축가가 설계한 것이라는데 지리산을 보고 넙죽 엎드린 형태로 디자인했다고 한다. 그러나 어쩐지 날아갈 듯한 감정이 더욱 짙다. 가벼웠고, 기침이나 사랑처럼 숨겨지지 않는 비상(飛上)에의 열망이 느껴졌다. 사실 가장 먼저 자극된 감각은 물소리였다. 바람이 수면을 스칠 때마다 물은 차르르 소리를 내며 아래 연못으로 쏟아져 내렸다. 약한 바람이 불면 물은 칠이 군데군데 벗겨져 있는 연못의 프레임을 조용히 쓸어 넘으며 반쯤 일어난 딱지 같은 페인트 조각과 부딪치면서 제각각의 물줄기들과 경쾌하고 다채로운 소리들을 만들어 냈다. 시간이 낸 생채기가 오히려 생명력으로 다가왔다.

미술관의 정식 명칭은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이다. 남원 출신의 작가 김병종의 대표작 400여 점을 기증받아 2018년 3월에 개관했다. 작품 '바보예수'로 유명한 김병종. 그보다 '화첩기행'으로 더욱 유명한 이다. 송동면 신평리에서 태어난 그는 동네 앞 소나무 숲에서 뛰어놀며 유년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어릴 적 나는 서늘하고 검은 숲속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온갖 날것들과 연약한 생명체들을 바라보면서 애련한 마음을 지니고 그 목숨을 가늠해보곤 하였다. 숲으로 가고 싶다. 그 생명 가족들에게로.' 그는 이렇게 작품으로써 고향으로 돌아왔다. 물의 정원을 지나 입구에서 뒤돌아본다. 진입 벽 너머로 봉긋한 언덕 위에 소나무들이 작은 숲을 이루고 있다. 꼭 조산처럼 보인다. 고향의 솔숲을 잊지 못하는 작가를 위한 환영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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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 진입로. 긴 벽의 길을 지나야 비로소 건물의 전체가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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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위에 떠 있는 듯한 북 카페 '화첩기행'. 김병종 작가가 기증한 수천 권의 책을 볼 수 있다.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

미술관은 3개의 전시실과 수장고, 성큰가든과 북 카페인 '화첩기행'으로 구성되어 있다. 입구 오른쪽 물 위에 뜬 듯 자리한 공간이 북 카페다. 카페 안은 벌써 사람들로 복작거린다. 내부로 들어서면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외부의 진입동선을 그대로 이어 오르고 있다. 그 왼편 안내데스크 옆으로 갤러리1의 입구가 평범하게 열려 있다. 좁은 듯한 통로를 지나면 공간은 2층 높이로 수직 확장된다. 갤러리1은 김병종 작가의 상설 전시실이다. 그의 대표작인 '바보예수'와 '생명의 노래' 시리즈로 구성되어 있다. 작품은 주기적으로 교체된다고 한다.

2층으로 오른다. 홀에서 갤러리1이 내려다보인다. 갤러리2는 기획전시실로 현재 김영태의 작품을 전시 중이다. 그는 화가이자 시인이고 무용평론가이자 캘리그래퍼다. 우리 시대의 마지막 보헤미안, 원조 탐미주의자, 문화 딜레당트(호사가)라고 불렸던 남자다. 문학과 지성사에서 발행하는 시집 앞표지의 캐리커처를 대부분 그가 그렸다고 하면 아하, 할 만한 사람. 그의 피아노 스케치 앞에서 오래 머문다. 전시실은 연못 위로 돌출된 공간으로 커다란 창이 있다. 그러나 그 큰 창은 이 공간 속에서 곧장 보이지 않는다. 콘크리트 가벽이 막아서 있는 것이다. 벽체의 가장자리를 비집고 들어서야 창과 만난다. 그곳은 나와 창 너머 먼 지리산이 오롯이 만나는 자리다. 무엇에도 방해받지 말고 실컷 그리워하라는 공간이다.

갤러리2에서 갤러리3으로 가는 문을 연다. 옥상이다. 창으로 보았던 지리산이 바로 저기에 있는데 왜 느낌은 다를까. 가두어 놓은 것과 흘러가는 것의 차이일까. 태양에 눈이 부시다. 갤러리3으로 들어선다. 등 뒤로 문이 급하게 닫히면서 갑작스럽게 어둠에 갇힌다. 내부가 희미하게나마 보이기까지 100년의 시간이 흐른 것 같다. 실제로 빛과 어둠을 주제로 만들어진 기획전시실이라 한다. 옥상의 외부공간을 일부러 거치게 한 것은 이곳의 어둠을 극대화시키는 장치였던 셈이다. 지금 이곳에서는 김영태의 작품으로 만든 영상을 상영하고 있다. 이곳에도 역시 콘크리트 벽체가 서 있다. 벽 너머 창 속에는 북 카페 옥상에 숨겨놓은 사각의 연못이 찰랑거리고 언덕진 솔숲과 함파우 마을이 무심히 놓여 있다. 이곳에서 함파우 마을은 진짜 물결을 머금고 있다.

북 카페에 들러 '너무 맛있어 미안'한 '미안커피'를 마시고 '사과' 케이크를 맛본다. 김병종 작가가 기증했다는 수천 권의 책들을 보며 그의 아내였던 고 정미경 작가와 '나의 피투성이 연인'을 잠시 떠올린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좋겠다는 생각이 스쳐 갔고 함파우와 눈이 참 잘 어울린다고 결정했다. 그런데 남원에는 눈이 많이 오나? 그나저나 오래 닫혀 있던 미술관들이 조심스럽게나마 문을 열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광주~대구고속도로를 타고 남원IC에서 내린다. 남원시청 방향으로 간 뒤 남원대교를 건너 우회전해 강변도로를 타고 조금 가면 춘향테마파크다. 단지 내 도로를 따라가면 된다. 미술관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문을 열고, 월요일과 1월1일, 설날과 추석 당일은 쉰다. 입장과 주차는 무료다. 현재 기획전시 중인 김영태의 '누군가 다녀갔듯이'는 8월30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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