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편(一師一便)] '엔진소리보다 큰 연필소리'가 온 세상에 울린다

  • 박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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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7-13 07:46  |  수정 2020-07-13 08:01  |  발행일 2020-07-13 제14면

우리 학교 국어 교과서의 첫 단원은 윤동주의 '자화상'으로 시작됩니다. '자화상'은 식민지 시절, 윤동주가 자신이 겪은 정체성의 혼란을 다루고 있는 작품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아이들이 배우는 첫 번째 작품으로 꽤 괜찮습니다. 새로운 학교에 들어선 사춘기 청소년 중에는 윤동주처럼 자아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학교는 학구열이 높기로 유명한 수성구에 자리한 공업 계열 특성화고입니다. 부모님의 높은 기대를 뒤로하고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에 실패하였다는 멍에를 짊어지고 있는 학생들의 숫자가 적지 않은 편입니다. 이 경우 신입생들의 자존감은 거의 바닥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새 학년이 시작될 때마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마음을 심어주기 위해 부단히도 애를 씁니다.

저는 아이들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자신의 삶과 경험, 감정이 오롯이 담긴 시를 쓰게 합니다. 시인 양성이 목적이 아닌 만큼 그저 시 쓰기를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스스로를 인식하게 할 따름입니다. 저는 이렇게 만들어진 학생들의 작품을 모아 매년 문집을 만들곤 합니다. 공고생들이 쓴 작품이 뭐 볼 게 있겠느냐며 비웃는 사람도 있었지만, 편견 없이 아이들이 쓴 작품을 읽고 나면 깜짝 놀라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저는 아이들과 함께 시를 쓰는 이 프로젝트에 '엔진소리보다 큰 연필소리'라는 이름을 달아주었습니다. 공고 학생들의 글쓰기가 세상에 특별한 의미가 있기를 바라는 저의 소망이 담긴 이름이었습니다. '선생님이 뭔데요?'라는 이름으로 출판된 우리의 책은 이로써 진짜 엔진소리보다 큰 연필소리가 되어 온 세상에 울려 퍼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올해도 윤동주의 '자화상'을 가르치며 아이들에게 자신에 대한 시를 쓰게 하였습니다. 아이들은 역시나 왜 이런 걸 써야 하냐며 푸념을 늘어놓곤 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꿋꿋하게 시를 써오라 하였습니다. 자신의 삶을 담은 시를 쓰고 고쳐 쓰는 가운데 자신의 진면목을 만나게 되는 순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창 <영남공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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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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